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인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변증법적 사고
일본의 대표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가 도서관과 사서의 역할, 학교에서의 역할, 종이책과 전자책, 출판계와 독립서점 등에 대해 이야기한 글들을 박동섭 씨가 엮어서 출판한 에세이 모음이다.
책이란 상품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상품 이상의 역할이 우선시된다는 저자의 의견 하에, 책을 상업화하는 모든 시도를 비판하면서 상업화에 역행하는 종이출판물과 독립서점의 확산을 찬양한다. 거대 자본이 도서관의 민영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이용하는 근거로 단순히 대출 빈도가 적은 책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실질적으로 가치가 떨어지는 책으로 서가를 채운 뒤 도서관을 상업화해 이용객이 늘었다며 도서관의 민영화를 주장하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을 강경하게 주장하는 가운데 나온 발언이 이 책의 제목이 되었다. 단순히 거대 자본만을 겨냥한 비판뿐 아니라, 작가들이 자칫 지나치게 인세에 몰입하면서 신간이 도서관에 배치되는 것을 반대하거나, 직접적인 경제적 이득이 없다며 자신의 글 일부가 교육자료로 쓰이는 것을 거부하는 근시안적이고 폐쇄적인 태도 또한 비판하는 등 책의 근본적인 역할은 결코 돈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일관된 주장을 한다.
도서관을 가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솔직히 도서관에 사람이 없는 편이 좋기는 하다. 하지만 결국 저자가 초반에 언급한 대로 책은 읽혀야 가치가 있는데 그렇다면 도서관에 사람이 많은 편이 좋은 것 아닌가? 출판사에서 직접 운영하는 카페형 도서관에 많은 사람이 몰리듯이 결국 보편적이고 많은 사람의 흥미를 끌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자본 투입은 불가피하지 않을까? 사서가 신비로운 마녀가 되어 자본주의와 싸워서 도서관의 신비를 사수하라는 작가의 구체적인 대책 없는 상징적인 주장보다, 이용객이 적은 공공도서관이 어느 정도의 민영화를 허용하여 실질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책들을 배치하거나, 단순히 책을 읽는 것 외에 다른 목적으로 도서관에 갔다가 자연스럽게 책을 읽게 되는 기회를 주는 편이 좀 더 현실적이고 다수의 국민에게 공공의 이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맹목적이고 절대적인 물질주의적 태도는 분명 병리적이지만, 결국 자본주의가 다수의 보편적인 사람들에게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게 해 준 것은 사실이다. 단지 자본주의 시스템이 장기화됨에 따라 장점만큼 단점도 누적된 것뿐이다. 궁극적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다수에게 이득이 되는 차원에서의 조율이 필요하지, 어느 방향이든 절대적이고 완고한 태도는 현실적으로 다수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작가의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이 주는 준엄한 경고라던지, 종이책 예찬이라던지, 책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하여 타인과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글들은 공감되고 좋았다. 지금-여기에서 실질적으로 경험되는 모든 순간을 명징하게 직시하면서 존재론적인 삶을 사느라 조금 지치고 피곤할 때, 책장을 열어 다른 차원 속으로 도피해서 조금 쉬어야겠다.
상품이면서 공공재이고, 읽혀도 읽히지 않아도 의미 있고, 실질적이고 기능적인 도움이 되면서도 실제 현실의 도피처가 되어주기도 하는 책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책뿐만 아니라 나, 타인, 세상에도 존재하는 이러한 모순과 대립, 양면성을 모두 수용하고 사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