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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 18. 2022
의료용 로션을 바르면서 든 생각
타인의 생체리듬대로 사는 일
의료용 로션을 바르면서 든 생각
올 추석 연휴에 가족과 식사 자리에 앉았다. 환절기라 그런지 검은 티셔츠를 입으면 어깨 주변으로 각질이 수두룩 흩날릴 만큼 피부가 건조해졌는데, 그날은 유독 입 주변 피부가 뻑뻑했다. 도저히 로션을 안 바르고는 견딜 수가 없어서 냉큼 주차장으로 달려가 로션을 꺼내 자리로 돌아왔다. 거의 다 써가는 로션을 쥐어짜 내 입 주변에 듬뿍 바르고 나서야 표피에 거머리가 여러 마리가 붙어 있는 것 같은 묵직하고 찝찝한 기운이 사라졌다. 언니는 내 로션을 보더니
'이게 의료용 로션이가? 로션이 아니고 점착성투명창상피복재라고 적혀 있네?'라고 했다.
'어, 이거 피부과에서 3만 원인가 처방해줘서 산 거다. 실비는 받았고' 나는 대답했다.
'아빠도 이런 거 있었는데. 병원에 있을 때 몸이 약해지니까 하도 피부 건조해지고, 뭐 반창고 붙인 자국이 덧나고 해서'
올해 2월에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K-장녀 전담마크로 아빠를 간병했던 언니가 말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내게 로션 통을 내밀면서
'자, 이거 아빠 쓰던 건데 네가 쓸래?'
라고 말했다. 로션 통에는 '점착성투명창상피복재'가 적혀 있었다. 아빠는 이 로션 한 통을 미처 다 바르시기 전에 돌아가셨다. 문득 아빠를 간병하던 때가 생각났다.
나의 아토피 피부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 아니다. 나의 부모도, 증조부모도 그리고 친척 중에 아토피를 가진 사람은 나 밖에 없다. 외할아버지가 소양증(가려움증)과 포도 알러지같은 게 있으시긴 했는데 나처럼 아토피 피부를 가지신 건 아니었다. 피부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간암이 있었던 아빠는 가끔씩 간암으로 받은 시술이나 약을 먹고는 가려움증을 호소하곤 했다. 한 날은 아빠가 '왜 이렇게 간지럽노?' 하며 팔을 벅벅 긁다가 급기야 피부과에 가서 약을 처방받았는데(역시나 약은 스테로이드랑 항히스타민제였다). 가족 중에 나 말고 저렇게 피부를 벅벅 긁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작년 폐렴 때문에 병원에 입원했다가 신장병까지 얻어버린(폐렴균이 신장으로 전이되어서) 아빠는 급속도로 건강을 잃어갔다. 제대로 못 먹고,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심지어는 말도 잘 못하게 된 아빠는 점점 말라갔고 건강을 잃음과 동시에 아빠 몸을 둘러싼 피부가 점점 약해져 갔다. 영양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고 햇볕도 제대로 못 쬐는 병원 안에서 주사 바늘을 여러 개 꽂고 있던 아빠. 건조한 병원 공기 때문에 아빠 피부는 생선 비늘처럼 하얗게 일었었다. 하얗게 약해진... 여러 튜브를 고정하느라 붙인 밴드를 못 견뎌하던 아빠의 피부는 '점창성투명창상피복재'를 덧발라야 했다. 내 피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걸 얇은 막이라도 덮어씌워줘야 하기 때문에.
아토피안의 돌봄
당시 직장을 다니지 않던 언니가 아빠의 간병의 전적으로 맡기는 했지만 가끔 긴 휴가를 쓸 수 있던 때가 오면 나는 틈틈이 대구로 내려가 병원에서 아빠를 간병했다. 여름에 간병하는 건 상대적으로 견딜만한데 병원이 히터를 틀기 시작하는 계절이 오면 병원에 있는 것 자체가 아토피안 보호자에게 쥐약이다. 그렇지 않아도 건조한 병원이 더 건조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창문 주변이 아닌 위치에 병상을 배정받으면 잠시라도 바깥공기를 쐴 틈이 없어 몸이 더 지쳤다. 분명 아빠를 간호하러 왔는데 단 며칠 만에 내 몸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병상 옆을 지키는 모든 보호자들이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내 몸의 무너짐은 쉽게 피부로 다 드러난다.
밤낮이 바뀌어 새벽녘만 되면 말똥말똥해지는 아빠를 휠체어에 태워 몇 번씩 화장실이나 복도를 왔다 갔다 하는 일, 건조한 공기, 1층까지는 내려가야 그나마 시원한 바깥공기를 쐴 수 있는 거대한 병원 건물... 단 며칠만으로도 컨디션과 피부 상태가 확확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누군가를 돌볼 수 있는 몸인가?'
아토피안에게는 컨디션 관리, 그러니까 자신의 생체리듬을 자신의 상태에 맞게 관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간병'이라는 것은 태생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한 노동이다. 자신이 아닌 '환자'의 생체리듬에 자신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인생에 태어나서 누군가를 한번 즈음 겪어가야 하는 '돌봄'이라는 노동에서 내 몸이 버텨낼 수 있을까에 대해 아빠를 간병하는 동안 생각했다. 생애주기에서 내 부모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도 언제가 그래야 하고, 나도 언젠가 돌봄을 받아야 하는 시기가 온다. 태생적으로 돌봄이 필요한 '몸'을 타고난 나도 누군가가 생의 어느 시기에 돌봄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돌봄이라는 노동을 해내 주고 싶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서 몸을 조금 더 건강하게 관리해야겠다는 결심이 서는 밤이다. 오늘도 건조해진 날씨 덕분에 '점착성투명창상피복재'를 아빠 피부에 그랬던 것처럼 덧바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