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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타이거 Sep 12. 2023

우리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다

부모님 전상서

금요일 연차를 내고 누나와 같이 어머니가 계신 영월로 향했. 토요일이 아버지가 하늘로 떠나신 지 4년이 되는 날이었다.


아버지의 원대로 서울을 떠나 2014년 연고도 없는 이곳 강원도에 집을 짓기 시작하신 지 벌써 8년이 흘렀다.

나이 70이 넘어서야 오롯이 자신의 꿈을 이루어가며 즐거워하셨던 아버지의 행복 유통기한은 5년짜리였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으로 간암 말기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으시던 날 울고 있는 어머니를 달래며 그래도 우리 행복하지 않았냐고 말씀하셨다는 아버지.

자식들을 키우며 온갖 고생과 힘든 일들을 겪으며 닳고 닳으신 당신들만을 위한 보금자리를 손수 만드시며 얼마나 기쁘고 흐뭇하셨을까 감히 상상도 되지 않는다.

안전하고 평화로운 나만의 공간에서의 5년은 수고하신 아버지 인생의 보상이었으리라.




하지만 행복하지 않았냐는 아버지 말씀에 공감이 쉽지 않으셨다는 어머니의 행복은 이제 누가 책임진단 말인가.

서울에 있고 싶으셨지만 아버지 때문 이제 홀로 강원도에 남겨진 어머니. 

한평생 아버지를 위해 헌신하신 보상이 첩첩산중 시골구석에 집 한 채라니, 강남 출신 어머니에게 이것은 차라리 벌이리라.

다행히 어머니는 그 누구보다 독립적이고 주체적이고 용감하시다.

깔끔하신 성격에 집구석구석을 아무리 틀어막아도 가끔씩 집안에 출몰해서 어머니를 기겁하게 만드는 돔벌레, 박쥐만 아니라면, 어쩌면 시골 출신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텃밭을 일구고 구들목을 떼며 삼시 세끼를 찍고 계신다.


지난 일들을 회상하며 두 분의 얘기를 듣는데 몰랐던 일들도 많을뿐더러 숨은 사연들이 많아 놀라웠다.

외삼촌의 추천으로 논현동에 복어집을 몇 년간 운영하셨건 얘기, 지인들과 투자를 했다가 사기를 맞아 청담동 건물을 날리셨던 일, 옷 매장 관리를 조카한테 맡겼다가 결국 문을 닫은 이야기, 시누이들로부터의 말도 못 할 시달림, 믿었던 동생의 배신 스토리까지.




책 한 권을 적을 만큼 파란만장하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으랴만 부모님의 인생 스토리는 그야말로 흥미진진했다.

그러면서 나는 깨달았다.

그 시절 난 부모님께 순종하며 부모님을 위하는 착한 아이라고 스스로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정말 나밖에 모르는 철부지 아이일 뿐이었다.

그리고 부모님과 나는 비록 한집에 있었지만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시절 부모님이 겪었을 수많은 고민과 아픔, 고통과 상처는 오롯이 두 분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생각해 보니 유난히 집안 분위기가 무거운 날이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나는 나의 세계 속에 있었다. 세상 힘든 것처럼 힘들었던 나의 고민들은  온실 속 화초의 행복한 투정이었다.

비바람과 세상의 풍파를 온몸으로 막고 있었던 부모님의 세계를 알지 못했다.

아니 전혀 알 수 없었다.

두 분 어깨에 지어진 삶의 무게를 십 분의 일, 아니 백분의 일만 느꼈더라면 좀 더 일찍 철이 들고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을까. 힘이 되어 드리지 못한 죄송스러운 마음에 나도 억울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것이 부모와 자녀의 숙명이란 생각이 든다.

그 시절 부모님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나와 아내도 힘든 일이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두 분이 그랬듯 어떤 고난과 고통도 우리가 함께한다면 견뎌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아이들이 혹시라도 공부를 열심히 안 한다면 솔직히 얘기할 거다. 엄마아빠가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 그리고 그 힘듦의 큰 몫이 너희들에게 있다는 것을. 그러니 책임감을 느끼고 주어진 삶에 충실하라고.


어릴 땐 몰랐다.

가끔 엄마가 이유 없이 나에게 화난 것 같은 날이 있었다. 난 잘못한 게 없어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왠지 물어볼 분위기는 아니었다.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날은 삶의 무게가 유독 버겁게 느껴진 날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 더해 눈앞에 빈둥거리는 내가 더욱 엄마의 마음을 더욱 버겁게 했으리라.


저 자식이라는 이유로 오늘도 효자는 는다.

그리고 기다립니다.

언젠가 두 개의 세계가 만나 함께 웃을 그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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