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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환 Apr 18. 2017

수도 탈출, 바흐다르

보통 사람의 아프리카 여행법 - Bahir Dar, Ethiopia

 에티오피아에 머무는 3주간 아디스아바바에만 머물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다행히 형이 휴가를 받아 함께 지방 도시들을 가 볼 시간이 났다. 지난 주말, 시내에 있는 버스회사를 찾아가 버스표까지 사놨겠다 이제 짐 싸서 떠나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하나 찜찜한 구석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버스 출발시각이었다. 아무래도 장거리 버스다 보니 출발시각이 이른 아침이었는데 일러도 너무 이른 게 문제였다. 아침 5시 30분 출발. 버스를 타려면 집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버스정류장까지 가야 했는데 그 시간에 택시가 잡힌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설령 택시가 다닌다고 해도 캄캄한 새벽에 아무 택시나 잡아 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출발하기 전날 한 택시기사에게 새벽에 집 앞으로 와달라고 하고 휴대폰 번호를 교환했다. 버스정류장의 위치를 확인시켜 주고 가격까지 얘기가 됐으니 이제야말로 가볍게 떠나기만 하면 됐다. ‘돈도 넉넉히 준다고 했는데 설마 택시기사가 펑크 내겠어? ’라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 요만큼 자리 잡긴 했지만 말이다.


 출발일 이른 새벽. 잠도 덜 깬 상태로 택시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대로 오고 있겠지? 하지만 길어진 통화 연결음에 불안한 마음은 더욱 커진다. 


"헬로"


아직 잠이 덜 깬 목소리다. 


"우리 어제 예약한 사람들인데, 잘 오고 있니? .......뭐? 오늘이 아니라 내일 아니었냐고? 장난하냐!!"


 순간 확 열이 받아 큰 소리를 냈더니(물론 통화한 건 내가 아니라 형이었다) 미안하다는 한 마디를 남기고 전화를 끊는 이 남자. 다시 전화하니 전화기는 꺼져 있다. 지금 우리는 택시기사에게 까인 것(?)이다. 별 고민 없이 우리의 제안을 수락한 택시기사를 믿은 우리가 바보지.....후회해도 늦었다.


 버스 시간을 맞추려면 일단은 나가서 지나다니는 택시라도 잡아야 했다. 하지만 집을 나서려는 그 순간, 탕탕탕탕!! 굉음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였다. 세차게 울리는 양철지붕 소리를 들으니 멘 가방을 다시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우기가 끝날 무렵이긴 했지만 아직은 이렇게 한번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살벌하게 쏟아지는 그런 시기였다. 고민이 됐다. 새벽 4시, 쏟아지는 빗속을 걸어가 택시를 잡을 것이냐 아니면 버스표를 날릴 것이냐. 멍한 상태로 4시 반까지 비가 잦아들길 기다리다 내린 결론은 포기였다. 이 시간에 빗속을 뚫고 나가봤자 택시가 잡힐 것 같지도 않으니 차라리 오늘 푹 자고 아침에 비행기표를 알아보는 게 낫겠다 싶었다. 


휴지조각이 돼 버린 버스표 2장




프로펠러 비행기. 소음이 엄청나다.

 

 다음날 아침 7시 10분, 무사히 바흐다르 행 비행기에 올랐다. 다행히 공항까지 가는 택시는 제 시각에 집 앞으로 와줬고 미리 정한 금액만 받고 딴소리를 하지 않았다. 프로펠러가 달린 소형 비행기라 시끄럽고 많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어쨌든 무사히 바흐다르 공항에 내렸다. 

 바흐다르 공항은 내가 여태껏 가본 모든 공항 중에 가장 볼품없는 공항이었다. 웬만한 아프리카 도시의 버스터미널도 이거보단 크겠네, 하며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는데 저 멀리서 승객들의 짐을 싣고 오는 화물차가 보였다. 그런데 짐 하나 가 툭 하고 떨어진다. 파란 레인커버를 씌운 저것은…? 내 가방이다. 젠장. 저 많은 짐들 중에 바닥에 내동댕이 쳐진 게 내 꺼라니... 드라이버는 차를 멈추고 활주로에 덩그러니 남겨진 내 가방을 아무렇지도 않게 집어 짐칸으로 휙 던지더니 다시 운전대를 잡는다. 그리고 내 가방은 겨우 구색을 맞추기 위해 만든 것처럼 보이는 컨베이어 벨트를 통과하여 내 품에 안겼다. 


그거 제꺼에요...


 항공기 수하물 처리 과정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보유한 바흐다르 공항을 빠져나와 호텔에서 나온 작은 승합차에 올랐다. 우리가 예약을 한 건 아니었고 일단 호텔까지 가서 결정해도 된다는 조건에 동의한 호텔 직원을 따라간 것이었다. 덕분에 쉽게 호객꾼들을 따돌릴 수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바흐다르는 아디스아바바와는 전혀 다른 인상을 주는 도시였다. 명물인 블루나일 폭포에 가보기도 전, 거리의 야자수만 보고도 이곳이 에티오피아에서 손꼽히는 관광지임이 느껴진다. 아디스아바바의 뿌연 하늘만 보다가 온 내게 바흐다르의 하늘은 이곳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길거리의 사람들의 표정도 어딘가 모르게 좀 더 여유로운 느낌이다. 비로소 여행지 속 여행지에 온 것 같다. 다시 설레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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