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때로 하찮은 변명의 시작을, 필요로 한다.
가족 여행을 떠날 때면 뭐라도 하겠다고 짐 외의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가지만, 결국 어디서 언제 어떻게 할지를 궁리하다 도로 싸들고 돌아오기 일수다. 지난 주부터 난 조금 더 혼자가 되어보았는데, 왜 그와 비슷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까. 누나가 퇴근 시간을 피해 저녁 산책을 마치고 택배가 대략 도착하는 타이밍을 계산해 외출을 하고, 엄마와 단둘이 점심을 차려먹고 이후 간식과 과일을 먹는 순서의 시간들을 고려하며 짬잠이 하던 일들의 자리가, 돌연 몽땅 사라진 것 같은 감각이 왜인지 들어버리는 것이다. 마치 내게서 내가 아니 것들이 나의 것인 양 빠져나가는 기분이기도 하달까. 여행을 떠나며 거듭한 실패가 무색하게 난 여태 왜 몰랐을까. 그러고보면 오래 전 우리 집 곰돌이는 새 집을 사고 쓰던 집을 누나가 세탁기에 돌려 버렸을 때 화가 왕창 나 집에는 들어가지도 않고 소파 곳곳을 방방 뛰었는데, 이런 걸 아마 세월이 차려주는 돗자리라 부른다. 곰돌은 자신의 체취가 묻은 담요를 끌어 와 새 집에 깔고서는 겨우 그 작은 엉덩이를 새 집에 뉘였다. 나와 나 자신의 것과 그렇고 또 그렇지 않은 것. 세상에 이 둘을 나누어 볼 수 있는 일말의 주소라도 존재하는 것일까.
이제는 정말 변명할 일말의 여지도 없이 그 무엇을 써내야 할 상황인 건데, 난 어디에 엉덩이를 붙이고 단 한 문장의 무언가를 쓸 수 있을까. 이곳에서 눈을 뜬 아침 8시는 왜 그 곳에서의 아침과 이리 다를까. 어쩌면 도리어 변명할 새 도화지를 부여받은 걸까. 시간을 조리하는 법. 나를 재배열해보는 일. 혹을 너를 다시 이곳에 데려오는 일. 오늘은 첨으로 가스에 불을 붙이고 스팸도 구워보았지만 난 이제 나트륨을 줄여야 할 나이다. 잠 잘 시간은 커녕 해도 저물지 않았는데 이불에 들어가 이젠 남지도 않은 곰돌의 냄새를 맡으려 조급한 맘을 숨겨본다. 애초 친절한 배려는 바라지 않았지. 상냥한 인사 정도면 기쁘게 웃을 수 있다 생각했지. 그럼에도 또 한 번, 조금 더 혼자가 되어보는 일. 세월이 차려주는 돗자리. 남아있는 시간보다 필요한 시간은 늘 그를 압도했고, 시작을 시작한다는 건 평생 풀지 못할 숙제라고 겨우 또 변명이나 지껄이고 있다. 그런데 그거 아나요. 과일 한컵은 스타벅스가 방울 토마토 4개를 얹고도 세븐일레븐보다 더 싸다는 것. 그리고 글을 쓸 결심이란 이렇게나 고독했나요. 난 지금까지 무얼 하고 살았나요.
지난 다이어리의 남은 페이지가 많아 사지 않고 버티다 4월부터 시작하는 다이어리를 사니, 막상 이도저도 아니게 느껴졌다. 세달치가 한 눈에 확인 가능한 책상 달력은 생각도 하지 못할 만큼 작고 또 작았다. 그래도 별 수 없는 일. 그럼에도 시작을 시작해보는 일. 오늘은 레터를 시작하고 두 번째로 돈을 받는 협업이라고 마지막 확인 메일을 주고 받았는데, 이 헛헛함은 또 어디서 왔나요. 결국 채워지지 않을 시작. 어디도 마련되지 않은 돗자리. 난 요즘 자꾸, 시작의 시작 만을 서성거리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고, 충분히 도피라 알면서도 빠져나올 수가 없고, 세상은 벌써 여름인가본데 난 별로 덥지가 않다. 기다림을 기다리는 것. 아니 기다리지 않는 것. 시작은 아마, 그 어디 쯤에 숨어, 이미 내일이 되어있나요. 하지만 이게 다 뭐 대수라고. 난 여태 시작도 않고 이만큼의 오늘을 살아왔는지도 모를 일인데. 참고로 세 달짜리 달력은 시간이 그만큼 빠르게 갈까 느리게 흐를까요. 시작을 찾다보니 하루보다 짧은 것 같은 열흘이, 뭉텅 지나나가버렸다.
드디어 이사 (아닌 이사) 완료의 후기.
근데 이건 시작인가요. 마지막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