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밖, 온과 오프를 오가며 공간은 점점 더, '사람'을 이야기한다
이번 인생에 여행은 더 이상 없다 생각했지만, 다시 검색을 한다. 단골 카페가 문을 닫고 식당은 영업 시간을 줄이고, 이러다 공간을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싶었는데, 맞집엔 여지없이 긴 줄이 늘어선다. 만남이 멀어진 시절, 해시태그를 달며 밖에서의 일상을 안에서 해결했던 날들이 무색하게도, 외출의 무게도 어느덧 한 결 가벼워진 느낌이다. 한켠에선 힘든 시절 금새 잊고 마는 '인간의 건망증’일까 조심스럽기도 한데, 어쩌면 이를 일상의 회복력이라 할 수 있을까. 코로나 이후 공간은 문을 꽁꽁 걸어 잠그며 새삼 그 자리, 역할, 가치를 묻게 했지만, 폐점한 가게 옆에 다시 또 간판을 내거는 도시를 보면, 세상엔 아마 고난과 시련, 극복과 회복이란 어떤 모멘텀, 말하자면 '리질리언스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하면서도 안심을 하고싶어진다. 그러니까 세상은 결코, 우릴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코로나가 시작하고 난 한 명의 공간 디렉터와 두 명의 건축가와 인터뷰를 하게 됐다. 물론 대면이 아닌 비대면 ‘줌’을 통해서였지만, 시간 대비 꽤 높은 성공률이다. 공간이 위태위태한 시절 그렇게 조우한 인터뷰, 공간이란 키워드는 혹시나 어떤 의미를 갖고 찾아왔던 건 아닐까, 난 생각해보기도 한다. 애초에 출퇴근 없이 프리랜서의 일상을 살며 내게 공간이란, 별 다른 의미를 갖지 못하는 ‘생활 반경’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에. 모두가 공간을 이야기한 시절 세 명의 공간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과의 비대면 만남은, 그렇게 왜인지 의미를 갖고 있을 것만 같았다. 심지어 요즘 우리 집은 앞뒤, 옆옆이 공사로 시끄러운데, 그 즈음 난 공간이란 질감, 생활이 시작하고 관계가 만들어지며, 시간이 자라나는 그 물리적 형태로서의 공간을 처음으로 실감했는지도 모른다. 매일같이 집에 있었으면서도 코로나 이후의 집콕이란, 유독 더 ‘집에 있음’을 느끼게 했으니까. 단지 '하지 않음'과 '하지 못함'의 차이였을까. 아무튼 인생이란, 고장이 나서야, 아파본 뒤에야 알아차리는 수많은 진실에 다름 아니기도 하다.
그러니까 공간이 움직인다. (최소 나에겐) 별 다른 이름을 갖지 못했던 일상의 공간이 바로 지금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새로 쓰여지는 뉴노멀의 일상에 보조를 맞추듯, 공간도 덩달아 전과 달리, 이전과는 다른 사용법으로 쓰이기 시작했다는 느낌이다. 그렇게 낯설고 익숙한 현실을 그 무렵 난 아마 직감하고 있었다. 가령, 집에서의 일은 참 진도가 나가지 않는데, 그건 내가 아닌 공간, 즉 집 탓은 아니었을까. 같은 카페도 더 있고 싶은 곳과 그렇지 않은 곳으로 나뉘는데, 그건 공간과 나 사이의 궁합이 벌인 일은 아닐까. '롱라이프 디자인'으로 설명되는 D&Department의 나가오카 켄메이는, 마치 그런 나의 고민을 듣기라도 한 듯 이런 이야기를 했다. "집은 본래 업무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 아닙니다.” 맙소사. 지난 나의 재택 근무가 들고 일어날 듯한 이야기. 곧 공간은 비단 백그라운드가 아니었다는 사실. 세상에. 공간이 지금, 이동을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교통비가 줄었다. 처음엔 청구서에 0이 하나 사라지더니 어느 달은 설마 0원이 찍혀있었다. 그 순간 난 그저 멍하고 말았는데, 많은 걸 온라인으로 대체하며 사는 시절 외출은 굳이 필요하지 않은 옵션인 걸까. 코로나는 자꾸 이렇게 우리에게 질문을 한다. 집에서 일어나 집에서 일을 하고 집에서 밥을 먹으며 보내는 하루에 별 탈은 없지만, 그곳에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아무런 지장은 없는데 왜인지 지장이 있다. 난 순간 0이란 금액보다 그 숫자의 상징이 떠올라, 지난 나의 한달이 쓸쓸히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 반대로 이제는 온라인 일상이 좀 더 익숙해, 생활감이 느껴져야 할 텐데, 아직도 난 컴퓨터 모니터 앞에 서는 나 자신이 어색하다. 프로그램에 적응하는 과도기를 거쳐, 조작은 좀 능숙해졌다 해도 버튼 하나가 이별을 대신하는 만남은, 그저 좀 차가울 뿐이다. 로그아웃 후 남은 정적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아마도, 이런 게 디지털 시대의 고독일까.
하지만 ‘일장일단’이라고, 리모트 시절에 인터뷰 섭외는 의외로 수월했다. 대면의 취재라면 발품을 팔고 교통비를 지불하며 서로가 합의한 시간과 장소에 모여야 하는 조건이 따라붙지만, 그게 비대면의 자리라면 굳이 이 조건을 갖출 필요가 없다. 방금 전 일어났다 해도 얼른 세수를 하고 상반신만 대충 꾸민 뒤 컴퓨터 앞에 앉으면 될 일이다. 그러니까 각자의 공간에서 시간 만을 공유해 만남을 가질 수 있다. 인터뷰 섭외에 있어선 호시절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카메라가 조금만 앵글을 틀어도 드러나는 준비되지 않은 하반신처럼, 그 안에서 우린 얼마나 서로를 신뢰할 수 있을까. 나아가 서로가 서로에게 멀어진 시절 오히려 가까워져버린 이 '체험 상의 관계'는 또 무슨 아이러니인가. 멀어진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어떤 이상하고 초월한 ‘탈공간적’ 관계. 이를 디지털 시대의 가능성이라 부른다면, 난 그곳에서 사람을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도쿄 오모테산도(表参道)의 ‘파커즈(Parkers)', 그린 디자인을 실천하는 공간 스튜디오 회의실에서 타카시마 마유는 ‘사회적 거리 안에 심리적 거리를 설계하는 게 중요하다’라는 말을 했다.
공사가 끊이지 않는 인천 아파트의 내 방에서, 공사가 더 끊기지 않는 도쿄에서 일하는 공간 디자이너 타카하시 마유와 이야기를 나눴다. 스타벅스에 마지막으로 갔던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코로나 와중 도쿄에 문을 연 나카메구로 리저브 로스터리(中目黒 Reserve Roastary) 이야기를 그를 통해 들었다. 타카시마는 28년간 스타벅스 매장을 총괄하며 곳곳에 화제가 되는 인기 매장도 많이 많들어낸, 말하자면 실력자, 곧 섭회가 쉽지 않은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코로나 덕에, 리모트의 힘을 빌려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타카시마는 자신을 비추던 카메라를 돌연 들어 주변의 공간을 하나둘 보여주었다. 그가 소속해있는 공간 디자인 집단 ‘파커즈’의 사무실이다. 벽면에 피어난 포피 꽃 한 송이와 테이블 너머로 흐르는 연못 물, 천장에 길게 가지를 늘어뜨린 이름 모를 나무와, 바닥에 내비치는 햇살. 아마 컴퓨터 내장 카메라 성능 탓에 하질은 다소 흐릿했지만, 실내에 꽃이 피고 나무 바닥에 물이 흘렀다. 그리고 실시간 중계되었다. 그것도 도쿄와 서울 사이, 동해 바다를 건너서. 어디가 안이고 밖인지, 무엇이 리얼이고 무엇이 리얼과 같은 건지. 난 새삼 아리송해졌는데, 그는 다시 한 번 ‘경험’이란 키워드를 꺼내놓았다.
“답이 뭐냐고 한다면 역시 체험.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에요. 인터넷 경유로는 느끼지 못하는 냄새랄지, '리얼타임’에서의 맛이랄지. 지금 마시고 싶은 것과 실제 마시는 사이엔 타임랙이 발생하잖아요. 시각, 소리 정보는 기술이 대체해도 이런 미각, 후각, 그리고 촉각은 인터넷이 따라오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지금 공간은 더 리얼한 것, 보다 더 리얼의 가치를 보다 추구해야 해요.”
교통비 0원에 허무함을 느끼고, 괜찮으면서도 괜찮지 않은 날들을 사는 건, 아마 이러한 ‘리얼의 부재’ 때문일까. 좋든 나쁘든 밖에 나가, 즉 ‘리얼 타임의 오늘’을 살면 무언가 예기치 않은 사건이 벌어진다. 뜻밖의 사람도 만나고, 때로는 재수없는 상황과도 마주한다. 하지만 집안에서 모든 걸 해결하는 하루에서라면, 리얼한 의미에서의 사고나 트러블은 없겠지만, 그만큼 ‘관계하는 일상’, 즉 리얼리티가 실종되고 만다. 고작 배달 음식이 좀 일찍 도착했을 때, 택배를 기다리던 시간의 설렘 정도가 ‘살아있는 순간’이라 할 수 있을까. 타카시마는 공간의 더 중요해질 가치로 ‘세렌디피티’란 오래 전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단어를 이야기했는데, 공간을 살아있는 장소로 만들어내는 건 바로 그런 우연, 예상 밖의 일, 즉 ‘우발성의 사건’이다.
“많은 것들을 온라인이 대체한다고 해도 ‘우발성(偶発性)’이란 건 역시 리얼한 공간에서 밖에 벌어지지 않아요. 꽃을 산다고 해도 점원의 표정이나 약간의 대화, 꽃의 향기, 그리고 다른 손님이 무얼 사나와 같은, 예상 외의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죠. 때로 이건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놀람(발견)이 되기도 합니다. 공간은 결국 그를 '어떻게 디자인하는가’의 문제라 생각해요.”
확실히 화면 속 꽃에선 아무런 향도 나지 않았다. 유감스럽게도 내 테이블 위에 꽃병은 놓여있지 않았다. 리얼이란, 이와 같이 보다 완벽하지 않아 현실적이고 빈틈이 있어 실감하게 한다. 그렇게 계획되지도, 예정되어 있지도 않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맞닥들이고 마주치는 게 리얼, 곧 삶의 현실이다. 공간이란 그렇게 꽤나 철학적인 질문이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아마 나가오카 켄메이도 했는데, 2019년 여름 그가 한국 제주도에 오픈한 호텔 D-Jeju를 설계한 건 건축사무소 ‘스키마 계획 (スキマ計画).’ 그곳의 모토는 ‘예정부조화(予定不調和)’이다. 예정도 없고 조화롭지도 않다. 코로나와 불매운동 탓에 다소 외면받은 감이 없지 않지만, D&Department의 첫번째 호텔 D-Jeju는 '호텔같지 않은 호텔', 나가오카가 말하길 '내 집 같은 잠자리'를 추구하는 숙박 시설이다.
D&D의 나가오카 켄메이는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대상이기도 하다. 그를 위해 비대면 채팅 프로그램을 깔았고, 그를 위한 정기 구독을 했고, 테스트 작동은 물론 스크린 너머 비치는 방 구석구석, 평소와는 다른 루틴으로 방청소까지 했다. 아마도 이게 직접 만나는 자리였다면, 길어진 머리를 자르러 미용실에 갔거나, 명함이 모자라지 않나 체크를 하거나, 미팅 장소까지의 교통편을 숙지하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다 방 안에서 가능했다. 사뭇 달라진 ‘준비 과정’에 조금은 온라인적 일상의 도입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D&D 식으로 표현해본다면, ‘인터뷰가 아닌 인터뷰같은 인터뷰’일까. 만남같은 만남과 호텔같은 호텔과 인터뷰같은 인터뷰.
나가오카 켄메이가 처음 만든 호텔 ‘D-Jeju’는 사실 숙박업을 하고싶어 차린 호텔이 아니다. D&D의 모토 ‘롱라이프 디자인’을 그대로 잠자리에 옮겨놓은 그림에 더 가깝고, 호텔이란 말에서 떠오르는 럭셔리, 랭크, 격식같은 것과 전혀 무관하다. 이 호텔에서 손님은 손님이 아니고 직원 또한 직원이 아니다. 모든 것들에 '~와 같은’을 붙여 정형화된 관계를 벗어난다. 손님같은 손님과 직원같은 직원. ’~와 같은’ 말을 마치 암호처럼 사용해 기존의 호텔, 관계, 잠자리를 지어내려 시도한다. 무엇이라 단정하지 않음으로서 '사람'의 자리를 남겨놓는 것이다. 그러니까 20년 재활용 기업이 도전하는 ‘호텔의 재인식’이라고, 아마도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예전에 책상을 만들어달라는 주문을 받은 적 있어요. 하지만 우린 책상을 파는 게 아니라 책상같은 것을 판다고 생각해요. 호텔을 한다고 해도 어떻게 하면 호텔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죠. 앞으로는 물건이 아니라 어떻게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갖고 지역에 살아가는가가 중요시된다 생각하거든요. ~와 같은’이란 키워드를 통해 딱딱한 호텔이 아닌, 보다 일상 곁의 호텔을 그려보고 싶었죠.”
이 이야기를 듣고 사교성이 별로 좋지 못한 난, 기존의 비즈니스 호텔이 맘 편하다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건 정해진 공간, 곧 규칙이 만들어낸 어떤 관성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나가오카가 말한 ‘~와 같은’은, 무엇하나 단정하지 않으며 가능성을 남겨두는 곧 여백이기도 하다. '호텔같지 않은 호텔' ‘D-Jeju’엔 당연스레 주어지는 기본적 어매니티가 없다. 객실엔 방번호도 쓰여있지 않다. 어메니티의 경우 “앞으로 계속 사용할 칫솔, 치약, 타올을 신중히 골라 구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신중한 소비를 해보라는 친절한 참견같은 것이고, 사라진 객실 번호와 같은 건 보다 생활의 동선을 체험하길 바라는 상냥한 오지랖과 같다.
“방번호가 없는 건 초기부터 정한 부분이에요. 보통은 301호라 번호가 붙어있지만, 저희는 없어요. 그건 ‘우리집’과 같은 상태를 목표로 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거든요. 우리 집 방엔 번호같은 거 쓰여있지 않잖아요. 사람은 의외로 주어진 환경에 정말 잘 적응하는, 착한 존재이기도 하거든요.(웃음)”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길을 잃는다면 꽤나 미로가 될 것 같은데, 그럴 때 비로소 대화가 시작한다. “번호가 없으니 이렇게 말하겠죠. 그 빨간 소파있는 방이랄지. 계속 가다가 커브 돌아 두 번째 방처럼 말이에요.” 호텔의 대표나 되는 나가오카는 설마 이런 말을 했는데, 오히려 그런 생활감, 관계가 내 집같은 호텔의 길잡이 역할을 해준다. 그러다 엉뚱한 방에 들어가는 사고가 벌어질 확률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예정부조화.’ 산다는 건 때로 늘 사고천지라 리얼한 법이다.
반면 리모트 워크의 애로사항. 리얼 업무에 익숙해진 탓인지 협업엔 늘 즉각적인 반응이 요구되는 장면이 여럿 있다. 가령 마감이 임박한 시점에 원고의 확인 요청이랄지, 이미지가 틀렸을 때 수정을 확인할 ‘시간적 즉시성’이랄지, 별수없이 필요한 것들은 꼭 필요하고 만다. 결국은 함께이지 못해 벌어지는 여러 불편 사안들은 어김없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도쿄에 살며 제주도 일을 하던 나가오카 역시, 그런 불편을 겪었다. 호텔이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을 무렵, 그는 한국에 없었다. 코로나로 국경이 막힌 탓에 제주도에 오지 못해 자택에서 마지막 상황을 점검했다. 말하자면 3년 넘는 공사의 마침표를 설마, ‘원격 조정’으로 찍어버린 셈이다.
“마지막 간판을 달아야 하는데 위치를 정하면서 제가 그림을 그려 보여주고 다시 수정하는 작업을 반복했죠.” 5G 통신망을 거쳐 오가는 작업임에도 어딘가 아날로그같이 느껴지는 이 체험의 업무는 무엇일까. 와중에 느껴지는 정감어린 이 감정은 또 무얼까. 세상은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아이러니한 '우주의 일상'을 체험하게 한다. 현실로 설명할 수 없는 현실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지금 너와 나 사이의 2m는 사실 바닥에 그려진 우리를 떨어뜨렸던 그 2m가 아니라고 말하는 듯이.
“소셜 디스턴스를 이야기하지만 마스크를 쓴다는 건 타자에의 배려에요. 거리 두기를 실천하면서도 위기를 잘 넘어가자는 의식은 높아졌어요. 그리고 중요한 건 그 가운데 상냥함을 남겨놓는 것, 상대에게 나란 존재를 표현할 수 있는 것들, 물리적 거리는 두더라도 마음 속 거리를 좁힐 방법을 궁리하는 일이에요."
20여 년 간 관계, 그리고 공간을 연구해온 타카시마는 인터뷰 막바지 이런 말을 해주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하지만, 천리 너머 도쿄와도 리얼 타임으로 연결되는 시절, 이 문장은 분명 새로 쓰여져야 한다. 공간에 대한 상실, 곧 외로움은 함께했던 누군가를 그리는 마음일 것이고, 일상 많은 게 멀어졌다고 하지만, 그렇게 남은 건 오직 '마음 사이의 거리', 그럼에도 지워지지 않는, 거리로 잴 수 없는 다름아닌 사람간의 관계이다. 한마디 나누지 않아도 옆에 앉은 누군가에게 느끼는 인기척처럼, 같은 시간 한 공간에 머문다는 공통항만을 간직한 사람들의 관계들. 불현듯 떠났던 공간이 지금 이곳에 그리는 건 그런 보이지 않던 너와 나의 마음 속 연결망, 네트워크는 아니었을까. 공간은 때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우릴 함께이게 하곤 한다. 그리고 또 멀어지게 한다. 그런 계절과 같은. 혹은 세월을 닮은. 공간을 공간이게 하는 건 다시 한 번, 사람.
그렇게 공간이 지금, 다시 공간에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