보통 사람의 아프리카 여행법 - Addis Ababa, Ethiopia
‘오늘은 기필코 인터넷을 하고 말겠어.’
여행을 준비하면서 다른 건 다 털려도 사진만은 안전하게 백업을 해놓고 다니자고 결심을 했다. 그러기 위해선 부지런을 떨어 백업을 습관으로 만들어야 했는데, 에티오피아에서는 사진 업로드는커녕 인터넷 접속조차 쉽지 않았다. 비장한 각오로 아디스아바바 시내에서 단연 눈에 띄는 고층 빌딩인 ‘아담스 파빌리온’에 있는 인터넷 카페에 갔다. 어제 와이파이가 무제한이라는 소문을 듣고 간 한 호텔 카페에서 허탕을 쳐 더욱 절박해져 있는 상태였다. 어제랑은 다른 종업원이 손님들을 맞는다.
“나 내 노트북으로 여기서 인터넷만 쓰러 왔는데....”
“그건 안돼.”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안 된단다. 처음부터 제대로 들을 생각이 없던 것이다. 나도 발끈했다.
“무슨 소리야. 어제 와서 내가 물어보니까 저기 저 자리에 앉아서 랜선만 꼽아 쓰면 된다고 했었거든?”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그제야 양보하는 척 어깨를 으쓱한다.
“그럼 그렇게 하든가.”
영어도 아닌 암하릭도 아닌 온갖 몸동작과 표정 그리고 약간의 한국어로 이루어진 실랑이는 그렇게 마무리가 됐다. 이런 무책임한 사람이 어떻게 일자리를 구했는지 심히 못마땅하지만 나는 아무 힘이 없는 방랑객일 뿐이기에 얌전히 지정된 자리에 앉아 랜선을 노트북에 꼽았다. 된다. 인터넷이 된다. 되는데…. 음…. 너무 느리다. 업로드용 웹페이지에 로그인하는 데만 1분 이상이 걸린 것 같다. 이런 환경에서 사진을 업로드하기란 불가능함을 깨닫고 10분 만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포기는 빠를수록 좋다.
아무런 소득 없이 형의 사무실로 돌아와 평소처럼 어영부영 시간을 보냈다. 형이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는 동안 내가 하는 일은 장기휴가를 간 직원의 책상에 앉아있는 것이다. 노트북에 잔뜩 넣어 온 드라마를 보다가 옛날 사진들도 들춰보고 썼던 일기들도 다시 보고. 그러다 소나기가 쏟아지면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저녁은 초대를 받아 진무 형네 집주인 아주머니 댁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 사실 에티오피아 전통식인 인제라가 입맛에 딱히 맞진 않는 데다 아무거나 잘 먹는 형 친구도 아주머니 댁에 초대받아 가서는 음식을 다 남겼다고 해서 처음엔 좀 주저했다. 그래도 약속을 했으니 가야지.
주인아주머니 내외분들은 아주 따뜻하게 우리를 맞아주셨고 가장 편안한 자리에 우릴 앉게 하셨다. 인상만 봐도 정말 푸근하고 좋은 분들이다. 두 분은 우리가 간 다음에 드시려고 하시는지 본인들 음식은 준비하지 않으셨다. 접시에 인제라를 올리고 아주머니가 반찬들을 막 하염없이 쏟아부으시는데 ‘제발요. 저 어차피 다 못 먹을 거예요’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입에선 연신 ‘땡큐, 땡큐’가 튀어나왔다.
아주머니가 해주신 인제라는 생각보다 훨씬 맛있었다. 식당에서 먹은 인제라는 시어서 많이 못 먹었는데 아주머니가 주시는 인제라는 싸 먹는 반찬도 입맛에 맞아 꽤 많이 먹었다. 먹는 동안 아저씨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행히 아저씨는 영어를 잘하셔서 암하릭을 모르는 내가 대화에 끼지 못하고 인제라만 꾸역꾸역 먹을 필요는 없었다. 차까지 얻어 마시고 기념사진 한 장 찍자고 말씀드리니 아주머니는 갑자기 일어나셔서 방에서 가발까지 꺼내 쓰고 나오셨다. 나온 사진을 본 두 분은 쑥스러워하며 웃으셨다. 형이 이런 따뜻한 분들과 함께 지낸다니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