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문환 Apr 21. 2017

폭포 앞에서 내가 마주한 것

보통 사람의 아프리카 여행법 - Bahir Dar, Ethiopia

 내일 블루나일 폭포까지 갈 차편을 구하기 위해 터미널로 갔다. 말이 터미널이지 제대로 갖춰진 건물 형태는 아니고 양철로 된 울타리가 있는 공터였다. 그 안에 판자로 만들어진 매표소가 몇몇 있었고 포장되지 않은 흙바닥 위로 많은 버스와 승합차들이 오갔다. 외국인을 보기 힘든 지방도시에 동양인 남자 둘이 서성거리니 자연스럽게 호객꾼들이 몰려든다. 일당으로 보이는 두 명이 다가오더니 블루나일까지 왕복에 1인당 150비르를 부른다. 나쁘지 않은 가격에다가 우리 말고 독일인 4명이 더 있다는 말을 들으니 안심이 돼 그들의 사무실까지 따라갔다. 이 사람들은 건물 복도에 책상 하나를 가져다 놓고 이걸 ‘오피스’라고 하나 보다. 책상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150비르를 지불했다.


“자, 됐어. 너희 호텔로 내일 아침 8시까지 갈게.”

“그게 다야? 티켓이나 뭐 영수증이라도 줘야지.”


바흐다르 버스 터미널


 구두로만 약속을 하려는 그들에게 티켓을 요구하자 귀찮은 듯이 종이 쪼가리 하나를 찍 찢어준다. 너무 형편없이 생겨서 티켓인지 뭔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뭐 어쩌겠나. 찜찜한 느낌을 뒤로하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다음날 아침. 늦잠을 자는 바람에 허겁지겁 아침을 먹고 호텔 로비에서 어제 약속한 차를 기다렸다. 그러나 10분, 20분, 30분이 지나도 우리를 태우러 와야 할 차는 오지 않는다. 게다가 받아놓은 번호로 전화를 걸었더니 없는 번호란다. 그래. 그렇게 허접한 종이 쪼가리를 주고 티켓이라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아니면 전화번호라도 제대로 된 게 맞는지 그 자리에서 확인을 보든가.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어쨌든 오늘 블루나일 폭포에 가긴 가야 했기에 다시 터미널로 향했다. 그런데 어제 그 2인조가 눈앞에서 차에서 내려 우리를 향해 걸어오더니 다짜고짜 막 성질을 부린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걸까.


 얘기를 들어보니 우리가 묵었던 호텔과 비슷한 이름의 호텔이 근처에 또 있었고 우리가 어제 이들에게 호텔 이름을 잘못 알려준 것이었다. 그들은 거기에서 우리를 계속 기다리다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우리가 묵은 호텔에 전화를 걸어 우리의 행방을 쫓다가 마주치게 된 것이다. 그들이 사기꾼들이 아니라 우리가 바보였던 것. 그럼 그렇지. 이렇게 대놓고 사기를 칠리가 없지. 연신 미안하다고 하고 차에 올라타 나머지 잔금 200비르를 지불했다. 아침부터 꼬였던 모든 게 제자리를 찾은 것 같았다. 


 하지만 진짜는 이때부터였다. 독일인들 픽업을 가는데 갑자기 한 카페에 우리를 내려주더니 기름을 넣고 오겠다며 20분만 기다리란다.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지만 얼떨결에 내리게 됐고…. 그 이후로 그들을 다시 만날 순 없었다. 그놈들은 사기꾼이 맞았고 우리는 생각보다 더 바보였다. 차에 올라타고 나서 너무 반갑고도 미안함에 정신을 놓고 돈을 미리 줬는데 그때도 긴장을 풀지 말고 돈을 나중에 준다고 했어야 했다. 아까 우연히 마주치지만 않았어도 어제 선금으로 낸 100비르만 날리는 건데 괜히 마주쳐서 200비르나 더 날리게 된 것이다.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사기를 당하니 기분은 완전 엉망이었고 ‘생각해 보니 생긴 것도 사기꾼 같이 생긴 놈들이었다, 돈은 도착해서 줬어야 했다, 돈을 줘놓고 차에서 내린 우리가 병신이었다’는 해도 소용없는 말을 뱉어내며 터미널까지 터벅터벅 걸었다.


 다시 터미널. 호객꾼들의 관심을 평소보다 더 신경질적으로 다 뿌리치고 로컬 버스에 올라타 자리에서 기다리길 30여 분. 그렇게 버스는 예상시각보다 훨씬 늦게 출발했다. 아프리카 로컬 버스의 특징은 출발 시각은 정해져 있으나 사람이 다 차야 출발한다는 것이다. 결국 출발시간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 버스는 바흐다르 시내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길을 달린다. 길가에 보이는 다 무너져 가는 집들은 정말 여기가 아프리카 최빈국의 시골마을임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블루나일 폭포가 있는 마을은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시골이었다. 길거리의 나귀들은 짐을 싣고 아이들은 맨발로 물건을 판다. 강풍에는 견디지 못할 것처럼 보이는 양철 집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길을 걷는 어른들은 거적때기를 걸치고 있었다. 아이들은 외국인들이 신기한지 와서 악수를 청하고 ‘할로’를 외치며 낄낄거린다.



 폭포를 보려면 입장권을 사고 트레킹 코스를 걸어야 한다. 매표소에다 돈을 내고 루트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티켓을 사긴 했는데 아무 데서도 검표를 하지는 않았다). 에티오피아에서 유명한 관광지라고 하는데 관광객은 우리 둘뿐 다른 관광객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30분 정도 걷고 나니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됐다. 뷰포인트까지는 2.5km. 꽤나 가파른 산길을 걸어 ‘미스터, 미스터!’를 외치며 물건을 팔려는 아이들이 있는 마을을 지나니 폭포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산행을 막 시작할 때 한두 방울씩 내리던 비는 폭포에 도착할 때쯤엔 꽤나 굵어져 있었다.


 드디어 내 시야에 블루나일 폭포가 들어왔다. 비가 와서 그런지 무섭게 쏟아내리는 물은 전부 흙탕물이었지만 폭포의 규모는 내 기대보다 훨씬 웅장했다. 날씨 때문일까. 폭포에선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관광객은 단 한 명도 없다. 폭포 앞 나무 아래에서 커피를 파는 모녀만이 우리를 반길 뿐이다.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빗물을 우산으로 가리고 쭈그려 앉아 커피를 내리는 엄마. 그리고 옆에서 찻잔을 준비하는 그녀의 든든한 조수인 딸. 

 

 이전에도 많은 나라들을 다녀봤지만 한 번도 그곳에서 만난 누군가의 삶에 나를 대입시켜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따금 폭포를 찾는 관광객에게 커피를 파는 저 모녀의 삶과 내가 지내온 삶의 간극이 너무나 확연하게 느껴진다. 궂은 날씨에 커피를 팔아야 하는 처지에 대한 동정도 아니고, 나는 저러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은 더더욱 아니었다. 온전한 다름. 나는 그들의 삶을 모르고 그들은 내 삶을 모른다는 것. 당연하지만 여태껏 몰랐던 것. 아니, 머리로는 알았지만 가슴으로는 몰랐던 것을 지금 쏟아지는 흙탕물 앞에서 새삼 깨닫는다. 에티오피아도 다른 아프리카 국가처럼 관광 인프라가 좀 더 잘 갖춰져 저 모녀도 지금처럼 한가하게 있지 않고 바쁘게 커피를 내렸으면 하는, 처음 보는 타인의 삶에 주제넘은 바람 하나를 가져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수도 탈출, 바흐다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