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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난돌 Jan 10. 2019

여행을 준비하며

고민 또 고민하다

  호치민으로 들어가 하노이로 나오기까지 걸린 25일. 그 사이에는 나짱, 호이안, 다낭처럼 익숙한 이름도 있지만, 뚜이 호아, 꾸이년, 꽝응아이 같은 생소한 이름도 있었다. 가이드북에도 소개되지 않은 곳들이다. 여행의 목표는 분명했다. 베트남 중부지방에,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학살을 기억하기 위해 세워진 위령비와 증오비를 방문하는 것. 그리고 가서 본 것을 글에 담아내는 것. 


  항공권을 끊고 가장 먼저 한 것은 비자 신청이었다. 15일 이내의 짧은 휴가라면 베트남을 방문할 때 굳이 비자 신청을 할 필요가 없다. 그 이상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15일 이상 여행하며 베트남에 한 번만 입국한다면 단수 비자를 발급받으면 된다. 하지만 두 번 이상 입국한다면, 예를 들어 베트남에 최초 입국한 뒤 이웃 국가인 캄보디아에 갔다가 다시 베트남으로 들어오는 등의 루트라면 복수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비자를 대신 신청해주는 대행사가 꽤 있고, 3~5일의 시간이 소요된다. 나는 수수료도 부담스러워 직접 e-visa를 신청하고 사본을 인쇄(없으면 꽤나 귀찮다)해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출국을 한 달 앞두고 비행기 티켓을 끊었기에 항공권만으로도 출혈이 컸다. 따라서 다른 부분에서 최대한 허리띠를 졸라매기로 했다. 목표 예산은 100만 원. 이 안에서 항공권, 비자발급, 숙박, 교통, 체류비 등 모든 것을 해결하기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지막 도시였던 하노이에서 카드를 긁는 바람에 약 10만 원 정도를 초과 사용했지만,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호치민에서 묵을 숙소만 예약하고 이후의 스케줄은 유동적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이제 자료조사만 남았다. 친구와 논문, 서적, 인터넷, 영상 등으로 범위를 나누어 역할을 분담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도서관에 가면 평소 관심이 있어 동아시아 역사에 관련된 서가에 자주 갔는데 바로 옆 책장에 베트남전에 관한 서적이 많이 구비되어 있었다. 가장 많이 참고한 책은 『미안해요 베트남』으로 위령비의 대략적인 위치와 단서가 가장 자세히 나와 있었다.


  인터넷의 경우에는 2016년 겨울 설립되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한베평화재단>에서 이미 많은 자료가 있었다. 참고할 수 있는 논문의 제목이나 배경 설명 외에도 꽝남 성에 세워진 위령비의 위치를 구글 지도에 표기하여 공유하고 있다. 여기서 꽝남성의 ‘성’은 우리나라의 ‘도’처럼 가장 큰 구역단위이다. 민간인 학살이 벌어진 곳은 중부 지역의 ‘꽝남성, 꽝응아이성, 빈딘성, 푸옌성, 카안호아성’ 이렇게 5개 성이다.


  문제는 꽝남성 외의 4개 성에 있는 위령비에 대해서는 ‘마포구 망원동에 위령비가 있다’, ‘주로 마을 입구 근처에 위령비가 있다’와 같이 추상적인 단서들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선 <한베평화재단>과 관련 저서에 언급된 마을 이름들을 모두 적은 후 어느 마을이 어느 성에 위치해 있는지 다시 정리했다. 그 후 여행 기간에 맞추어 어느 마을에 얼마나 머물면 좋을지 대강의 일정을 짰다. 한 가지 더 어려웠던 점은, 베트남 문자인 쯔놈으로 함께 표기된 마을 이름이 별로 없다는 점이었다. 결국 위령비의 정확한 위치를 찾는 일은 직접 베트남에 간 이후의 몫이었다.


  출국 전까지 할 수 있는 일은 「미친 시간」과 같은 관련 다큐멘터리, 『베트남 전쟁, 반쪽의 기억, 잊혀진 전쟁』 등의 책, 그리고 논문을 읽는 것뿐이었다. 자료조사를 하면 할수록, 나는 이 여행을 떠나는 게 맞는지 반신반의했다. 내가 괜한 일을 들쑤시는 게 아닐까. 오히려 이 여행이 그들의 상처를 덧나게 하는 건 아닐까. 가서 위령비 하나라도 제대로 찾을 수나 있을까. 하루마다 하나의 근심이 얹혀 머리가 무거워졌고, 무엇하나 내 맘대로 가볍게 할 수 있는 것은 배낭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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