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난돌 Jan 13. 2019

반짝일수록 슬픈

한베평화공원과 오작교 승전비

  붕따우 위령비에서 다시 뚜이 호아로 가는 길목에는 한베평화공원이 있다고 했다. 《한겨레 21》에서 처음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후 베트남에게 과거에 대해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자는 시민운동 ‘미안해요 베트남’이 이루어지는 등의 노력이 있었다. 한베평화공원은 그 일환으로 《한겨레 21》독자들의 성금을 모아 2003년 조성되었다. 


  다만, 뚜이 호아에 있다더라 정도의 한 줄만 가지고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몰라 또 무작정 돌아다니고 있을 때였다. 공원 부지가 몹시 크다는 한 줄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럼 구글 지도에도 그게 보이지 않을까? 구글 지도를 위성사진 모드로 바꾸고 위령비 근처에서 큰 녹지처럼 보이는 곳을 찾았다. 근처에 한 군데가 있었다. 무작정 거기를 목적지로 설정하고 다시 오토바이로 달렸다. 


  마을 골목길로 들어가 학교처럼 보이는 곳을 지나쳤다. 아이들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기에 같이 손을 흔들었다. 시속 40km정도 되는 오토바이가 그 순간 너무나 빠르게 느껴졌다. 우회전, 좌회전, 우회전……. 구불구불 꺾고 들어가니 저 앞에서 허허벌판이 보였다. 완전히 가까이 다가가기 전까진 ‘진짜 저기가 맞나?’의뭉스러웠다. 길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야 했는데, 그냥 길가에서 보고 있으면 울타리와 우거진 나무로 인해 잘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안쪽으로 들어가니 철문이 굳게 닫혀 쇠사슬과 자물쇠로 잠겨 있고, 그 옆에 한베평화공원 (Cong vien Hoa binh Han-Viet)이라는 이름이 보였다. 아무래도 맞게 찾아온 것 같았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나오는 둥근 조형물이 저 안쪽에 끝부분만 희미하게 보였다. 나뭇잎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고, 사람의 손길이 닿은지 오래 되어 보였다.


  한베평화공원은 설립된 이후 아직 한국에 대한 반감이 남아 있는 마을 사람들에 의해 여러 번 조형물 등이 망가졌다고 한다. 2011년 출간된 『미안해요 베트남』에서 한베평화공원을 다룬 부분에서는, 넓은 공원을 혼자 관리하는 군인 출신 관리인이 힘에 부쳐 보였다고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7년이 흐르고, 그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공원은 그 모습 그대로, 지금의 상황을 여실히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의 상처도, 우리의 사과도 한 번의 단언으로는 결코 치유도 전달도 될 수 없다는 것을.


  아쉬운 마음을 못내 떨치며 북쪽으로 향했다. 시내 중심가를 다시 지나쳐 주상절리 관광지인 다디아 리프로 가는 방향, 1번 국도의 어느 지점, 오른쪽에는 맹호·백마 부대의 승리를 기념하는 오작교 승전비가 있다. 승전비를 찍은 블로그 글 하나에 의지해서 가는 것이기에 가는 길 내내 주변을 잘 살펴야만 했다. 이 쯤되면 나올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을 몇 번이나 해도 나오지 않아 ‘승전비이기 때문에 없앴나?’라는 의문이 드는 찰나, 사진과 비슷해 보이는 큰 바위가 나왔다. 갓길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되돌아가 보니 승전비가 맞았다.


  승전비는 이름처럼 오작교 작전에 승리한 이후 세운 것으로 바로 밑에서 보면 고압적으로 느껴질만큼 크다. 그리고 그 승전비는 베트남어로 적혀 있었다. 그러니 승리 자체를 축하한다기보다는, 상대의 기를 꺾기 위한 의도였음이 다분하다. 


  오토바이로 국도를 달리다 어느 순간 시야를 가로막고 있던 산이 사라지며 넓은 벌판이 한 순간에 드러나는데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베트남은 경작하는데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어 연간 3모작도 가능할 정도로 비옥하다. 그것을 내 눈으로 보고 있는데, 너무나 눈이 부셔 가만히 서서 보고 싶은 모습이었다. 드디어 여행의 가닥이 조금씩 풀리고 있는데, 속은 더 꼬여만 가고 있었다. 베트남의 모습이 너무나 반짝일수록 마음은 더 시려왔기에. 

매거진의 이전글 그들이 허락한 경계 너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