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의 아프리카 여행법 - Maasai Mara, Kenya
저녁엔 근처 마사이족 마을을 방문하는 일정이 있었다. 야간에는 게임 드라이브를 안 하기 때문에 딱히 캠핑장에서 할 게 없는 관광객들을 위한 하나의 관광코스였다. 입장료가 싸진 않았지만 아직 해도 지지 않았고 현지인들의 모습도 구경할 겸 나도 같이 가기로 했다. 마사이족 마을은 우리 캠핑장에서 멀지 않아 걸어갈 수 있었다.
젊어 보이는 마사이 청년에게 입장료를 지불하고 마을로 들어갔다. 예전에 집에 있던 어린이용 백과사전에 마사이족을 소개한 단락이 있었는데 키가 굉장히 크고 마른, 특이한 옷을 입은 까만 피부의 사람들을 보고 어린 나이에 꽤나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때 봤던 마사이족의 모습이 ‘아프리카 사람’의 첫인상이었고, 이때 생긴 ‘아프리카 사람’의 이미지를 여행 준비를 하던 몇 달 전까지 가지고 있었다니 사람의 고정관념 탈피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무튼 거기서 보았던 마사이족을 약 20년 만에 직접 보게 된 것이다.
우리들의 등장에 마사이족 사람들은 대열을 맞추더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전 세계에서 몰리는 관광객들을 상대해 왔던 탓일까. 그들은 굉장히 조직적이고 능숙했다. 갑자기 젊은 마사이족 한 명이 점프를 한다. 뒤이어 다른 젊은이들도 점프를 한다. 마사이족은 높이 뛸 수 있는 사람을 용감한 전사라고 여긴다는 걸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그렇게 환영식이 끝나니 마사이족은 우리를 한 명씩 소똥으로 만든 각자의 집으로 데려간다. 나도 한 아저씨에 손에 이끌려 그의 집에 들어갔다. 캄캄한 집 안. 침실, 주방 등이 있지만 제대로 갖춰진 주거공간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거기서 마사이족의 생활모습도 보여주고 이런저런 설명도 해주다가 슬쩍 본론을 꺼내는데 그것은 바로 기념품을 사라는 것. 기념품을 사면 그 수익금을 근처 마사이족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위해 쓰인다고 했다. 정말 미안했지만 나는 기념품을 사는 족족 짐이 되기에 정중히 거절하고 집 밖으로 나왔다.
들판에는 아이들이 뛰놀고 있다. 사진은 마음껏 찍어도 좋다고 미리 허락을 받은 터라 주변에 아이들 세 명을 모아놓고 사진을 찍었다. 같은 사진을 세 장을 출력해서 한 장씩 나눠주니 아이들은 굉장히 신기해했다. 또 옆에서 지켜보던 마사이 어른들도 관심을 보였다. 아이들이 모인 곳엔 더 많은 아이들이 모이는 법. 또 다른 아이들 몇 명을 세워놓고 사진을 찍어주려고 하니 주변에 아이들은 20여 명으로 불어났다. 큰일 났다. 아이들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모르고 필름은 몇 장 안 가져왔는데. 일단 자리를 떠야겠다.
자리에서 일어나 몇 걸음 걸었을 때였다. 다리에서 느껴지는 온기. 뭐지? 출처를 확인하기 위해 시선을 내렸다.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가 내 바로 옆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서 뿜어져 나와 내 다리에 닿아 흘러내리는 액체. 지금 이 아이가 내 다리를 겨냥하고 오줌을 싸고 있는 것이다. 아…. 이게 그 따뜻함의 정체였구나. 순간 생각했다. 이게 마사이식 환영인사인가?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이 세상에 어느 민족이 환영인사를 배설
물을 상대방에 몸에 묻히며 하겠나.
“으힉!”
내가 기겁하며 소리를 지르자 오줌을 싸던 꼬맹이는 꺄르르 웃으며 도망을 치고 옆에 있던 마사이 아저씨들은 노 프라블럼이라며 허허허 웃는다. 이 사람들아 나에겐 노 프라블럼이 아니란 말이다. 다행히 그중 한 분이 바가지에 물을 갖다 줬고 그걸로나마 대충 다리를 씻을 수 있었다. 오전엔 새똥을 맞고 오후엔 오줌을 맞는구나. 아, 눈물.
아까 잠깐 모였던 아이들은 금세 또 흩어져 놀고 있다. 옳지. 애들을 모으지 말고 내가 다니면서 찍는 게 수월할 것 같다. 그렇게 한 명씩 3~40명의 아이들의 사진을 찍었다. 필름이 부족해서 일단 찍고 캠핑장으로 돌아가서 다시 가져다 줄 생각이었다. 뷰파인더로 아이들과 눈을 마주칠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마사이 아이들이 커서 저 옆에 있는 키 큰 마사이 청년처럼 돼서 이 마을을 지킬까? 아니면 이곳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까? 어떤 삶을 살든 지금처럼 웃을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