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완벽하게 이별할 수 있을까

너와 나의 계절 감각,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의 '다 하지 못한 말'

by MONORESQUE




침묵을 깨고 그가 말했다. ‘OO, 생일 축하해. 기프티콘 3만원 내에서 갖고싶은 거 말해줘.’’ 아마도 매우 오랜만의 연락이었고, 화면을 내려보니 마지막 메시지가 오고간 건 2020년 12월 21일 늦은 저녁이었다. 꼬박 1년이란 시간, 채워지지 않은 빈 칸에 난 새삼 그와의 시간을 생각했을까. 아니, 어쩌면 매해의 마지막이란, 다시금 그와 그들에게 연락을 하게되는 시기일까. 아무튼, 난 대충 두 가지 이유에서 당황을 하고 말았는데, 먼저 ‘나의 생일은 이미 한 달 이상 지났다는 것. 그리고 ‘갖고싶은 거 말해줘’와 같은 말에 난 가장 서툰 유형의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다분히 A 형 성격같은, 전형적 소심함과 주위를 살피다 결국은 도를 넘어 포기하고 마는 극도의 ‘안전 제일’형 인간 관계가 만들어낸 너와 나 사이의 살얼음판. 애초 그가 왜 나의 생일을 잘못 알고 있었는지는 카톡 만이 알고있겠지만, 아마 난 태어날 때부터 이런 대화가 가장 어려웠다. 고마움에 대한 답례, 칭찬에 대한 리액션. 하물며 어린 시절 좋아하는 장난감 하나 조차 맘대로 사달라 떼쓰지 않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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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그래도 손에 땀이 많은 체질에 핸드폰은 땀으로 젖어가고, 번지수도 찾지 못하는 고민은 자판 어디도 누르지 못한 채 배회하고 있었다. 축하를 받은 고마움과, 하지만 잘못 찾아온 축하라는 사실과, 그리고 무엇보다 그와 나의 사이, 관계, 친밀도가 과연 ‘갖고싶은 거 말해줘'란 말에 바로 답을 할 수 있는, 해도 되는 정도의 ‘사이'인지에 대한, 자문자답. 애당초, 카톡 메시지의 대답 유효기간은 얼마까지인지. 그저 내가 알 수 있는 건, 이런 상황에, 이런 고민에, 결국 어떤 대답도 결코 정답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 그 하나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간을 멈출 재주가 내겐 없고, ‘마음만 받을게요.' 한참이 지나 난 작은 이모티콘을 붙여 겨우 송신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30분이 훌쩍 지나 보내진 외마디 문장의 대답. 그 ‘한참'은 그에게 얼마 만큼의 침묵이었을까. 땀에 젖은 핸드폰을 닦아내고, 답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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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의 유효기간은 얼마일까. SNS에 무언갈 긁적이면 종종 댓글이란 게 달린다. 난 이게 그야말로 난감한 상황인데, 대화로 따지면 뭐라도 답을 하거나 웃어 넘기거나 정 아니면 화제를 돌리면 될 일이지만, SNS라는,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지만, 동시에 서로 다른 시간 다른 공간 속의 그와 그들에게 난 무어라 답을 해야할지…대다수 망설이고 만다. 물론 이모티콘이란 게 발명되어 적재적소, 유효하게 활용하면 될 일이지만, 웃는 얼굴에 땀방울 하나 없으면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지는 게 나란 인간이다. 오해를 남긴 건 아닌지, 핸드폰 기종 차이로 웃음의 의도가 왜곡된 건 아닌지. 그러니까 나의 웃는 얼굴이 그에겐 혹여나 비웃는 얼굴로 전해진 건 아닌지. 답을 해도 하지 않은 것 같은, 오히려 그보다 더한 상황을 초래해버린 것만 같은.

얼굴을 마주하고 나누는 대화라면 헤어짐 후에야 밀려오는 고민이 SNS 창 구석 곳곳 얼룩처럼 비지땀을 흘린다. 5G로 와이파이로 연결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엄연히 다른 곳, 다른 시간 속에서 서로를 탐색하는 각자의 말줄임표. 이런 걸 어쩌면 ‘디지털 시차’라 말할 수 있을까. 난 종종 채팅창 너머 너의 표정이 진지하게 궁금해질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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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줌' 취재 대상이었던 D&department 나가오카 켄메이 씨.


코로나가 시작되고, 아니 그보다 전 프리랜서가 된 이후 거의 대부분의 일은 ‘만남'을 경유하지 않고 이뤄졌다. 메일을 주고받으며 기획을 정하고, 문자 메시지나 전화 통화로 일정을 조율, 업종 특성상의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단 한 번의 얼굴 마주침도 없이 대략 대여섯 직종의 협업이 서로 다른 자리에서 함께 진행됐다. 서울과 인천과 마포와 때때로 도쿄와. 코로나 이후 이런 ‘원거리 근무'는 보다 일상이 되었는데, 처음도 아니면서 난 새삼 고작 이름밖에 알지 못하는 ‘그들'과의 협업이 과연 ‘나의 일'이라 말할 수 있을지, 아리송한 순간에 봉착하곤 했다. 완전하지 않은 대화, 오해를 경유한 이해, 어쩌면 보이지 않는 시차이거나 나와 그 사이의 이런저런 차이들이 불러온 예정되지 않은 결말들. 대부분 일은 일로서 끝이나고 말지만, 지난 여름 ‘줌'으로 인터뷰를 하기 시작하면서 난 너와 나 사이의 거리, 상대가 떠난 빈 자리에 남은(비친) 나를 마주하곤 했다. 그러니까 너의 곁에서 '나란 고독.'

너의 화면이 꺼지고 암전된 스크린이 디폴트 배경 파랑으로 물들기 까지의 짦은 시간 속 ‘나라는 혼자’가 그곳에 나타났다. 너가 있었던 자리에 나의 '오늘'이 덜커니 남았다. 재택 근무를 이야기하는 시절, 그저 배부른 소리, ‘럭키한 사건’이라 말할지 모르지만, 난 사실 별로 배가 부르지 않고, 그다지 럭키한 기분도 아니다. 우린 어쩌면 서로의 진심을 잃어버렸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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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 남아있다. 보지 않은 세월이 한참이라 이제는 ‘플사’ 만으로 누구인지 가늠도 되지 않는 그와 마지막 나눈 대화는 어느덧 5년도 더 지난 여름이었다. 핸드폰을 바꾸어도, 번호가 바껴도 개인 매신저 어플엔 내가 아닌 그들과의 기록이 대부분 그대로 남아있다. 너가 아이폰 13으로 갈아타고 내가 벼르고 벼르다 아이폰을 버리고 블랙베리를 장만해도, 그 모든 시절을 거슬러 그곳에 남아있는 너와 나의 기록. 전형적 문과 인간인 내가 이 원리를 알 리는 만무하지만, 난 때때로 이 지나간 흔적들을 ‘관계의 유산’이라 말해보고 싶어진다. 어쩌면 한 때 인연, 어쩌면 그도 아닐, 혹은 오해거나 지워지지 않은 갈등으로 멀어진, 그리고 어쩌면 네게서 삭제된.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는 관계의 흔적은 지금 이곳에도 그리고 그곳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지금도 또 하나의 메시지는 숫자 1을 지우지 못한 채 네 곁에서 ‘오늘'을 기다린다.

어쩌면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이란, 우리가 몰랐던, 잊고 지나갔던 너와 나 사이의 '거리', 오해와 아쉬움의 날들을 일일히 간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세상 모든 만남은 미완의 대화로 이어지고, 우리에겐 다시 시작하기 위한 ‘미완성의 대화'가 필요하다. 침묵을 남긴 대화창에, 엔딩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https://youtu.be/6W6HhdqA95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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