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캡슐 호텔의 전통을 잇는 법, '9시간의 도시'를 살다
아마도 마지막에서 두 번째 여행,
늦은 밤 호텔을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열흘 가량 일정에 처음으로 모두 세 곳의 호텔을 예약한 뒤 두 번째 장소로 이동하는 중이고 늦을 거란 메시지는 보내 놓았지만, 시간은 훌쩍 밤은 깊어만 간다. 애초 나란 사람은 초조하면 땀이 나는 체질이라 그야말로 호텔에 도착했을 땐 녹초가 되어 있었는데, 자동으로 열린 문 사이로 야무지게 잘 생긴 남자가 환하게 인사를 해준다. ‘이랏샤이마세.’ 연신 땀을 흘리고 있던 난 그 한 마디에 순간 맘이 활짝 개었고, 이런 걸 일상 아닌 여행의 시작이라 할까. 시부야 남쪽 출구에서 약 20분쯤을 걸어 다소 외떨어진 시부야에, 그 호텔은 있다. 이름 그대로 시부야와 에비스, 그리고 다이칸야마까지. 동네와 동네, 너와 나를 잇는다는 의미의 그 호텔 만이 빛을 밝히고 있다. 제대로 읽어보면 ‘시부야 브릿지' 빌딩 내의 '머스터드 호텔.’ 다이칸야마 방향으로 긴 곡선 형태를 하고 있는 터라 이 호텔만 따라 걸으면 정말로 그곳에 도착할 수도 있다.
호텔은 모두 두 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B동은 동네 유치원과 주민 편의 시설을 갖춘 7짜리 저층 빌딩이고, 내가 머물 A동은 단 레스토랑과 카페, 단 두 개의 상업 시설 만을 갖춘 34층 호텔 건물이다. 기존의 호텔 건축과는 새삼 다른 방식인데, 요즘 도쿄의 호텔들은 ’이어짐’, 서로 다름 사이의 공존을 이야기한다. 모두가 잠든 사이 환히 웃어 주었던 남자는 ‘힘들었겠어요’같은 말을 내게 했는데, 그런 이어짐이랄까. 예상치 못한 그 친근함에 닌 조금은 허둥대면서도 그 날의 내가 좀 뿌듯하게 느껴졌다. 무사히 도착했다는 느낌, 작은 안도감. 호텔은 아마 그런 곳이었을 것이다. 맡겨 놓았던 짐을 찾고, 키를 건네받고, 간단한 설명과 안내를 받은 뒤 34층의 13층 즈음에 도착. 이 역시 처음으로 예약한 도미토리 타입의 객실을 찾아 방문을 열자, 이미 칠흑같은 밤이다. 그렇게나 찾았던 도쿄인데, 수 없이 많은 밤이 흘렀는데 남의 밤 자리에 체크인을 한 건 아마, 그 때가 처음이었다. 타인의 잠에 방해가 되지 않게 살금살금, 요즘엔 스위트부터 도미토리 다인실까지 각양각색 객실이 함께 어울리는 호텔이 늘어나고, 도쿄에선 이런 호텔을 ‘소셜 호텔’이라 부른다.
도쿄에서 이상 기후를 느낀 건, 아마도 그 무렵이다.
100년에 한 번이라는 재개발이 한창인 그곳에서 새로 생겨나는 것 비단 단 하나만의 시작이 아니라, 무얼 해도 전과 다르게 느껴진다. 호텔을 예약할 때도, 갈 곳을 정할 때에도, 하루의 동선을 짜면서도 이전과 다른 게산의 생각들이 꿈틀대고 있다. 하물며 소비세가 8%에서 10%로 올라버린 지지난 1월, 도내로 들어갈 때보다 공항으로 향할 때, 난 200엔 정도 더 많은 버스삯을 지불한다. 당장 늘어난 지출은 언제든 반갑지 않지만, 오늘을 살며 내일로 나아가는 도시의, 세월을 살아가는 순간을 마주하기란 쉬운 일도 아니다. 이미 변해있거나 여전히 그대로거나. 변하하는 도시의 과정을 리얼 타임으로 마주한다는 건 지극히 비일상인 것이다. 매일이 매일같은 일상에선 결코 만날 수 없는, 언제나 늘 뒤돌아보곤 했던 시간의 흔적같은 걸, 그 무렵 도쿄는 내게 전해 주었던걸까. 어떤 변화하는 하루의 저녁놀같은 풍경을.
처음으로 도쿄 내 세 곳에 호텔을 예약했던 그 무렵, 호텔은 각종 다양한 경험의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호텔에서 보내는 시간이란 길어봐야 체크인과 아웃 사이, 열 시간이 채 되지 못해, 막상 그런 밤을 우린 충분히 경험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도시가 변하는 곳에 일상이 변화하고 여행 또한 덩달아 변한다. 대수롭지 않게 또 한 번의 오늘이 스쳐가는 사이, 그건 이미 변해있다. 2020년의 2월, 나조차 전과 다르게 시부야-신주쿠-이치가야(市ヶ谷) 순으로 무려 세 곳에 나누어 잠자리를 예약해 놓았으니, 그건 이미 내게도 시작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코로나가 시작하고 여행이 멀리 떠나간 뒤,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호텔스러움’이었다. 모든 여행의 시작이 되어주는, 비록 짐(만)을 맡겨놓은 시간이 더욱 길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미련이 남아 추억이 되는. 호텔이 이제는 '낮의 외출'을 시작했다고 했을 때, 난 이제 호텔을 가장 먼저 선택하지 않는다.
도쿄에는 9아워즈란 호텔이 있다. 서울에는 8아워즈라는 모텔같은 이름만 호텔이 있다. 대부분 지역명을 대동한 명사를 이름으로 하는 업계 분위기를 보면 조금은 생소한 네이밍의 호텔이다. 다만, 나리타 공항에서 길을 잃었을 때 그런 나를 받아주었던 건 2011년 문을 연 ‘나리타 공항의 ‘9아워즈’였다. 거의 모든 대중 교통이 다 영업을 마친 후, 터미널 메인 홀에서 한 참을 걸어, 가게도 사람도 아무 것도 없어질 때 즈음 멀리서 보이는 9라는 숫자에 얼마나 안심을 했는지 모른다. 단정한 디자인과 도시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에 초점을 맞춘 ‘9아워즈’는 아키하바라(秋葉原)에서 30년간 캡슐호텔은 운영했던 집안의 장남, 유이 케이스케가 2009년 교토에서 시작한 호텔이다. 즉, 캡슐 호텔의 전통을 잇는 ‘계승적 의미’를 일단 갖고있다. 숙박료는 대체로 7천엔 안팎, 화장실과 샤워는 공용으로 하고 '방'이 아닌 대형 로커가 제공되는, 전형적 캡슐 호텔의 구조이다. 하지만 이곳이 결정적으로 다른 건, 반 세기 전 ‘캡슐’들처럼 중년 아저씨 들만이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빠에 이어 2대째 캡슐 호텔 운영자라 할 수 있는 유이의 ‘9아워즈’는, 기존 캡슐 호텔들과 결별하며 그를 계승하는 좀 묘한 '1.5 세대적 성격'을 갖는다. 유이는 “9아워즈는 캡슐 호텔의 진화형이 아닌, 도시 생활에 핏(fit)하는 새로운 시스템의 인프라입니다” 라고 까지 이야기한다. 뭐가 같고 또 다른지, 코로나가 시작하고 지금까지, 9아워즈’는 모두 6곳의 새로운 지점을 오픈했다.
여행이 떠나간 도시에 객실이 넘쳐난다. 기대했던 올림픽은 초라한 거품 만을 남기고 근래 도쿄엔 영업의 시작도 시작하지 못한 호텔들의 아우성친다. 와중엔 급한 불이라도 끄겠다는 심정으로 몇몇 호텔들은 객실을 리모트 워크 근무자들의 사무실로 전환, 숙박이 아닌 렌털 장사를 하기도 했지만, 호텔 평론가 타키자와 노부아키 씨의 지적대로 ‘올림픽 특수를 노리고, 인바운드 수요를 전제로 대량 새로 만들어진 호텔은 (이미) 시효를 다한 호텔 시장의 희생양이 되어버렸다.' 대부분 오후 3시 체크인 아침 10시 체크아웃을 기본으로, 남은 빈 시간엔 청소를 하고, 다시 또 방을 임대하는 방식의 장사는 손님이 실종된 코로나 시절, 더이상 작동하지 못한다. 애당초 3 to 10이란 시간도 호텔이 일방적으로 정해놓은 시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와는 좀 다른 방식으로 호텔은 ‘정상 작동’을 하기도 했는데, 그건 바로 밤이 아닌 낮의 활용, ‘데이 유즈’ 플랜의 확충이다. 대표적으로 텔레워크에 대응하는 체재 상품이랄지, 호텔에서 여가를 누리는 플렉스 플랜과 같은 것들. 즉, 호텔은 여행 아닌 일상에서도 조금은 쓸모를 찾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면 투숙객을 잃은 호텔은, 비대면 일상에 끝내 잠식되어 버린걸까. 이제는 조심스레 다시 여행을 시작하는데, 우린 이제 어느 '밤'에 이불을 펴야할까. 한치 앞을 모르는 일상에 애초 호텔, 혹은 호텔의 '운영 방정식'은 대응 불가한, 취약한 장소였던 건지도 모른다. 지난 해 늦은 여름, 난 철원까지 출장을 가며 10시 체크아웃이란 시간 탓에 필요없는 +1박을 해야했다. 틀에 맞춰진 호텔의 체재 가능 시간이란 여행을 짜며 신경을 써야 하는 여간 까다롭지 않은 변수가 아니다. 체크인과 아웃이 커버하지 못하는 바로 그 ‘사각 지대’에 마지못해 감내해야 하는 '쓸모 비용'이 발생하고 만다. 일상은 변해가는데 호텔은 아직, 그곳에 있다. 매일같이 변하는 도시에, 코로나발(発) ‘불확실성’이 일상을 지배하는 가운데, 호텔은 진즉에 ‘구조 조정’을 해야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하룻밤이 아닌 9시간을 이야기하는 ‘9아워즈’엔, 정답은 아닐지 몰라도 다양한 옵션이 있다. 오피스 타운 오테마치(大手町) 지점에선 6시에 체크인 6시에 체크아웃 할 수 있는 ‘데스크 플랜’이 제공되고, 내가 1박을 했던 나리타 공항엔 가수면(仮睡眠) 플랜도 있다. 필요한 시간에 필요한 만큼 이용하고 머물 수 있는 곳으로서 9시간이 움직인다. 여행을 잃은 뒤 객실에서 업무도, 파티도, 휴가도 이것저것도 하면서 마침내 '오늘의 사용법'을 찾아낸 걸까. ‘9아워즈’의 9시간은 ‘샤워(1h)+수면(7h)+외출 준비(1h)=9h, 유이 대표는 이를 “가장 필요한 시간에 특화한 숙박 서비스업’이라 이야기한다. 어두운 밤을 미뤄내고 잠에서 깨어나며 내일의 호텔이 비로소 시작한다. 청소와 멘테넌스 를 축으로 손득을 따지며 펴내던 이불 자리가 아닌, 도시 생활자에 필요한 최소한의 9시간을 쌓아가는 곳이 일상의 ‘9아워즈'이다. 유이가 이야기하듯 이곳은 숙박업소 라기보다 ‘도시의 트랜짓 인프라’에 가깝고, 그렇게 일상과 비일상을 넘나들고, 현재 일본에 모두 15곳의 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여기서 떠오르는 물음. '호텔은 에초 무엇을 위한 하룻밤이었을까.'
아웃도어 룩이 늘어나고 조깅이 유행하던 무렵, 오테마치 지점에 샤워 부스가 생겼다. 코로나로 밤잠을 잃었다는 뉴스가 보도되던 즈음 아카사카 지점을 중심으로 수면의 질을 측정해주는 서비스 ‘sleep lab’이 시작됐다. 캡슐 내에 센서를 장착해 숙박자의 체동(体動), 호흡수, 숨소리와 자는 얼굴 사진 등을 측정, 수면의 질과 패턴에 대해 분석, 리포팅해주는 서비스이다. '수면 플랜'이란 이름으로 제공된다. 일상을 돌아보며 이젠, 나의 잠 상태도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청결이 중요해진 시대의 분위기를 반영 2021년 7월엔, ‘하이진 프로그램’을 전 점포에 시동했고, 철저히 분리된 숙박 장소로서의 안전한 캡슐 호텔을 강조, 어필한다. 방역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청소 현장을 있는 그대로 공개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 때, 우린 공간의 새로운 가치로서 '시큐리티', 곧 안심을 이야기하고 있었던가.
이렇게 코로나 이후 ‘9아워즈’가 벌인 일들이란, 기존의 호텔, 숙박업소가 하는 일들과 꽤나 거리가 있다. 무엇보다 신속하고 유연하게 움직인다. 밤과 잠을 베이스로 움직이는 기존 호텔의 고정 상수식 시간 설계가 아닌 9시간 단위로 변용해가는 '9아워즈'의 변수적 응용 방식은 이런저런 상황에 다양하게 대응이 가능하다. 대부분의 호텔이 오지 않는 관광·숙박객을 기다리며 지칠 때, '9아워즈'는 달라진 일상에 필요한 것들을 재빨리 포착, 그에 맞는 새로운 ‘공간(시간)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이다. 유이 대표는 하이진 프로젝트를 전점포로 확대 실시하며 이런 말을 했다. "때로는 세계 변화에 적응하려 애쓰는 것보다 이미 가지고 있는 기능(능력)을 갈고 닦을 필요가 있어요." 그러니까 호텔의 시간을 사는 일. 밤을 벗어난 호텔은 지금, 어느 때보다 자유롭다.
“여행이란 것 자체가 없어진다는 건 있을 수 없어요. 그걸 걱정하기보다 자신들 안에 있는 것을 갈고 닦는 편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숙하는 2개월간 자신이 갖고있지 않은 것을 찾으며 새롭게 '옆으로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내포하고 있는 것을 갈고 닦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세계의 변화에 어져스트하는 것보다, 저희들의 기능을 좀 더 발휘할 수 있도록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9아워즈’는 숙박, 곧 밤이라기 보다, 변화, 즉 일상에 다가서는 존재에 가깝다. 여행과 일상, 그 사이를 아무렇지 않게 넘나든다. 하지만 그 보다 잠을 자는 곳으로서의 호텔, 그 ‘원초적 정의’가 이미 오래 전 시효를 다한 게 아니었을까. 코로나란 초-비일상적 사건은 묘하게도 우리 일상을 돌아보게 하는데, 호텔은 밤이 아닌 낮을 살기 시작했고, 야근 하느라, 막차를 놓쳐 쪽잠을 자던 캡슐 호텔은 시간이 흘러 활동을 시작하는 도시의 시간을 디자인한다. 심지어 ‘9아워즈’는 피아노 만드는 그 ‘야마하’와 함께 방음을 필두로 3개의 ‘클린한 환경’을 제공하는 초-밀폐형 캡슐 ‘9h sleep dock’을 제공하고 있다. 질 좋은 잠을 이야기하는 ‘sleep scan’의 후속탄 격이고, 철저한 소음 방지와 온도 관리, 그리고 환기를 유지하며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는 완전한 개인 공간으로서의 캡슐을 지향한다. 캡슐을 디자인한, '무인양품'의 마약 베개를 만들기도 했던 시바타 후미에는 '호텔의 가장 큰 쓸모는 활기차게 최상의 컨디션으로 다음 날을 살아가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이 캡슐에선 가장 고요한 숙박이 가능하다. 기존의 캡슐 호텔이라면 분리되어 있어도 동시에 연결되어 있는 탓에 옆 캡슐의 코골이 소리, 복도의 슬리퍼 끄는 소음, 상하로 이뤄진 설계로 발생하는 진동음을 피할 수 없지만, ‘야마하’가 보유한 섬유 강화 플라스틱 기술, FRB을 활용한 이 캡슐은 밀폐와 함께 환기를 모두 놓치지 않았다. 그야말로 신시대의 새로운 가치를 쫓는 캡슐이다. 시바타는 ‘타인과의 접촉을 꺼리는 ‘뉴노멀 시대’에 최적화한 숙박 환경이자, 동시에 도시 생활자의 하루를 응원하는 의미의 잠자리’라고 설명한다.
돌이켜보면 잠을 잔다는 건 곧 내일을 위한 충전의 시간. ‘9아워즈’가 코로나 고개를 넘으며 발견한 건 아마도 잠의 쓸모, 또 한 번의 9시간을 위한 가장 최선의 '밤의 활용법'이었을 것이다.
변화란 새삼 어느 시제를 가질까. 변화가 시작하는 어제가 변화인지, 그 모든 과정이 완료된 뒤 내일이 변화인지, 세상은 어쩌면 늘 ‘변화중’인지도 모르겠다. 지난 10월 말, 캡슐 호텔의 원형, 일본 근대 건축의 상징인 쿠로카와 키쇼 건축가의 대표 건축물 ‘긴자 나카긴 캡슐 타워(銀座中銀カプセルタワー)’의 해체 작업이 모두 완료되었다.’ 쿠로카와 키쇼라 하면 단게 겐조, 마에가와 쿠니오 등과 함께 일본 근대 건축의 시작이자 거장이라 불리는 건축가이고, 안도 타다오나 올림픽 경기장을 만들었던 쿠마 켄고보다 앞앞 세대이다. 그리고 바로 이 ‘캡슐 타워’는 그야말로 당시 초미래적 건물로 일본 내외를 막론하고 화제가 되었다. 요지는 메타볼리즘, 쿠로카와는 부품을 교체하며 계속 사용할 수 있는 도시의 주거 공간으로 ‘캡슐’을 제창했다. 7평 남짓의 밖으로는 작고 둥근 창을 내고 있는 모두 124개의 캡슐. 나무 줄기에 주렁주렁 달린 그 외관은 흡사 사이버 스페이스의 우주 도시처럼도 보인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이 세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결과, 건물은 해체가 진행되었고, 그 중 24개는 아쉬움에 복원이 결정, 미술관에 전시거나 ‘한 달 살아보기’ 공간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 또한 변화를 살아가는 도시의 일상이라 할 수 있을까. 반 세기 넘게 긴자의 심볼로 자리했던 그 캡슐 타워 자리는 현재 빈 터가 되어있다. 쿠로카와의 이상과는 좀 다르지만, 세월은 흘렀고 건축은 남있고, 도시는 어느새 내일을 이야기한다.
유이 대표의 아빠는 도쿄 아키하바라(秋葉原)에서 30년간 캡슐 호텔을 운영했지만, 그가 가업을 이은 건 아빠의 죽음 후 2009년 교토에서이다. ‘9아워즈’는 캡슐을 기본 단위로 전형적 캡슐 호텔의 구조를 하고 있지만, 쓰임은 70년대 오사카에 첫 캡슐 호텔이 들어서던 그 무렵의 것들과 전혀 다르다. 지속한다는 건 언제나 세월과 함께하는지라 동시에 변화를 동반하고, 그렇게 변화란 보다 넓은, 오늘부터 어제, 그리고 내일까지 아우르는 가장 폭 넓은 개념의 일상에 가깝다. 변화를 살아갈 때, 비로소 내일이 찾아온다. 유이 케이스케는 아빠가 돌아가신 후 빚만 남은 낡고 오래된 캡슐 호텔을 이어받으며 ‘시대가 변화한 만큼 도시엔 그에 어울리는 환경의 (캡슐) 호텔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코로나를 지나며, 마스크를 쓰고서야 간신히 비행기에 오르며, 여행은 어딘가 일상같기도 하고 그래도 조금은 비일상처럼도 느껴지고, 새삼 여행이란 무엇인가 묻게한다. 더불어 집에서 자숙하는 시간을 거치며 밖을 나서는, 떠난다는 행위는 또 얼마나 소중해졌는지. 떠나는 여행보다 떠나지 않는 일상이 보다 더 흥미롭다.
유이 대표가 이야기했듯 잠이 내일을 위한 충전의 시간이라면, 일상이란 여행을 더 여행답게 만들어주기 위한 노력은 아니었을까. 그와 똑같이 여행이란 일상을 더 일상답게 살아가게 하기 위함은 또 아니었을까. 여행도 일상도 조금은 모호해진 시절,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은 가까워진 지금, 일상에 도움되지 않는 호텔(타키자와 씨가 지적했던 유효기간 10년의 호텔들)은 변화에 취약하고 곧 지속 가능할 수 없다. 유이는 ‘필요한 서비스 만을 제공하며 그 밖의 것들은 마을에 맡기는 방식은 저가 비행사 LCC와 흡사하다’고까지 말한다. 여행과 함께 일상을 사는 일, 일상과 더불어 여행을 떠나는 날.
여행하듯 살고 일하듯 떠나며 ‘9아워즈’의 9시간 사용법은 최소한 틀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