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흐르는 시간 속에서 소통하고 공감하는 사람들 속에 행복이 있다
나는 세상을 얼마나 객관적으로 지각하고 있을까?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씹고 있으면서 맛보지 못하는 이유. 지금 현재 나에게 주어진 자극을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지각할 수 있는 하향식 정보 처리를 하기보다, 과거 경험을 통해 형성된 나의 주관적 인상에 따른 상향식 정보를 처리하게 되면 넘쳐나는 객관적 정보를 인식하지 못하고 내 생각 속에만 몰입한다. 상향식 정보 처리는 속도가 미덕인 현대 사회에 적합한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방식이지만, 주관적이기 때문에 외부 자극을 간과하거나 오해석 할 여지가 있다. 자신의 제한되고 경직된 사고 체계 안에서 인식한 주관적 인상을 근거로 대상을 오지각/오해석 하게 되면서 자신이 사랑받고 있음에도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고, 능력을 인정받고 있음에도 무능감을 느끼고 고립되게 만든다.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는 작가인 화자가 빛조차 볼 수 없는 선천적 전맹인 친구와 함께 미술관을 다니는 경험 속에서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진정한 소통과 이해, 행복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다룬다.
시각장애인인 시라토리씨는 시각장애라는 핸디캡이 있음에도 보고자 하는 희망조차 갖지 않고 자포자기하지도, 열등감에 사로잡혀 정상인을 위한 사회가 내준 제한된 환경에 고립되지도 않았다. 그는 ‘나도 예술 작품을 지각하고 싶다’는 희망을 갖고, 거절이 반복돼도 좌절하지 않고 노력하여 결국은 예술 작품을 음미할 기회를 얻어낸다.
자신의 욕구를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의 기저에는 욕구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게 만드는 열등감이 내재되어 있다. 나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내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솔직하고 정중하게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한 그의 용기 있는 행동은 타인으로부터 기꺼이 그를 돕고 싶은 마음을 유발하였고, 타인의 도움을 받아 그는 결국 예술을 음미할 기회를 얻는다. 자신의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한 필수 조건은 핸디캡을 열등감 없이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용기 있게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도움을 준 타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인 것 같다.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만 문이 열리는 것이다.
배려와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고 희생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에게 예술을 읽어주던 작가를 비롯한 비장애인 친구들은 시각장애가 있는 친구에게 작품을 말로 설명해 주는 노력을 통해서, 자신이 갖고 있던 주관적이고 왜곡된 프레임에서 벗어나 비로소 실제에 가깝게 해상도 높은 객관적인 시각으로 예술 작품을 지각하게 되고, 이러한 확장된 시야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사고의 틀까지 확장시키는 기회를 얻는다. 모든 관계에서의 역동은 어느 한쪽이 일방적인 수혜자나 희생자 혹은 피해자나 가해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어떤 면에서 크고 작은 득과 실을 얻기 마련이다.
세상을 제대로 보고 싶은 한 장애인의 용기와 그를 기꺼이 돕기로 한 비장애인간의 소통을 위한 쌍방의 노력은 양쪽 모두가 깊이 있는 소통과 공감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진정한 행복이란 지금 현재 여기에서, 상호 간에 깊이 있는 소통과 공감을 경험하는 바로 그 순간의 경험에 있는 것이다. 혼자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개인의 발전은 다양성을 가진 개개인이 노력을 통해 서로 가지고 있는 자원이 융합할 때 나타난다. 그리고 발전된 개인들이 모여 이룩한 집단의 힘으로 다양성을 수용하는 포용력 있는 사회가 형성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