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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병장수 Jan 05. 2024

서사의 위기_한병철

남의 인생이 아닌 진짜 내 인생을 살고 있나?

소셜네트워크의 보편화로 수많은 사람들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서로 연결되어 있다. 정보화 시대 속 초단위로 새롭고 자극적인 정보가 쏟아져 나온다. 이처럼 정보가 넘쳐나고, 개인들 간의 연결이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하고 넓은 세상을 살면서 개인이 누리는 삶의 스펙트럼이 넓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왜 현대인은 끝없는 불안과 공허감에 빠지는지에 대한 철학적 비판.


요즘엔 일반인의 삶도 마치 유명인처럼 투명하게 잘 보여 서로가 서로의 일상을 끊임없이 공유하고 교류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깊은 소외감과 고독감을 느낀다. 새로운 트렌드가 계속해서 업데이트됨에 따라 개인은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소비가 중심이 되는 사회 속에서 자신을 정보로 전락시키는 보이는 삶에 집중하게 되는데, 개인의 삶이 소멸되는 정보로 전락하면 내면이 공허해지고, 인생에 대한 허무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왜 트렌드를 따라야 하는가? 포화 상태의 모든 정보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수용 가능한 선만큼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것이 내포하는 본질적인 의미를 생각해 보고, 나의 삶에 적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는 삶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주도권을 포기한 삶이기 때문에, 내 인생을 어떤 방향으로 주도할 것인지 방향성을 잃게 되어 허무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아무 생각 없이 단순히 시대의 흐름에 뒤쳐지기 싫다는 어리석은 욕망은 자신의 삶을 한낱 소비자로 전락시킨다.


나도 어릴 때는, 혹은 여전히 가끔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미래를 아는 절대자가 더 나은 선택지를 미리 알려주기를 바랐던 적이 있었다. 인생에 절대적인 정답이나 올바른 길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었던 것 같다. 살다 보니 전에는 최선의 선택으로 보였던 것들이 나중에 내 발목을 잡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한 선택들이 나를 살리기도 하는 경험들이 쌓이다 보니, 시간과 맥락을 아우르는 절대적으로 옳은 선택, 정답 같은 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정답이 없는 인생의 선택의 기로에 선 우리는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어떤 기준을 가지는 것이 좋을까?


요즘 내가 만나는 많은 환자들이 부모가 시키는 대로 살다가-부모가 바라는 학교, 직업, 배우자 만나기-여기서 문제나 갈등이 생기면, 부모 탓, 배우자 탓, 학교/회사 탓을 하거나 부조리한 세상 탓을 하면서 자신을 피해자로 여기고 힘들어한다. 자신의 삶의 주도권은 자신에게 있는데, 이를 타인에게 양도해 놓고 잘되면 내 탓, 안되면 남 탓을 하는 것이다. 내 삶의 중요한 선택권을 타인에게 양도하는 태도의 본질은 선택의 결과가 잘못되었을 때 내가 책임지지 않고 싶은 비겁함에 있다. 남 탓을 하며 징징대거나 복수를 하겠다며 소중한 인생의 시간들을 낭비하며 불필요한 고통을 받는다. 과연 그러한 소모적인 시간과 감정 낭비를 통해 개인이 얻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은 삶을 살아가는 동안 주도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트렌드에 휩쓸리지도 않고, 내 인생을 정보로 전락시키지도 않는 나의 고유한 서사를 가지는 진짜 내 인생을 사는 것이다. 내 삶은 내 과거와 현재, 또 미래가 하나로 연결되어 안정적인 정체성을 이루게 된다. 하나의 서사로 이루어지는 삶에서의 자잘한 선택들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절대적으로 옳거나 틀린 것이 없다. 그렇기에 딱히 아쉬울 것도 억울할 것도 없다.


한편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자신에 대한 안정적인 정체감을 갖고 있는 사람은 타인의 말에 경청할 수 있는 능력도 있어 타인과 깊이 있는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고, 깊이 있는 소통을 통해 사람들은 서로 교감하며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단순히 ‘네가 올린 사진 봤어, 너도 내 사진에 하트 눌러줘’와 같이 관심을 구걸하는 나르시스틱 하고 얄팍한 관계가 아닌, 깊이 있는 공명과 접촉의 소통. 삶이 공허하다면 깊이 있는 관계가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러한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해 나는 무슨 노력을 하였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는 나를 향한 무조건적인 관심만을 갈구하지 않았던가? 얄팍하고 피상적인 인간관계를 탓하려면 그 관계 속에서 나의 태도를 먼저 관찰해야 한다.


나는 내 삶을 소비하고 있는가? 내 삶의 서사를 쓰고 있는가? 나는 관심을 구걸하고 있는가? 나와 내가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사람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는가? 본질적인 생각과 판단, 실행력은 나의 인생을 구원해 준다. 삶이 고독하고 허무하다면 나는 주입된 삶, 남들이 말하는 ‘정답의 삶’이 아닌, 내가 주도하는 나의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는가 되돌아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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