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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Oct 24. 2022

책방의 부가가치,
관계로 쌓아올린 박스 한 개의 책방

책방가에 등장한 임대업의 책방, 홀로 그리고 함께 '시부야 OO 서점'




서점은 새삼, 어떤 공간일까. 인터넷 클릭 몇 번이면 하루 아침에 책이 뚝딱 집에 도착하는 시절에, 책을 파는 가게란 굳이 어떤 쓸모를 가질까. 근래 서점이란 전에 없이 다양하게 변화하지만, 얼마 전 도쿄에선 그 중에서도 별난, 어쩌면 처음 보는 책방이 등장했다. 그렇다고 이제와 공간을 더 변용했다거나 또 변주했다는 식의 이야기는 아니고, 다름이 아니라 이름을 쓰다 말았다. 설마 다, 쓰지 않았다. 그렇게 남은 게 시부야 그리고 서점이니, 이건 뭐 일부러 이름을 가렸다 해도 별로 틀리지 않은 이야기일 것이다. 하루 유동 인구가 300만을 넘는 시부야라 가능한 일일까. 오가는 이들의 발길을 노린 것. 그런 네이밍일까.  



2021년 10월, 코로나 여파로 동네서점들이 줄지어 문을 닫는 가운데, 시부야 중심가에 새로운 책방이 문을 열었다. 좀 묘한 이름의 ‘시부야 OO서점(渋谷OO書店)이 상업 시설 ‘히카리에’ 8층에 오픈했다. 읽어보면 ‘시부야 마루마루 서점.’ 우리 말로 옮기면 ‘시부야 뭐뭐 서점.’ 시작은 했지만 어딘가 완성되지 않은... 일상의 혹독한 한파를 견디고 새로 시작하는 책방을 은유하는 걸까. 어쩌면 난 책방이 지금, 가장 태초의 시절로 돌아갔다 생각했는데, 책방을 기획한 요코이시 타카시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만 모았다’고 이야기한다. 

책방 안에 책방이 문을 열며 성립하는 ‘시부야 OO서점’. 이건 바로 서로 다른 ‘책장(방)이 모여 책방을 완성하는, 소위 말해 ‘공동체형 책방’이다. 지금껏 없었던, 그렇게 새로운. 본래 새로 시작하는 1일에 이름은 아직 지어지지 않는다.


사적인 책방의 시작,

그리고 ‘공유하다’



세상은 어쩌면 오르막과 내리막, 그의 반복인 걸까. 아니 책방이 수상한 걸까. 코로나가 시작하고 가을철 추풍낙엽처럼 문을 닫았던 책방들이, 코로나 3년을 지나며 전에 없이 늘어난다. 국내의 ‘서전 연합’이 지난 해 발표한 ‘서점 편람’에 의하면 전국 서점 수는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증가해 전년 대비 9% 늘어난 2528이었다. 고작 9%라 할 수 있지만 2019년 단 21곳이었지만 감소 추세였던 그래프가 상승 곡선으로 전환한 사건이고, 비대면의 일상이 어느 정도 정착된 후 도출된 결과로서 분명 의미를 가지는 숫자이다. 그리고 이는 비단 국내 뿐 아니라 미국, 일본 등에서도 비슷해, 2020년 5월 AP 통신은 ‘독립 서점은 팬데믹 1년을 지내며 간신히 재앙을 면했다’고 선언했다. 서점 뿐 아니라 관광 명소로도 유명한 포틀랜드의 ‘파월 북스’가 코로나 직후 직원의 90%를 감축한 뒤 불과 1년만에 회복, 150명 수준까지 끌어올린 건, 아마도 이런 책방의 조삼모사, 오비이락과 같은 시절을 반증하는 사례일 것이다. “전기 불 끌 사원만 남기고 다 돌려보냈었죠.” ‘파월 북스’ 에밀리 파월 CEO는 3년 전, 이런 말을 했었다.

그에 더해 일본에선 코로나를 전후로 ‘마을에서 책방이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조심스레 나오기 시작했다. 가령 2021년 3월 일본의 월간지 <츠크루(創る, 만들다)>는 책방 특집을 기획하며 가장 피크였던 90년대 말 줄기 시작한 전국의 책방 수가 끝내 1만개 이하로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고작 두 달 후 이를 반박하는 듯한, 위의 기사를 뒤집는 기사가 보도되었는데, 앞의 문장의 부정형을 긍정으로 돌려놓은 것처럼, 서적 전문지 ‘책의 잡지(本の雑誌)’는 같은 해 5월 ‘책방이 점점 마을에서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마치 앞선 주장을 정면으로 부정하듯, 책의 오늘을 혹독한 암흑기에서 밝은 미래로 데려다 놓듯. 일본의 경우 서점 수를 집계하던 ‘All Media’가 2021년 이후 그 일을 멈추며 지금의 상황을 확인할 도리는 없지만, 어쩌면 책방은 지금 가장 작은, 통계 아래 숨쉬는 작은 확장을 시작하고 있는지 모른다. 서점의 일상으로 자생하는, 어떤 '에코시스템'과 같은.


시모키타자와의 fuzkue와 신쥬쿠 오오쿠보의 Loneliness Books, 그리고 fuzkue 이웃집 BB


‘서점 연합’이 편람을 펴내며 했던 말은 ‘서점수 증가는 다양한 형태의 소규모 서점이 늘어났기 때문이다’였다. 미국의 책방 연합 ABA의 알리스 K. 힐 씨의 분석은 ‘전에 없이 개인의 서점이 늘어나고 있다’였다. 도쿄 시모키타자와에서 책방 ‘bookshop traveller’을 운영하는 책방 활동가 와키 마사유키는 “한 주에 하나 씩은 새로 생겨나는 느낌이었다”고 현장에서의 실경험으로 지금의 변화를 증명하까지 한다. 그러니까 대형 체인 서점이 만드는 커다란 변화가 아닌, 동네의 서로 다른 책방들이 만들어내는 보다 자연스러운 변화. 특히나 일본에선 공간을 셰어하는 형태의 책방이 늘어나고, ‘공유 경제’와 팬데믹 거리두기의 시절을 지나온 이곳에 그건 흡사 책방 안의 책방, 곧 ‘책방들의 책방’,  '홀로' 그리고 '함께'를 실천하는 ‘오늘의 책방’처럼도 보인다 코로나 이후 드러나기 시작한 ‘개인’의 책방이, 왜인지 도쿄에서 모이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셰어형 책방의 시작이다.



‘결국 아마존이 할 수 없는 것을 찾는 일이라고도 생각했어요.’ ‘시부야 서점’의 발기인이자 관리인 요코이시 타카시는 본 책방의 원점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했다. 다시 시작하는 책방에서 드러나는 건 결국 사람이고, 그렇게 표현되는 차이와 다름이다. 책장을 임대하며 공동으로 운영되는 다수의 책방 ‘시부야 OO 서점.’ 여기서 OO를 채우는 건 그렇게 서로 다른 너와 나의 기호와 취향인 것이다. 책방이 드디어 개인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시절, 요코이시 씨는 이를 ‘최극의 편애 서점’이라 소개했다.


박스 하나의 책방,

‘아마존’ 이전의 책방을 되살리다



 ‘시부야 OO 책방’, 공동체적, 셰어형 책방의 얼개를 소개하면, 기본 책장을 렌털하며 책방 안에 책방이 입점하는 형태이다. 책장을 곧 책방으로 간주한다. 매달 3~5천엔 정도의 임대료를 지불하면 (일정 조건을 갖춘 이라면) 누구나 책장(방)의 주인이 될 수 있고, 그 책장은 전적으로 임차인의 자유에 의해 운영된다. 비교적 초기에 이 시스템을 도입한 시모키타자와의 ‘Bookshop traveller’의 경우, ‘책과 관계된 무언가를 발신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모두가 책방’, 책방의 정의를 광범의하게 확장해 현재 출판사나 지역 서점은 물론, 작가,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그리고 심지어 책과 관련된 향을 개발하는 조향사까지 책방 한 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얼마 전 지난 4월 시모키타자와 서쪽에서 남쪽으로 이사를 해 모두 200여 개의 책방이 책방을 공유한다. 그렇게 다양성이 확보된다. 그리고 ‘시부야 OO 책방’의 경우, ‘젊은 컬쳐의 발신지’라는 지역 특성에 맞춰 철저히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고, 그렇게 ‘편애에 치우친 책장 130개가 만들어진다. 현재는 약 90여 개의 '편애 서점'이 운영중이다. 가로세로높이 32cm 크기의 책장 하나를 임대하며, 나만의, 내가 좋아하는, 편애하는 책들로만 구성할 수 있다.



그렇게 현재 ‘시부야 OO 책방’의 OO를 채우는 건, 시부야에서 치즈 바를 운영하는 점주의 ‘치즈 전문 서적’, BTS의 열렬한 팬 회사원이 덕질로 모은 ‘AMY 책방’, 그리고 요가 지도사가 꾸린 ‘몸과 관련된 책장’과 좀 별나게도 시리즈 중 1권 만을 모아놓은 괴짜의 책방 등이다. 다양성은 물론, 겹치지 않는 큐레이션이 디폴트의 옵션이라 할 수 있다. 장르별 일관성도, 발간 시기에 따른 체계도, 중앙 유통 시스템에 의해 배본되는 소위 ‘신간’ 코너도 갖고있지 않다. 오직 개인의, 개인이 좋아하는 것들을 어필하기 위한, 동시에 함께하기를 기다리는 책들만이 책장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이건 좀, 책방이 아니기도 하다. 책방을 기획한 요코이시 씨는 본 책방에 대해 ‘책과의 만남을 리얼한 경험으로 제공할 수 있는 공간’이라 설명한다. 그는 본래 커뮤니티와 일하기 방식을 중심으로 새로운 ‘도시 만들기’를 궁리하는 기획자이다. 그러니까 편애 혹은 판매를 공유하는 매개가 된 대상이, 여기선 그저 책, 혹은 책방일 뿐이다.


 “시부야의 라이벌은 인터넷이라 생각해요. 코로나로 젊은 세대는 가상의 공간에서 시부야적 컬쳐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시부야에 오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있기 때문에 시부야에 대한 동경이 희미해졌죠. 그래서 ‘시부야 OO 서점’은 다시 시부야를 인터넷이 아닌, 거리에 돌려주기 위한 시도입니다.”


도쿄에서 처음으로 '하룻밤의 책방'을 구현한 '북 앤드 베드'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전, 스마트폰이 일상을 지배하기 이전 시부야는 컬쳐의 중심지였다. 트렌드를 발신하는 거리였고, 수많은 시부야発 문화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후,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의 일상을 더 많이 살며 시부야란 거리는 장소성을 잃어버린다. 거리의 가치는 희미해진다. 마치 온라인 서점이 등장하고 거리의 책방들이 자리를 상실한 것처럼 가상의 거리가 리얼의 공간을 대체해간다. 이제는 AR에 버츄얼 인프라까지 확장하는 와중에, 그건 더 심화되지 않을까. 그래서 ‘시부야 OO 서점’은 책방을 빌려 오프라인의 관계를 다시 구축하고자 하는 실험에 더 가깝다. 사이버 디지털 시대에 책과의 커뮤니케이션, 나아가 관계망, 네트워크를 쌓아간다. 각각의 책장(방)이 취급하는 책이란 One copy only, 단 한 부가 전부이고, 가격 또한 모든 책이 중고이다 보니 책방 주인에 달렸다. 심지어 애착이 강한 책에 대해서는 정가의 수십 배를 붙여 놓기도 한다. 편애가 아니고서야 그런 가격이 가능할 수 있을까.


하지만 관계. 온라인이 아닌 책방에서 책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사고 팔던 일상에서의 관계를 다시 되새기는 뉘앙스의 시간이, 이곳엔 있다. “책장 주인들이 교대로 가게를 봐요. 방문해준 손님과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는 걸 가장 중요시하고, 자신의 편애를 공유하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게 이곳이 추구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여기선 요즘 그 흔하다는, 스마트폰 결제가 되지 않고, 오직 현금 만을 취급한다. 직접적으로는 인터넷과의 차별화이지만, 그보다 ‘불편함’을 매개로 하는 관계, 즉 일상스러움을 남겨놓기 위함이다. 인터넷 수소문이 아닌, 직접 대화의 말과 관계로 시부야의 컬쳐를 발신하는 책방이 그렇게, 그곳에 있다. 장르를 오가며 다변화한 책방이 ‘책과의 일상’을 제공한다면, 여기서 그건 사람, ‘사람’이 아른거리는, 어김없이 세상 사는 풍경인 것이다.


‘편애’로 만난 너와 나,

'책의 부가가치'가 책의 미래 구하다



지난 2021년 5월 미국의 일간지 ‘뉴욕 타임즈’는 근래의 책방 동향을 전하는 기사를 게재하며 생선 가게 주인, 철물점 사장님, 약국의 약사와 논밭의 농부가 운영하는 책방을 소개했다. 책방이라면 책과 관련된 공부를 하거나, 책방에서 오래 일을 했거나 최소한 책을 많이 읽는 다독가를 생각하지만, 이제는 별로 그렇지 않다. 즉, 책, 책방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이 책방을 연다. 공간 기획자 출신 요코이시 씨가 그런 것처럼, 대형 체인 서점이나 아마존을 필두로 한 온라인 서점의 간편, 편리란 가치에 가려있던 사람의 자리가 비로소 드러난다. 실제, 동네의 작은 책방들을 설명할 때 어쩌면 책보다 더 빼놓을 수 없는 건, 무엇보다 사람,  바로 커뮤니티의 작동이다. 2013년 도쿄 키치죠지에 무인 책방 ‘Book Road’를 시작, 2019년엔 ‘시부야 OO 책방’과 같은 셰어형 책방 ‘Book Mansion’을 운영하고 있는 나카니시 코우 씨는 심지어 ‘책방은 결국 커뮤니티 장사’라고까지 말한다. 그는 ‘시부야 OO 서점’이 오픈할 당시, 멘토가 되어준 인물이기도 하다. 

책방은 비즈니스이기 이전 교류의 장소이다. 대형 책방이 등장하기 전 동네의 작은 책방은 곧 마을 교류의 장으로 기능했다. 북토크나 기타 여러 오프라인 모임이 근래 들어 늘어나기 시작한 건, 오히려 편리의 편의에 밀려났던 책방의 일상이 다시 소환된 그림에 가깝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카니시 씨는 “장사란 단순히 사고 파는 것이 아니라, 대화랄지 그에 부속하는 것들을 원하고 있다. 무조건 편리성, 즉시성 만을 추구하는 게 아니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좀 불편한 것, 좀 느리지만 사람 사는 것. 그러니까 세월이 깃들어 가는 것. 그리고 아마 이러한 책방스러움을 지금 가장 잘 구현하는 게 근래의 공동체적 책방이다. 요즘 같은 시절에 남의 가게를 대신 봐주는 장사꾼이 얼마나 흔할까. 책장 하나 사이로 함께, 그리고 따로 관계를 한다는 건 얼마나 가깝고 또 먼 사이일까.



‘시부야 OO 서점’의 공간을 디자인한 건 몇 해 전 제주도에 호텔 아닌 호텔 ‘d-Jeju’를 설계한 ‘스키마 건축계획’ 출신의 하야시 코헤이이다. ‘스키마 건축 계획’의 오랜 모토는 ‘예정부조화(予定不調和)’이기도 하다. 사람 살아가는 곳에 어떤 일이 벌어질 지는 누구도 알 수 없으니까. 실제로 하야시는 모든 책장을 이동 가능한 구조로 설계했고, 본래 갤러리로 쓰였던 무채색의 낮은 채도 공간을 목재로 에둘러 온기가 느껴지는 ‘책방’으로 만들어냈다. 그에 더해 비어있는 책장 안쪽엔 쭈그리고 앉을 수 있는 공간이 확보돼 그곳에 책을 펴는 순간 독서하는 아지트가 탄생하기도 한다. 어떤 편애란 나만 알고, 나만 즐기고 싶은 것이기에. 

BTS와 요가와 시리즈의 오직 1권과 채식주의자의 레시피가 랜덤하게 교류되는 책방. 책을 사는(buy) 행위가 아닌 사는(live) 일상이란, 바로 이런 하루가 아닐까. ‘시부야 OO 서점’의 폐자전거를 활용한 첫 번째 전시는 d-JEJU의 주인이자 재활용 크리에이티브 집단 D&Department 나가오카 켄메이 대표의 사적인 책들이었다. 그는 어떻게 재활용을 20년 넘게 파고들 수 있을까. 뭐 이런 궁금증을 품게하는. 그렇게 대화가 시작하는 책장의 책방이 시작한다.


내겐 가장 가까운,

초밀접 거리의 내일, 그런 책방


이동형 책방, '북트럭'은 코로나 이후 책방을 찾을 수 없는 지역에서 다시 늘어나기도 한다.


어쩌면 책방은, 코로나 3년을 지나며 나름의 온/오프 활용법을 체득했는지 모른다. 목적에 의한 독서는 편리와 효율성이 담보된 온라인을 이용하고, 그 밖의 취미, 혹은 ‘읽고 싶다’거나 ‘알고 싶다’에서 시작되는 독서는 마을의 책방을 찾아 탐색하는. 그리고 이는 어쩌면 이렇게 이야기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상의 온을 사는 시간과 일상 속 오프를 살아가는 시간. 책은 대체로 뚜렷한 목적을 갖지 않는다. 물론 자기계발서랄지 비즈니스서와 같은 특정 장르의 책은 해당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심지어 그 장르의 한 권이라 해도 직접 나에게 필요한 욕구를 즉시 충족, 만족시켜줄 무언가를 제공하는 건 아니다. 아마도 시간이 흘러, 그와 동반한 어떤 경험이 축적돼 비로서 그 계발서는 나의 계발로 이어진다. 

모름지기 책이란, 누군가의 생각, 사고, 감정이 응축되어 쓰여진 책이란 특정한 목적도 없이, 별 용무도 없으면서 들르는 동네의 책방에 보다 더 가깝다. 가나다 순이거나 알파벳, 십진분류법에 근거해 배열된 책을 찾는다는 건 애초, 책이 분류한 질서의 세계로 진입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 오직 누군가의 편애 만을 모아놓은 ‘시부야 OO 서점’에서 내게 맞는 책을 만난다는 건, 분명 쉽지 않다. 나카니시 씨의 말처럼 “원하는 책을 사게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에요”이고, 아마도 보다 우연에 가깝다. 한마디로 불편하다. 어쩌면 한 눈에 보고 사랑에 빠지는 뭐 그런 일과 비슷하지 않을까. 


 근래 일본에선 노후화된 단지 재생에 책을 매개로 한 방법이 시도되기도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도쿄 아다치구의 읽는 단지와 시모키타자와 커뮤니티형 상업 공간 보너스 트럭


다만 그곳엔, 타인의 편애, 취향, 큐레이션으로 만들어진 그 책방엔 평소의 내가 아닌 좀 다른 나, 남에게도 나의 시간을 한움큼 베어 나눠줄 만큼의 여유를 가진 내가 있고, 그건 아마 너도 그러하고, 그런 게 분명 커뮤니티의 책방일 것이다. 너와 나 사이의 대화, 교류가 어느새 공간을 압도하는. 요코이시 씨는 ‘시부야 책방’에 대해, 그리고 각각의 책장에 대해 ‘팬심’으로 움직이는 곳’이라 말하기도 했는데, 대상, 종류만 좀 다를 분 우리의 인간 관계란 본래 그렇게 시작, 지속되는 게 아니었을까. 아마존에서 느끼지 못하는 온기를 동네 서점은 늘 이야기하지만, 여기서 그 온기란 고작 책장 하나 사이에, 3cm 너비 판자를 공유하며 오고간다. 그러니까 내겐 가장 가까운 책방, 코로나 거리두기 시절을 지나며 우린, 끝내 가장 함께의 책방을 찾았는지 모른다. 등장밑은 늘 어둡다고, 거리두기 시절의 만남은 그렇게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작하고 있었다.

지금 바로 이곳에, 책방을 공유하는 사이가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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