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숙재 Apr 08. 2024

번갯불에 콩을 볶느라...

봄이 온 줄도 몰랐네!

번갯불에 콩 볶듯이 딸아이의 독립이 진행되었다. 

마음 아플 새도, 쓸쓸해할 새도…… 없이 마구마구 시간이 갔다.

침대를 빼고, 책상을 빼고, 의자를 빼고, 책장을 빼고, 옷을 빼고… 빼고… 빼고… 

다 빠진 딸의 빈 방을 보며 울컥 눈물이 났다.

뜨거운 눈물이 내 온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침대 밑에 가득히 쌓인 머리카락과 먼지가 딸아이의 분신처럼 느껴져 쓸어 담을 수가 없었다.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냥,

집 밖을 나왔다.


그냥, 

걸었다.


아무 생각 없이 텅 빈 머리를 안고 두 다리가 가는 대로 따라갔다.





산책길에 들어서자 곳곳에 꽃들이 피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 꽃이 피었네......'

슬픈 한숨이 후우~ 나왔다.

'...... 꽃이 피었네...... 피었어......'

'딸아이의 황망한 독립을 준비하느라 아무것도 안 보였네......'

‘... 그러네... 그러네... 그러네...’


아무것도 몰랐다.

꽃이 피었는지, 봄이 왔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몰랐어!


번갯불에 콩을 볶느라……


봄이 온 줄 몰랐네...





작가의 이전글 빈 둥지 증후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