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착각해 구입한 책. 본래 타이틀은 '왜 나에게 물어올까'인데, 난 '암에 걸리자 사람들이 내게 상담을 해오기 시작했다'라고 이야기하고 다녔다. 어디서 그런 억측이 나왔을까 싶지만, 오래 전 더 씨니컬한 '바보 バカ의 벽'을 덜 씨니컬한 '바보 アホ의 벽'으로 착각해 사기도 했던 사람이니 그리 이해못할 '어처구니'도 아니다. 책 표지엔 제목과 함께 그저 '암에 걸린 사진가에게, 왜인지 모두, 인생 상담을 했다'라고 적혀있다. 어떤망상의 회로였지? 아무튼 책엔 정말 갑작스레 암 선고를 받은 사람이 그 사실을 공개한 뒤 이상하게 (트위터로) 쏟아지던 인생 고민이 담긴 DM에 대한 대한 답변으로 가득하다. 정말로 트위터 상에서 오고간 말들의 대화를 그대로 살리듯 책은 만들어졌다. 이게 뭐 중요할까 싶지만, 그런 거리감.
타의에 돌연 '카운셀러'가 되어버린 사진가 하타노 히로시는 불평투의 책 제목과 달리 열심히도, 성심껏 이야기를 건넨다. 그리고 그 '성심껏'이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의 것이라서인지, 어디에도 없는 차가운 온기, 도움이 되는 냉정, 위로가 아닌 용기, 아프지만 고마운, 쓴 약과도 같은 말들로 느껴진다. 가령, 비행을 멈추지 못하는 딸 앞에서 의심을 멈추지 못하는 엄마의 사연에 대해, 하타노 씨는 '당신의 딸이 아닌 당신이 비행을 하고 있는 거에요'라 말하거나, 좀처럼 깊은 인간 관계를 갖지 못하는 이에게 종잇장만도 못한 관계의 사람이라면 딱 그 정도의 인연인 거에요'라고, 체념을 권한달지. 기대고 눈물을 닦아줄 따뜻한 몇 마디가 아닌, 현실을 인정하고 홀로 걸어갈 수 있는 몇 글자를, 하타노 씨는 건넨다. 죽음을 발치에서, 현실로 느끼는 사람이라서일까. 하타노 씨는 몇 번이나 '제 아들에게 하는 말이라 생각하며 답을 합니다'라 말하는데, 어쩌면 모든 건 서로 각자를 위한 말들. 이 책을 번역하고 싶은 맘에 읽기 시작했는데, 여기에 '위로'란 말을 쓰면 왜인지 그에게, 그의 죽음에 엄청난 실례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근데, 그나저나 왜 사람들은 암 걸린 사람에게 고민을 털어놓을까. 어쩌면, 조심스럽게 알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02 빈곤 비지니스라는 동전의 양면
얼마 전 트위터를 훑다 눈에 솔깃하는 뉴스를 만났다. 대부분의 일들이 이렇게 트위터를 훑다...로 시작하는 요즘이지만, '빅 이슈'의 일본판, '빅이슈 재팬'이 올려놓은 기사엔 그렇게 여유로운, 늘어지다 못해 나태한 일상이 바라보기엔 민망한, 혹은 미안한, 고되고 애탄 울림이 묻어있었다. '빅이슈 재팬'은 근래 늘어나는 알 수 없는 비방, 중상모략, 비판을 넘어 폭력에 가까운 선동에 대해 하나도 빠짐없이 조목조목, 성심껏 반박하고 있었다. 사실 한국에도 '빅 이슈'는 발행되고, 지하철 역 인근을 지날때면 종종 마주치기도 하지만, 실제 그 잡지를 사본 건 단 한 번, 대부분 지나치기만 하는데, 그 늦은 아침, 내가 아는 홈리스들이 판매하는 잡지, 그 '빅 이슈'를 둘러싼 오해와 이해를 호소하는 말들에 난 발걸음을 멈추고 싶었다. 홈리스들의 독립을 지원하는 의미에서의 '빅 이슈.' 딴지를 걸 여지가, 오해의 씨앗이 어디 있을까 싶지만, 사실 모든 오해는 외면, '알지 못함'에서 시작한다. 나는 지나온 나의 발걸음이 이제와 뜨끔했다.
'빅 이슈'를 여러번 봤지만 그 잡지가 어떻게 운영되는지는 모른다. 홈리스들의 자립을 위한 시스템이란 정도는 알고있어도 실제로 그게 어떤 관계, 오고감, 필요와 충족에 의해 성립돠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아마도 오해가, 비방이, 삐딱한 안경을 끼고 뱉어내는 편견이 생겨나는 거겠지만, 도시에, 발빠르게 걷는 아스팔트 길에 잠시의 멈춤과 내가 아닌 너를 위한 생각의 자리는 끼어들 틈이 없다. '빅 이슈 재팬'의 반박, 오해가 아닌 이해를 위한 길고 긴 장문의 글은 사실 보는 내내 화가 나기도, 가슴이 뜨끔하기도, 오히려 새롭고 싱그럽기도 했지만, 어쩌면 지금이기에 돌아보는 나의 '샛길', 내 곁을 완성하는 그들의 자리가 새삼 남의 이야기같지는 않았다. 같은 시간, 공간을 살아가는 나아 너의 관계. '빅 이슈 재팬'은 얼마 전 빵집의 팔고 남은 빵들을 도움받아 염가에 판매하는 '방의 빵집(夜のパン屋)' 사업을 시작했고, 한국에도 인지도가 있는 작가 마츠우라 야타로의 책방 '카모메 북스' 처마 밑에서 첫 오픈을 가졌다. 먹지도 않고 버리는 음식이 수 만 톤에 이른다고 하는 요즘, 밤에 문을 여는 빵집엔 다시 시작하는 빵의 스토리가, 재기를 꿈꾸는 내가 지나친 그들의 내일이 시작되고 있다. 그렇게 아마, 우리는 멀리 있지 않다.
#03 아무것도 하지 않을 용기, 렌탈 씨로부터의 어드바이스
이미 몇 번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트위터로 자신을 빌려주는, 아마 어디에도 없을 렌탈 사업을 하고있는 일명 '아무것도 하지 않는 렌탈' 씨는, 요즘 기사에 자주 등장한다. 그의 일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가 얼마 전 방영을 마치기도 했지만, 코로나 이후, 이동도, 하고 싶은 일도 맘대로 하지 못하는 시절에, 세상은 왜인지 그의 하루를 기웃댄다. 본명 모리모토 요지 씨는, 실제 우리가 흔히 겪는 회사 생활 내 스트레스로부터 '도망'쳐, 남들의 '하기 싫은 일'들을 대신하며 제2의 인생을 살고있는 사람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트위터 팔로워 수는 30여 만에 달한다. 입소문에 펴낸 책도 두 권, 드라마 판권까지 팔고...아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돈을 버는 유일의 1인일지 모른다.
그리고, 얼마 전 잡지 'PEN'은, 코로나 시절 텅 빈 시간을 채우려는듯, 책 추천 기획이 잦은 근래 잡지 사정 그대로 그에게 무려 '책 추천'을 부탁했다. 이에, 모리모토, 아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렌탈 씨는'저와 맞지 않는 세계관을 강요하는 듯한 비지니스 서적이나, 자기 계발서는 읽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저 이야기 진행시키기 위해서만 쓰여진 문장을 들이미는 듯한 소설도 읽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래서 그가 추천한 책은 모두 대체로 철학서. 니체의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내겐 이름도 생소한 힌두교 성전, 자신의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웅변해주는 듯한, 느림의 경제를 말하는 카게야마 토모아키의 '천천히, 서둘러라'이다. 난 이 세 권을 어느 하나 읽은 건 없지만, 돌연 그가 남긴 몇몇 말들을 적어보고 싶다 생각했다. 별 상관은 없을지 모르지만.
"일단, 저는 기본적으로 무언가 나쁜 일이 생기면 계속 '세상이 나빠'라고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스스로 데미지 입는 일은 없고, 스스로 스스로를 몰아세울 필요는 없다고 느끼게 됩니다."
"발산할 수 없을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거나, 회사든 주위든 집에서든, 자신을 긴장하게 하는 존재가 있다면, 도망쳐도 되고, 의식적으로 거리를 둬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싫은 것이 있으면 도망쳐'라는 말은, 딱히 부정적인 게 아니고, 그 때의 자신에게 맞는 최적절한 해결법을 찾는 행동입니다."
"'쓸모없어, 그렇지 않아', 고민해버리는 건, 사실 다른 곳에서의 '쓸모없는 시간'이라 느끼는 부분이 원인인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일반적 개념으로의 경제에서는, 시간을 단축해 이익을 최대화하는 게 일의 목적이 되지만, 카게야마 씨가 말하는 경제에서는, 시간과 수고를 들이는 것 자체가 일이고, 결과로서 이익이 태어납니다."_카게야마 토모아키의 '천천히 서둘러'를 추천하면서.
"'내가 한 행동의 결과 누군가를 상쳐입힐 가능성은 언제든 있다. 단, 그걸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고,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가르침이, 구원이 되었습니다. "_힌두교 성전 추천 글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