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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환 Apr 06. 2017

아이들은 어디를 가도 아름답다

보통 사람의 아프리카 여행법 - Addis Ababa, Ethiopia

 굿네이버스에서 후원 아이들을 위한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이른 아침, 사무장님의 차를 얻어 타고 행사장으로 향했다. 비포장도로를 지나 울퉁불퉁한 골목 깊숙이 들어가니 한 건물 앞에 아이들이 여럿 모여 있었다. 유치원이자 학교이자 강당인 이곳이 오늘의 행사장이다. 후원 대상이 아닌 아이들도 오늘 행사가 있는 걸 알고 모였는데 장소가 모든 아이들을 들여보내 줄 만큼 넓지 않아 이렇게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라고 했다. 


이곳 사람들은 어른이나 아이나 악수를 참 좋아한다


 경비 아저씨가 우리 차를 보더니 아이들을 휘이휘이 내저으며 길을 터 주신다. 양쪽으로 열리는 철문을 통과해 자갈로 된 마당에 차를 댔다. 행사 시작까지 시간이 꽤 남았는데도 이미 많은 아이들이 와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 아이들은 연예인이라도 나타난 듯 우리 쪽으로 몰려든다. 그리고는 땡그란 눈을 깜빡이며 손을 내밀어 너도나도 악수를 청한다. 악수가 끝난 아이들은 키득거리며 후다닥 달아난다.

 한국 사람들이 오면 아이들이 너무나 좋아해서 사무장님이 아마 유명인이라도 된 기분을 느낄 거라고 하셨는데 정말이었다. 아이들이 나랑 악수를 하기 위해 줄을 선 모습을 보니 학급 선거에 나간 유치원생이 된 것 같았다. 이번에 반장 되면 요구르트 돌릴게.

 선거 유세(?)를 마치고 이 학교의 구석구석을 돌아보았다. 건물 뒤편에 있는 교실로 들어가니 연보라 색 니트를 교복으로 입은 유치원생들이 열렬한 환영과 함께 ‘Hi, Hello, How are you, What is your name’ 등 알고 있는 모든 영어를 마구마구 쏟아낸다. 벌써 영어를 배웠구나. 아이고, 귀엽다.



 아직 행사 전이라 강당은 비어 있었다. 몇몇 아이들이 의자에 앉아있길래 다가가 봤다. 여기서도 나는 유명인이다. 길거리의 아이들처럼 구걸을 하거나 ‘차이나, 차이나’ 하며 조롱을 하는 아이들은 없다. 우리가 자기들을 위해 뭔가 좋은 일을 하러 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행사가 시작됐고 아이들은 사이즈가 전혀 맞지 않는 주황색 행사 기념 티셔츠를 입고 줄지어 강당으로 입장했다. 현지 스탭이 내게도 티셔츠를 건넸다. 그곳엔 굿네이버스 로고와 함께 ‘African Child Day’라고 쓰여 있었다. 이게 오늘의 행사다.




 강당은 이미 아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나도 그 속에 섞여 자리를 잡고 쭈그려 앉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갑자기 내 다리가 너무 하얘보이는 것이었다. 아무리 이 아이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기로서니 평생을 봐온 내 피부색이 이렇게 낯설어지다니...

 사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서아프리카나 남아프리카 사람에 비해 피부가 덜 까맣다. 아프리카 사람은 전부 같은 흑인이 아니냐고? 우리 황인종도 피부색이 다 똑같이 '노랗지' 않듯 흑인들도 피부가 똑같이 '검지' 않다. '검을 흑(黑)'이 뜻하는 피부색이 이렇게 다양하다는 걸 아프리카에 와서야 깨달았다. 그중 에티오피아인들은 서아프리카나 남아프리카 쪽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밝은 피부톤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의 얼굴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아프리카인의 외모와 달리 코가 높고 눈이 부리부리해서 여러모로 중동 사람들의 외모에 가깝게 보이기도 한다. 덩치는 다른 아프리카 민족보다는 왜소해서 길거리를 지나다녀도 대한민국 평균 언저리에 있는 나보다도 작은 성인 남자들도 많이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혼자 길을 다녀도 약간은 안심(?)이 된다.




 행사는 아이들의 노래, 콩트, 연극 등으로 진행됐는데 현지어인 암하릭(Amharic)을 모르는 나는 오 분 만에 지루해졌다. 눈치를 보다가 슬그머니 강당 밖으로 나왔다. 마당에는 나와 같은 처지의 유치원생들이 식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까 교실에서 만났던 연보라색 니트를 입은 아이들이다. 살며시 다가가서 말을 걸어보려는 순간, 으헉! 아이들이 갑자기 내게 악수를 하려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마당은 그만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이거 내가 벌집을 건드렸구나. 큰일 났다. 

 그런데 선생님 한 분이 나오셔서는 느닷없이 ‘반짝반짝 작은 별’을 부르기 시작하셨다.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노래를 따라 부르며 대열을 유지했다. 아하, 한국의 '합죽이가 됩시다 합' 정도 되는 노래인가 보다. 정말 글로벌한 동요가 아닐 수 없다. 

 유치원생 아이들과 놀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들어 강당 앞에 쪼그려 앉아 있는 초등학생들과 같이 앉아서 공기놀이를 하며 행사가 끝나길 기다렸다(역시 글로벌한 놀이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아이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영어를 총동원한다.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내던 열한 살짜리 여자아이는 묻다 묻다 밑천이 드러났는지 나중엔 우리 할머니 이름까지 물어봤다.


 행사가 끝나고 아이들의 개인 사진을 찍어줄 시간이 있었다. 선생님들과 직원분들의 협조로 이런 시간을 갖게 되어 감사했다. 아이들은 뭔지도 모르면서 기대를 잔뜩 한 눈치다. 반별로 줄을 세워 한 명씩 벽 앞에 세워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어색한지 처음엔 차렷 자세로 굳어 있다가 내가 먼저 웃어주면 그제야 긴장을 풀고 환하게 웃는다. 뷰파인더 속의 아이들이 웃는 순간을 정확히 포착할 때의 그 희열. 아, 이거 하길 잘했다.



 인화기 배터리의 한계로 그 자리에서 전부 인화를 해줄 수는 없었다. 어차피 며칠 후 다시 이곳에 모인다고 하니 그때 나눠주면 될 것 같다. 아이들은 자기가 예쁘게 웃고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받아 보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겠지. 찍을 때는 기다리는 아이들이 많아 사진을 한 장씩 찬찬히 볼 수가 없었는데 집에 와서 인화를 하면서 보니 하나같이 어쩜 이렇게들 예쁜지 모르겠다. 예쁜 애들만 모아놨나(형에 게 들으니 실제로 에티오피아 아이들이 NGO나 국제기구 홍보물에 자주 등장하는 편이라고 한다). 며칠 후 아이들이 사진을 받고 좋아할 모습을 떠올리니 웃음이 났다. 아,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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