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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mize Impact Sep 22. 2022

아토피안을 위한 안전한 공간 만들기

"와~ 아토피 진짜 좋아졌다. 인간 됐네?"


몇 해전 활동하던 동아리에서 연말 기념으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자리에서 누군가가 초 치는 소리를 했다.  


"아 진짜 나쁘다.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에요. 기분 나쁘게"


그것도 농담이랍시고 천진한 얼굴로 껄껄대는 그를 보며 나는 아주 불쾌하다는 듯이 언성을 높였다. 주변 사람들도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그에게 야유를 보냈다. 그의 옆에는 초등학생 아들이 앉아 있었는데 자기 아빠와 나 사이에서 슬쩍 눈치를 보는 표정이었다. 그는 고등학생~초등학교까지 세 자녀를 둔 어른이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어른이지만 그는 종종 성별, 나이 등과 관련된 감수성 떨어지는 농담을 자주 던졌다. 그럴 때마다 동아라 사람들은 그를 질타했지만 그 수위가 충분하지 못했는지 그의 농담하는 버릇은 쉽게 교정되지 않았다. 물론 그는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단지 그가 구사하는 유머의 수준이 문제가 되었지만 그 누구보다 사람을 살뜰히 챙겼고 사람들을 모으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가 그런 농담을 하더라도 그가 동아리에 기여하는 노고로 인해 어느 정도 희석되는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뒤,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친구가 내게 말했다.


"그래도 여기는 건강한 동아리인 거 같아. 너도 상대방이 그런 이야기를 했을 때 불쾌하다고 바로 표현할 수 있었고 다른 사람들도 그게 잘못된 거라고 이야기해줬잖아"



그 말이 오랫동안 여운에 남았다. 예전에는 잘 몰랐다. 오히려 그런 말들을 들으면 스스로가 더 초라하게 느껴졌고 그런 말들로부터 도망 다니기 바빴다. 상대에게 불쾌한 말 또는 바라지도 않은 지나친 배려(예를 들어, 내가 널 걱정해서 하는 말인데 머리를 좀 길러서 목 아토피를 좀 가리고 다니면 어떠니? 와 같은 말들 - 실제로 내가 들어본 말이다)의 말을 듣고도 그나마 상대방에게 도리를 지키려고 했던 날들. 그런 말을 듣고도 상대방을 불쾌하게 하지 않으려고, 나도 내가 왜 이런지 모르겠다며 희미한 웃음과 스스로를 낮추는 말로 받아치곤 했던 날들이 있었다. 하지만 뒤돌아와서 보면 결국 초라해진 건 나였고 상대방은 그게 잘못된지도 모른 채 나이를 먹어가는 듯했다. 그들은 분명 다른 곳에 가서도 타인에게 상처가 되는 '무지한 말들'을 반복할 것이다.


이제는 오랜 세월 아토피를 겪다 보니 어쩌다 나를 스스로를 지키는 깜냥이 생겼다.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불시에 다가오는 무지한 언어나 시선을 일일이 교정해낼 수 없다면, 적어도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직선적으로(또는 알아들을 수 있는 만큼 완곡하게) 표현하는 일 정도는 그나마 내가 할 수 있게 되었다(상대방에게 '그런 게 말하는 건 잘못된 거야'라고 말하기보다는 '그런 말을 들으니 내 감정이 어땠어'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 여전히 어렵지만 그렇게 조금씩 내 주변의 안전한 공간을 확보해나가고 있다. 때로는 기꺼이 프로 불편러가 되면서까지 말이다.



우리에겐 관계편식이 필요하다

물론 안전한 공간은 혼자만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혼자 아무리 북 치고 장구치고 솔직하게 말해봤자 동조자가 없다면 오히려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될 수도 하다. 당시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그에게 기분이 나쁘다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던 건, 그 동아리가 솔직함을 허용하는 분위기였고 잘못함을 지적하는 것을 동조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신체적 고충만이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예민한 상황을 종종 마주하게 되는 아토피안에게는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 집단을 잘 골라 사귀는 것(관계 편식이라고 해야 할까?)도 생활관리만큼 중요하다. 내가 이해받을 수 있고, 내가 어떤 몸 또는 질병을 갖고 있던 간에 '나는 나'라는 사실을 온전히 인정하고 대우해주는 사람을 곁에 두어야 한다. 만약 어떤 집단이나 관계에서 조금도 그러한 감수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과감히 그 집단으로부터 걸어나오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도 있다.


아토피를 앓고 있는 나의 지인은 이전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그녀는 1년 계약직으로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종종 그녀의 입을 통해 들려오는 직장 이야기는 굉장히 당혹스러웠다. 직장 상사는 그녀에게 "우리가 너한테 자선 사업하는 줄 아느냐?"라는 저의를 알 수 없는 말을 한 적이 있고 계약이 만료될 시점에는 "우리는 너한테 줄 일이 이만큼이나 많은데 네가 몸이 아파서 일을 더 줄 수 없다"라는 식으로 재계약을 할 수 없는 사유를 둘러댔다고 한다. 결국 계약은 연장되지 않았고 그녀는 다른 직장을 찾았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그 회사 사람들의 태도에 놀랐고 나는 오히려 그녀를 축하해줬다. 그런 이상한 곳에서 더 이상 일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그 직장상사는 어떻게 그런 말들을 뻔뻔하게 할 수 있었을까? 그녀는 어떻게 그곳에서 1년 을 버텼을까? 그 회사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땠을까? 그런 언어를 낯부끄러워하지 않고 뱉을 수 있다는 건 다문 그 상사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런 말을 당당하게 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회사의 분위기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티핑포인트, 25%

미국의 네트워크 연구가 '데이먼 센톨라'는 한 집단의 견해나 사회의식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그 집단의 25%의 동조만 이끌어내면 된다고 말했다. 네트워크 역동성을 연구하는 그는 집단 변화를 위한 티핑포인트는 25%라고 말했는데, 집단의 25%가 동조하는 순간 그 집단은 새로운 규범이나 생각을 굉장히 빠른 속도로 받아들인다고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사회변화라는 거창한 목적은 아니더라도, 만약 나를 위한 안전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면 스스로 그 25% 중의 하나가 먼저 되어보자. 네 명이 모였다면 그중 한 명이 되면 되는 것이다. 불편한 것은 불편하다고 말하고 상처가 되는 말이 있다면 삼가달라고 먼저 말을 건네보자. 그리고 다른 누군가를 위해 25%가 되어주자. 그래야 아토피안뿐만 아니라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 공존하며 살 수 있는 사회적 감수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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