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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법 소개하기] 계약법 제1편

계약의 시작은 합의! Offer, acceptance, agreement


안녕하세요.  영국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후에도 이론이 정립이 안 된 느낌이 들어, 최근에 법대생들이 많이 본다는 기본서를 빌려서 다시 계약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계약법 기본서인 Ewan McKendrick 저 ("Contract Law")를 참고하여 영국 계약법의 기본 내용을 정리하는 포스팅을 하려고 합니다.


내용을 그대로 요약해서 올리기보다는 제가 이해한 바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정리할 예정이며, 용어는 한국법과 일대일대응이 되지 않는 개념이 많다는 점을 감안해서 최대한 영어 원문 위주로 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외국법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다 보니 비문이나 번역투로 된 것이 많을 텐데, 양해 부탁 드립니다.


Agreement


우선 가장 처음에 시작하는 장은 당사자 간 합의(Agreement)를 다루고 있습니다.  시험공부를 할 때에는 별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SQE 1 시험에 그렇게 빈도 높게 출제되는 영역은 아닙니다.


여기서 중요한 요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당사자들이 합의에 도달했다는 사실은 누가 판단하는가?(Who decides that an agreement has been reached?) (2) 당사자들이 합의에 도달했다는 사실은 어떻게 판단하는가? (How is it decided that the parties have actually reached an agreement?)


우선 당사자들이 계약이 체결되었다는 전제 하에 계약 해석에 대한 주장을 펼칠 경우, 영국 법원은 일관되게 당사자 간 합의가 존재하는지 여부를 검토하여 법원이 계약의 성립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I have no doubt that, when the parties to a litigation put forward twhat they say is a concluded contract and ask the Court to construe it, it is competent for the Court to find that there was in fact no contract and nothing to be construed [...]

Lord Normand, Mathieson Gee (Ayrshire) Ltd v Quigley 1952 SC (HL) 38


그렇다면 합의한 사실 자체는 어떻게 확정할까요?  영국법은 당사자 간 합의의 존재사실 및 합의의 범위는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 판단합니다.  우선 합의의 존재 여부, 즉 계약의 체결 여부의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If a reasonable man would believe that he was assenting to the terms proposed by the other party, and that other party upon that belief enters into the contract with him [...]

Smith v Hughes (1871) LR 6 QB 597

이와 같이 당사자의 주관적인 인식(parties' subjective state of mind)과 관련 없이, 당사자 간 언행이나 행동을 고려하여 객관적으로 당사자들이 법적 관계의 창설을 의도하였는지 여부에 따라 구속력 있는 계약의 존부가 결정된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RFTS Flexible Systems Ltd v Molkerei Alois Mueller GmbH & Co (UK Production) [2010] UKSC 14 참조.)



그렇다면 당사자의 주관적 의사는 계약법과 관련이 없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영국 법원은 크게 두 가지 상황에서 당사자의 주관적 의사에 꽤 비중을 두어 사건을 판단한다고 합니다.  


첫째는 offeree(청약의 의사표시를 받은 자, 피청약자)가 offeror(청약의 의사표시를 하는 자, 청약자)가 착오에 빠져 있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이 경우 피청약자가 청약자가 착오에 빠진 채 보내온 제안을 수락하더라도 계약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Longley v PPB Entertainment Ltd [2022] EHWC 977 (QB) 판례에 따르면, 피청약자가 이러한 착오사실에 대해 악의인 상태여야 합니다.  즉 피청약자가 착오 사실을 알고 있은 것으로 추정/간주될 수 있는(constructive knowledge) 상태인 것으로는 불충분하고, 실제로 피청약자가 이와 같은 사정을 인식하고 있었어야 계약의 불성립을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첫째 경우와 비슷한 맥락의 상황이라고 볼 수 있는데, 바로 청약자의 착오가 피청약자에 의해 유발된 경우입니다. 사실 왜 이렇게 구분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Scrivenly Bros v Hindley [1913] 3 KB 564에서 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습니다:


The defendants by their defence denied that they agreed to buy this Russian tow, and alleged that they bid for Russian hemp and that the tow was knocked down to them under a mistake of fact as to the subject-matter of the supposed contract [...]
In my view it is clear that the finding of the jury upon the sixth question prevents the plaintiffs from being able to insist upon a contract by estoppel. Such a contract cannot arise when the person seeking to enforce it has by his own negligence or by that of those for whom he is responsible caused, or contributed to cause, the mistake.

A.T. Lawrence J, Scriven Bros v Hindley [1913] 3 KB 564


Offer


당사자들 간에 계약이 성립하였는지, 즉 합의에 도달하였는지 여부를 어떻게 판단하는지 여부는 앞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합의가 있으려면 Offeror의 청약이 있어야 하고 그에 대한 Offeree의 승낙이 있어야 한다는 점은 자명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국법에서 "Offer"는 "어느 당사자가 제안을 받는 쪽이 수락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청약에) 명시된 조건에 따라 계약을 체결할 의사가 있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a statement by one party of a willingness to enter into a contract on stated terms, provided that these terms are, in turn, accepted by the party or parties to whom the offer is addressed)을 지칭합니다.


Invitation to treat


수험서나 대부분의 교과서에서는 위와 같이 offer를 정의하고, 법리를 설명하기 위해 "Invitation to treat"이란 개념과 대비합니다. 편의를 위해 ITT라고 하겠음  제가 한국 민법을 공부할 때 배운 경험을 기초로 보면, '청약의 유인'과 대응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ITT는 계약을 체결할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 아닌 단지 '협상에 참여할 의사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ITT의 예시로는 가게에서 판매하고 있는 상품을 전시(display of goods for sale)하거나, 광고(advertisements)를 내보내는 경우, 그리고 입찰을 공고하는 것(invitation to tender), 그리고 경매인의 입찰 초대(invitation of bids by an auctioneer)를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법리가 모든 경우에 절대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영국 고등법원은 Carlill v Carbolic Smoke Ball Co [1983] 1 QB 256에서 제품을 사용한 후에도 독감에 걸리면 100파운드를 지급하겠다는 광고(현상 광고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를 ITT가 아닌 offer로 보았습니다.  주된 논리는 광고 자체가 대세적(in rem)인 청약이고, 조건으로 내세운 행위를 실행한 사람들과 회사 간에는 계약이 성립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아가 두 입찰자를 초대하여 각자 입찰 내용을 밀봉하여 제출하게끔 하고, 이 중 높은 입찰가격을 제시한 자를 선정하겠다고 한 입찰 공고를 청약으로 본 사례도 있습니다(Harvela Investments Ltd v Royal Trust Co of Canada [1986] AC 207).


정의만 놓고 보면 ITT와 offer가 개념상 명확히 구분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렇게 둘을 구분하는 것의 어려움을 잘 드러낸 사례가 바로 Gibson v Manchester City Council [1978] 1 WLR 520입니다.  


Gibson 사건


해당 사건은 지역의회의 공공주택 매각이 문제가 된 사안으로, Gibson이라는 사람은 맨체스터 시의회가 자신이 살고 있던 집을 매각하려 하자 이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시의회가 보낸 브로슈어에는 별첨으로 주택 구입 신청서 양식 또한 포함되어 있었는데, Gibson이 신청서를 작성하여 시의회에 제출하자 시의회는 '정식으로 신청을 제출(make a formal application)할 의향이 있다면, 추가 서류를 작성해서 제출해라'라고 회신하였습니다. Gibson 씨는 추가 서류 또한 작성하였으나, 거주하고 있던 주택에 수리가 필요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주택 가격을 기재하지 않고 공란으로 두었습니다. 후에 시의회가 수리를 해 줄지, 아니면 매매가격에서 수리비용에 상당하는 금액을 공제할지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시의회는 문제가 되었던 주택 현관 입구로의 상태를 감안하겠다고 답장하였고, Gibson 씨는 수리를 시작하며 시의회에게 구입신청을 계속 진행해 달라고 전달하였습니다. 후에 정권이 바뀌자 시의회는 의회 소유 주택을 판매하는 정책을 중단하였고, Gibson 씨에게는 두 당사가 간에 계약이 성립한 바 없다는 이유로 매도를 거절하였습니다.


당시 최종심을 담당하고 있던 귀족원 House of Lords - 지금은 영국 대법원이 최종법률심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은 계약이 성립하지 않았다고 보았습니다.  언뜻 보면 Gibson 씨가 참 불쌍하게 느껴지는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귀족원은 시의회가 회신한 내용은 주택을 판매하겠다는 의사의 표시가 아니었으며, 청약의 유인에 불과하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아마도 시의회가 처음에 응답할 때 '추가 서류를 작성해서 제출해라'라고 회신했던 부분을 기초 삼아 청약이 아닌, 계약에 대한 협상을 시작할 의사가 있다고 보았던 것 같습니다.


Acceptance


계약이 성립되었다는 가정 하에, 청약의 반대편에는 반드시 승낙이 있기 마련입니다.  영국법은 acceptance를 '청약자가 제시한 계약조건에 대한 무조건적인 승낙의 의사표시(unqualified expression of assent to the terms proposed by the offeror)'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Acceptance는 행위(conduct)를 통해 이뤄질 수도 있으나, 이 경우 피청약자가 명확하고 확고하게(clear and unequivocal), 그리고 객관적으로 청약을 수락할 목적으로 행위하였다는 요건을 충족하여야 합니다.  나아가 계약 조건에 대해서는 최종적으로, 그리고 무조건적으로(unqualified) 수락하여야 acceptance가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Acceptance가 시험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acceptance의 전달, 즉 'communication of acceptance'일 것입니다.  영국법은 승낙이 청약자에게 전달되어야 하며,  일반적으로 청약자가 승낙사실을 실제로 인지하였을 때 유효하게 전달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Entores v Miles Far East Corp [1955] 2 QB 327 참조).  Postal rule은 워낙 유명하니 다루지 않겠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승낙을 하는 사람이 머릿속에 청약을 염두하지 않은 채 청약자가 요구한 행위를 하는 경우 승낙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R v Clarke [1927] 40 CLR 227).


만약 계약 당사자들끼리 acceptance의 방법을 정해두었던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요? 명확하게 acceptance의 방법을 한정하지 않으면, '입찰자의 제안에 따라 낙찰되는 경우, 공고자는 입찰서에 기재된 주소로 통지한다'라는 문구가 계약서에서 포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입찰자의 법률대리인에게 한 통지가 유효하다고 본 사례가 있습니다. 즉 영국법은 이렇게 명확히 교신의 방법을 한정하여 특정하지 않은 경우 - 즉 이외의 방법으로 통지하였을 경우 통지가 무효라는 취지의 규정을 삽입하지 않았을 경우 - 청약자에게 실제로 acceptance가 전달된 수단이 계약서에 언급된 수단보다 불리하지만 않으면 acceptance가 유효하게 전달되었다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청약을 철회하고자 하는 경우는 어떻게 될까요?  청약의 철회 또한 피청약자가 인지할 수 있게끔 전달되어야 합니다.  이 경우 postal rule은 적용되지 않고 상대방 당사자에게 실제로 청약의 철회의 의사표시가 도달하였을 때 철회가 된 것으로 인정됩니다.


다음번에는 계약의 다음 요건 확실성 또는 법적 관계를 의도하였는지 여부(certainty and intention to create legal relations)에 대해서 포스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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