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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타이거 Aug 14. 2023

스페인 직장인은 2시에 퇴근한다

나도 하고 싶다. 퇴근

지구가 멸망하지 않은 덕분에 2000년 여름, 배낭을 메고 한 달간 유럽 7개국다녀올 수 있었다.

그중 가장 느낌이 좋고 왠지 마음이 가는 곳이 스페인이었다.

모든 것을 무장해제시키는 따사로운 햇살, 오랜 유적들과 세련된 도시의 모습, 특유의 여유와 친절한 정서가 한데 어우러진 매력 넘치는 도시.


2023년에도 그 매력은 여전했다. 아니 한껏 업그레이드되었다.

철없던 20대에서 인생의 쓴맛을 알게 된 40대가 되었고, 혼자가 아니라 나의 분신인 딸과 함께였다.

거기에 현지 가이드의 상세한 설명까지 곁들여졌으니 말이다.


스페인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느낌이 많지만 다른 점도 참 많다.

가이드의 설명 중 몇 가지 인상 깊었던 것들을 적어본다.


먼저, 스페인은 무단횡단 시 100% 보행자 과실로 처리한다고 한다. 

보행자 사고를 줄이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인 것 같다. 하지만 그보다 스페인은 어딜 가든 사람이건 차건 서로 양보해 주는 게 습관처럼 몸에 베여 있는 곳이라 교통사고 걱정은 별로 들지 않는다. 

또한 흡연에 관대해서 금연구역은 건물 내부뿐이지만, 혹시라도 금연구역에서 흡연을 하다가 3번을 걸리면 무려 한화 1억 2천만원 상당의 벌금을 낸다. 스페인은 건물들은 거의 붙어있어 화재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반려견에는 마이크로칩이 의무화되어 있어서 유기견이 없다. 대형견들은 라이센스를 받아야만 입마개를 풀고 다닐 수 있다. 그래서 무서워 보이는 개들 중에는 입마개를 하지 않은 개들이 오히려 더 안전하다고 한다.




많은 다른 점 중에서 가장 부럽고 탐나는 게 2가지 있었다.


첫째, 스페인 직장인들은 2시에 퇴근한다.

8시쯤 출근해서 커피 한잔 마시고 일하다가 11시쯤 되면 30분 정도 간단한 식사시간을 갖고 오후 2시가 되면 퇴근을 한다. 부모가 자녀를 픽업하기 때문에 초등학교도 회사 퇴근시간에 맞춰 2시에 끝나고, 중학교는 2시15분에 끝난다. 그렇게 자녀와 함께 집에 도착해서 온 가족이 2시30분쯤 점심을 먹고, 9시쯤 저녁을 먹는다.

정말 충격적인 사실이다.

오후 2시에 퇴근을 하는 나라가 있었다니.


불과 10~20년 전만 해도 야근이 일상이었지만 MZ세대의 회사 선택 최우선순위가 워라밸이 되면서 이제야 겨우 18시 정시퇴근을 조금씩 해내고 있는 우리나라가 아닌가.

정시퇴근만 보장된다면 어떠한 역경과 고난도 참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도 무려 4시간을 먼저 퇴근하는 나라가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짧은 오전 업무를 마치고 점심을 먹고 나면 각종 회의와 보고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면 금세 퇴근시간인데, 오후 2시에 퇴근하면 대체 그 많은 일을 언제 다 한다는 건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는 스페인 직장인이 있다면 자세히 한번 물어보고 싶다. 하루에 5시간만 일해도 회사가 잘 돌아가는지..

그런데 왠지 답변이 예상된다.

직원들은 집중해서 일하고 회사도 아무 문제없다고.. 오히려 이렇게 반문할지 모르겠다.

왜 그렇게 일을 많이 하냐고? 혹은 네가 왜 회사 걱정을 하냐고 궁금해할지도.


작년에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나라로 스페인이 선정됐다고 한다.

물론 그 배경에는 축복받은 날씨와 환경이 겠지만, 조금 일하고 가족,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즐겁게 먹고 마시는 이들의 일상이 가장 큰 원동력이 아닐까.

시에스타가 상징하는 여유로움과 축제가 삶인 즐기는 문화가 도저히 스트레스를 쌓아둘 수 없는 환경으로 보인다.  

하루에 6시간을 일하고 9시간을 노는 삶.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

몇 년 전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에 마음을 빼앗겼었는데, 스페인은 이미 오후가 있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점이 많다.

첫 회사에 입사를 했을 때 1인 1PC가 아니었다.

둘이서 PC 한 대를 사용했기 때문에 PC 작업을 하지 않는 사람은 전화를 하거나 다이어리를 정리하거나 외근을 나가거나 다른 일들을 했다. 이제는 개인 PC가 없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업무를 계획하고 보고하고 실행하는 모든 일들이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진다.

실시간 업무공유와 공동문서 작업이 가능하고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클라우드로 내 PC에 접근할 수 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 달라지지 않은 게 있다.

바로 퇴근시간이다.

근무환경이 180도 바뀌고 디지털화되면서 많은 업무가 간소화되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하루 8시간을 일한다. 물론 주 6일 근무가 주 5일로 줄어들고 야근과 잔업이 현저히 줄었지만 공식적인 퇴근시간은 줄어들지 않았다. 




둘째, 스페인에서는 하루에 맥주 1병 반 이상을 절대 마시지 않는다.

식당을 가도 주류를 물처럼 먼저 주문하는 나라.

날씨가 좋아 가게마다 야외에 테이블을 깔고 온종일 술을 마시며 수다를 즐기는 나라.

오후 2시 퇴근 후 점심부터 시작해서 저녁식사가 끝나는 밤 11시까지 술을 음료처럼 마시는 나라. 

하지만 1일 음주량이 맥주 1병 반을 넘지 않는다는 놀라운 사실.

그걸 넘기고 혹시라도 취하기라도 하면 주위에서 손절하기 때문에 절대 그 이상은 마시지 않는다고 한다.


본받을 점은 2가지다.

회사 동료와 업무의 연장선에서 마시는 것이 아니라 가족, 친구, 지인들과 마신다는 점.

아무리 늦게까지 놀더라도 절대 취하지 않는다는 점.

우리나라가 정말 본받아야 할 음주 문화다.

119라는 구호를 만들어 1가지 술로 1자리에서 9시까지 마시도록 권장해 보지만 길거리는 밤늦도록 비틀대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부럽고 탐나는 두 가지 사실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회사보다는 개인의 삶을 중요시하고, 그 삶을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즐기며 사는 것.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에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할 그 시기에 회사에서도 동일하게 가장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야근과 회식으로 육아에 참여하기 어려워진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아이들은 이미 사춘기라는 벽에 가로막혀 있다. 직장생활이 끝날 때쯤엔 취미도 친구도 남아있지 않을지 모른다.


혹시라도 내 삶의 대부분이 회사에 메여 있다면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가정으로 에너지를 옮겨가야 한다.

그것이 내가 행복하고 가정이 행복하고 이 나라가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난 항상 퇴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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