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없음
어수선한 머리를 정리하고 싶어 산책길에 나섰다.
늘 익숙한 길…
별 다를 것 없는 길…
우리 집에서 서울대공원까지 호수를 끼고도는 나의 산책 코스는 대략 만 보 정도되는 거리다.
가끔은 호수 옆에 자리한 의자에 앉아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리프트를 바라보다 시간 가는 줄 모를 때도 있다.
가는 길에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정문에서부터 동물원까지 가는 긴 산책로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크게 그려 놓았다.
가만히 서서 표지판을 바라보았다.
‘내 인생길도 이렇게 누군가 친절하게 다 알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가는 길을 내가 정확하게 알고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단, 보행로를 이용하고, 한 방향으로 걸어가야 하고, 방역 수칙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말이다.
출입구는 어디에 있고, 화장실은 어디에 있고, 동물원 둘레길은 어디에 있고, 삼림욕장 길은 어디에 있다고
이 표지판처럼 누군가가 친절하게 알려준다면 웅덩이도 피할 수 있고, 계단도 피할 수 있을 텐데…
그런데,
잠시 의자에 앉아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리프트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다 알면 편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지루할 수도 있잖아. 짜인 길에서 오로지 산 정상만을 향해 올라가는 저 답답한 리프트처럼.’
‘처음엔 신기하고 설레기도 했겠지. 하지만 늘 계속 타다 보면 곧 지루하고 재미없어지겠지.’
‘이 산책로도 늘 다니다 보니 지루하고 재미없잖아.’
아이가 어렸을 적, 차 트렁크 가득 바리바리 싸 들고 와서 놀다 간 그 서울대공원 길을
지금은 언제든지 가고 싶을 때면 걸어서 간다.
처음 이사 와서 남편과 무던히도 다녔던 길.
처음에는 걸어서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고, 또 무엇보다 자연이 주는 편안함에 자주 다녔다.
그런데 그 자주가 문제인 것이다.
나의 변덕스러움이 한몫을 했겠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처음보다 덜 신선하고 살짝 지루하기까지 하다.
그러고 보니 우리 인생이 정답이 없는 듯하다.
누군가가 알려주지 않는다 해도, 또 누군가가 알려준다고 해도 정답 없이
하루하루 기도하면서 성실하게, 정직하게, 진실하게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평평한 길도,
오르막길도,
서서히
숨 고르며
즐겁게, 행복하게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