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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난돌 Jan 13. 2019

그들이 허락한 경계 너머

실패로 돌아간 첫 시도

  헬멧을 부여잡고 빠르게 흩날려 잔상만 남는 나짱의 해변을 망연히 보고 있노라면 호스트의 영업력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옷은 땟국물 같은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우거지상을 해서는 호스트에게 사정을 설명하자 그는 자신 있는 미소를 지으며 호스텔 바로 앞의 오토바이 대여 가게를 소개해주었다. 

  “괜찮아요! 아주 쉬워서 누구나 탈 수 있어요! 그렇게 걱정되면 빌리기 전에 타는 법을 가르쳐줄게요!”


  오토바이는 1일 대여에 100,000동이었고, 기름값을 따로 받아 60,000동이 추가되었다. 8,000원 정도인데 친구랑 반으로 나누면 4,000원 즈음. 나짱 말고도 네 군데의 도시에서 더 오토바이를 타려면 뜻밖의 지출이 생기지만, 택시보다 나은 선택이겠거니 했다. 

  아침이 되어 약속한 시간에 가게로 가자 주인아저씨가 등을 두드리며 반겨준다. 아무래도 운전이 더 익숙한 친구가 먼저 타는 법을 배우겠다고 하자, 주인 아저씨가 먼저 오토바이에 타더니 길게 빠진 뒷자리 끝을 탁탁 치며 타라고 한다. 그렇게 그는 내 친구를 뒤에 태우고 사라졌다. 나는 딱히 뭘 해야 할지 몰라 그들이 사라진 방향만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내 뒤쪽에서 “어이!”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이번엔 친구가 앞에, 아저씨가 뒤에 타고 있었다. 


  "정말 잘 한다. 네가 계속 해도 될 정도로."
  친구에게 떠밀듯이 운전을 맡기고, 나는 뒤에서 구글 지도를 보며(유심칩이 내 핸드폰에 있으므로) 우회전 좌회전을 외치기로 했다. 가장 먼저 향할 곳은 닌토 마을이었다. 가는 길은 의외로 단순해서 한 번 직진을 외치면 그 뒤로 한참 동안 쭉 가면 되었고, 나를 못 믿는 친구가 계속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아?’ 물었다. 

  나짱의 북쪽을 더 지나 국도로 빠지자 휴양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띄엄띄엄 가게가 나왔고, 해변 도시가 맞나 싶을 정도로 왼쪽에는 산이 오른쪽에는 큰 밭이 펼쳐졌다. 지도가 알려주는 목적지까지는 오토바이로 40분을 달려야 해서 나는 이 길을 자전거로 달렸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좌회전, 우회전, 직진…. 언뜻 보면 무질서해 보이는 도로지만, 그 안에 숨겨진 나름의 규칙만 지키면 오히려 다른 운전자들이 배려해주는 것이 느껴졌다. 


  불안감이 엄습한 것은 아스팔트 바닥이 사라지고 흙바닥이 나타나며, 길의 폭이 몹시 좁아져 한 대의 오토바이도 아슬아슬하게 가야만 하는 길이 나왔을 때였다. 잠시 멈추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가이드북과 지도를 펼쳐놓고 있자, 근처에 있던 집에서 아주머니와 아저씨 한 분이 후다닥 나오셨다. 

  무어라무어라 말씀하는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베트남어였다.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기에 손가락을 스스로를 가리키며 “한꾸옥(한국인입니다)”을 반복했다. 그들은 환하게 웃더니 “휸다이! 휸다이!”했다. 몇 번 고개를 갸웃거리고 나서야 휸다이가 현대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래도 근처에 현대 공장이 있다는 뜻인 것 같았다. 사전을 뒤져 단어를 번역해 보여주자 그들은 연신 친절하게 웃어주며 열심히 설명을 해주었고, 우리는 감사의 인사를 하며 다시 돌아 나왔다. 


  그리고 누구랄 것도 없이 “얼른 나가자” 말했다.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분명히 친절하게 웃고 있었지만 뜻밖의 외지인에 대한 경계심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사실 당연한 것이다. 보통 우리가 보고 오는 다른 나라의 모습은 관광지에 한정되어 있고, 그것은 그 나라 사람들이 보여주고 싶어 하는 모습이다. 거꾸로 말하면, 여기까지 들어오는 것을 허용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경계를 넘어서면 관광지와는 전혀 다른, 어쩌면 진정한 삶의 현장이라는 점에서 우리네의 그것과 다르지 않은 광경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깊숙한 내면은 함부로 헤집고 들어가기 힘들다. 늘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곳에만 머물며 외연을 넓혔다고 좋아했던 예전의 나도, 그리고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는 지금의 나도 어딘지 부끄러웠다. 


  아저씨가 알려준 길을 따라가니 돈을 내고 입장해야 하는 근교의 해변이 나왔다. 커다란 버스 여러 대가 연이어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곳을 가려다 길을 잃은 여행자로 생각하신 듯하다.

  우리는 다시 닌토를 나와 닌푸억으로 향했다. 아무리 대로를 달려도 공장과 해안도로만 나올 뿐 마을과 같은 곳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오후 세 시가 되어 있었다. 아침 여덟 시쯤 나왔으니 꽤 오랜 시간을 달린 셈이다. 내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 맞는가, 자신에게 의문을 품는 순간 일말의 의욕마저 꼬리도 보이지 않게 사라져 버렸다. 깜깜한 밤에 달리는 초행길은 위험하기에 다시 시내로 돌아왔다. 내일이면 나짱을 떠나니, 아무래도 첫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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