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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17. 2022
회사 외부 일정에 지원을 나왔다가 마침 근처에 살고 있는 외숙모를 만났다. 만난 김에 차나 한잔 하고 가라는 말에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길 한가운데서 문득 외숙모네에 살고 있는 갈색 푸들 한 마리가 생각났다. 강아지나 고양이든 동물은 무조건 좋아하고 보는 성격이지만 나는 제기랄 놈의 알러지가 있다(말, 개, 고양이 알러지).
덕분에 강아지 입양은 커녕 동네 산책 나온 강아지를 멀리서 지켜보거나 쓰다듬은 후에는 손을 바로 씻어야 한다. 어찌 되었든 오래간만에 만난 반가운 사람의 집으로 가던 길을 멈출 수는 없거니와 사실 알러지와 관계없이 강아지를 보고 싶어서 가던 길을 마저 재촉했다. 푸들이 상대적으로 털이 덜 날리는 종이라 견딜만할 것이라 위안을 하면서.
삐리릭. 문을 열자마자 거실 소파 위에 앉아 있던 갈색 강아지가 총총총 뛰어왔다. 배를 까고 꼬리를 흔드는 이 경계심 없는 생명체는 처음 보는 이에게 무한한 애정을 갈구했고 나는 그에 부응하듯 신나게 배를 쓰다듬어주었다. 가려우면 긁으면 되지. 에라 모르겠다.
한창 강아지 만지기에 심취해 있는데 찬장을 뒤적이며 외숙모가 물었다.
"뭐 먹을래? 커피 줄까?"
"아니요~ 오후에 커피를 마시면 저녁에 잠을 못 자서 되도록 커피는 안 마시고 있어요~"
잠을 제때 못 자면 다음날 신체균형이 무너져 내리며 피부 발진이 올라와서 오전 시간이 지나면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그럼 뭐 줄까? 와인이라도 좀 마실래?"
"아니요, 저 요새 술은 피부 때문에 좀 안 마시려고 하고 있어서"
알코올은 염증에 쥐약이라고 하지 않는가? (사실 가끔씩 먹기는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빈도를 확실히 줄였다. 몸이 옛날처럼 술을 받아주지 않는다)
"아이고 네가 못 먹은 게 참 많네. 줄 게 없는데 그럼 이거라도 좀 먹어"
반듯하게 깎인 사과를 테이블 위에 올리며 외숙모가 말했다.
'아... 나 사과 알러지도 있는데'
차마 그 말까지는 입이 떨어지지 않아 사과를 몇 초간 들여다봤다. 그리고 한 입 베어 물었다.
'아 맛있다'
알러지와 무관하게 사과는 참 달고 아삭하다. 어차피 강아지도 만졌겠다. 오늘은 이판사판이다.
사과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 강아지 친구도 알러지가 있다고 했다. 정해진 사료를 먹지 않으면 눈과 귀가 빨개져서 간식을 먹지 못한다고 했는데 왠지 모를 동병상련이 느껴졌다. 강아지들은 산책이랑 간식 먹는 게 거의 유일한 낙인데 이 친구 인생은 나보다 제한된 게 훨씬 더 많구나. 그리고는 강아지를 더 쓰다듬어 주었다.
결국 온몸이 가렵고 입 주변이 벌겋게 일어나 그날 이후 며칠은 꽤 고생했지만 그래도 후회 없다. 때로는 이판사판인 날도 있는 법. 강아지가 귀여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