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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난돌 Jan 13. 2019

약 설명서를 읽는 사람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원래는 어디 있을지 모를 위령비를 찾아 숙소를 나가야 하지만, 꾸이년에서의 일정을 늘리더라도 하루를 푹 쉬기로 친구와 합의했다. 어제 기차에서 있었던 일에 심적으로 힘들었던 것도 이유이지만, 오토바이를 타며 햇볕에 노출된 탓에 친구와 나 모두 팔이 성치 않았기 때문이다.


  친구는 딱 하루 깜박하고 선크림 바르는 것을 건너뛰고 땡볕 아래 몇 시간을 있더니 화상을 입었다. 더 이상 햇볕을 받으면 안 되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긴 팔 겉옷을 입었는데 이번에는 열이 차 수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나대로 선크림을 바르고 땀을 흘려서인지 얼굴과 팔에 두드러기 같은 것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깨끗이 씻고 나면 가라앉는데 선크림만 바르면 올라와 심히 간지러웠다, 그렇다고 바르지 않으면 친구처럼 화상을 입을 것 같아 휴식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오랜만에 늦잠을 자니 한국에 있는 기분이었다. 잠을 깨서도 이불로 몸을 꽁꽁 싸매고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는데 피로가 탁 풀리는 듯했다. 6인실 도미토리였는데 늦잠을 자는 건 우리 뿐이었는지 다른 침대는 이불이 어지럽혀진 채로 비어 있었다. 


  느지막히 숙소를 나가 팔을 가리고 그늘 밑으로 걸으며 멀지 않은 식당에서 쌀국수로 아점을 먹었다. 역시 멀지 않은 곳에 창이 탁 트인 카페가 있어 그 안으로 피신했다. 여기서 햇볕이 가장 강한 세 시가 지날 때까지 버틸 생각이었다. 주문을 하기 전에 직원이 와 따뜻한 차를 따라주었다. “깜 언”말하자 그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짓고는 총총 사라졌다. 


  그 때 친구가 가방에서 주섬주섬 약을 꺼내더니 유심히 바라본다. 뚜이 호아에 있을 때 산 약인데, 약국 아주머니에게 화상을 번역한 단어를 보여주자 선크림을 내미셨다. 팔을 절레절레 저으며 아프다는 시늉을 하자 아주머니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할 수 없이 친구가 긴팔을 걷고 팔을 보여주자 소스라치게 놀란 아주머니가 바로 건네준, 그런 이야기가 있는 약이었다. 단내가 진하게 나고 색깔도 진갈색에 알갱이가 알알이 있는 것이 딱 흙설탕 같이 생겨서 우리는 그 약을 흙설탕이라고 불렀다.


  “먹지 마세요. 피부에 양보하세요.”

  시시껄렁한 장난을 치고 있자니 친구가 겁 없이 팔에 듬뿍 약을 바른다. 

  “설명서 안 읽어도 돼?”

  “약 바를 때 누가 설명서 읽어.”

  “하긴.”

  “아, 있다.”

  “엥?”

  “아이 키우는 부모.”


  아아! 갑자기 머리 어딘가가 확 트이는 대답이었다. 손으로 입을 가리며 “넌 그런 거 어떻게 알았어?” 하자 교수님 따라 학회에 갔다가 들었단다. 논문 발표였는데, 한국으로 이주한 동남아 여성들에게 제약 설명서에 적힌 용어들을 가르쳐야 한다며 나온 이야기였다. 자기 자신이 먹거나 바르는 약은 무작정 쓰고 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부모만은 아이에게 약을 먹일 때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며. 그런데 약 설명서에 적힌 단어들은 한국인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들이 많아 애를 먹는다며.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왜냐 하면, 생각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내 경험 밖의 일이었고, 그래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기에 일말의 상상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어쩌면 다른 사람을, 다른 세계를 이해하는 데는 결코 한도 끝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지금 이대로도 괜찮은 사람』에도 비슷한 부분이 있지 않은가. 모두들 자신은 모순된 심리가 얽혀 있어 한 마디로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존재이지만, 다른 이에 대해서는 단순하게 판단하고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우리는 누군가를 정말 잘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른 이의 경험을 잘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이 섣부른 것은 아닐까, 생각을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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