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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Jan 26. 2023

백사가 허선을 구하러 온 곳으로

쩐쟝(镇江) 지역연구 1일차 (1)

세 곳의 산(三山)을 보러, 쩐쟝으로


닝보를 다녀와 서법 수업에 발도장 한 번 찍어주고, 다음날 바로 향한 곳은 역시 상하이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장쑤성(江苏省)의 도시, 쩐쟝(镇江). 사실 상하이에 가기 전에는 잘 모르던 도시인데, 어차피 이번주 지역연구의 목표가 상하이가 아닌 곳에 있자는 것뿐인 데다 쩐쟝이 상하이에서 기차로 한 시간 반 정도밖에 걸리지 않아 다음 목적지로 정하게 되었다.


작은 도시인 것 같아 둘러볼 곳이 없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찾아보니 이 도시에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산이 세 곳이나 있었다. 통칭 삼산(三山)이라 하는데, 진샨(金山, 금산), 베이꾸샨(北固山, 북고산), 쟈오샨(焦山, 초산)이 그것이다. 등산을 해야 하는 줄 알고 지레 겁먹었는데, 상하이 서산(佘山)처럼 거의 동네 뒷산 정도, 혹은 언덕 정도의 높이라 하여 용기가 났다.



상해홍교역에서 고속철을 타고 진강역으로 향했다. 한 시간 반 정도 지나 역에 도착했는데, 역에서 숙소까지 거리는 무척 가까웠지만 지하도를 돌아돌아 가야 도착이 가능했다. 2박 3일을 위한 짐을 들고 이동해야 하는 데다 강남의 여름 날씨는 사우나라, 숙소에 도착도 하기 전에 이미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숙소에서 바라본 쩐쟝의 풍경. 호텔 앞에 바로 주택가들이 있어서 그런지 아파트 뷰다. 야경은 별 볼 일 없겠군. 숙소 체크인을 하고 나니 딱 점심시간인데, 너무 덥기도 하고 밖에서 식당을 찾아 먹기도 좀 귀찮아서 호텔 들어가던 길에 봐두었던 홍콩 디저트 가게 꾸이위안푸(桂源铺)에서 에그와플과 밀크티를 사 먹기로 했다. 홍콩식 에그와플은 사실 한국에서 먹어본 적이 없는데, 당 충전 제대로 했다. 날이 더워 밀크티도 시원하고 좋았다.




백사(白蛇)가 허선(许仙)을 구하러 온 곳, 진샨(金山)


출출한 배를 좀 채우고 숙소 앞에서 버스를 타고 진샨으로 향했다. 버스 카드가 없어서 현금 1 위안을 내고 탔는데, 상하이에 온 뒤로 위챗 페이 등으로 동전이나 지폐를 쓸 일이 정말 없었어서 나름 신선했다.



진샨 입구에 도착하면 이렇게 수많은 연꽃과 연잎들이 반겨준다. 때는 이미 7월 중순에 가까운 데다 날이 워낙 더운 쩐쟝이라 이미 활짝 펴서 져버린 연꽃들이 꽤 많았지만, 그래도 푸른 연잎과 분홍 연꽃들이 수놓은 강이 예뻤다. 당시엔 왜 입구에 이렇게 수많은 연꽃이 있는지 몰랐는데, 찾아보니 진샨을 형용하는 말 중, "강의 중심에 있는 아름다운 연꽃(江心一朵美芙蓉)"이라는 말이 있어 이곳을 연꽃으로 장식해 둔 것이 아닌가 싶다.


진샨은 육지에 붙어있는 '산'인데, 왜 강 중심에 있는 연꽃에 비유했을까? 사실 진샨은 지금과 같이 육지에 붙어있는 산이 아니라, 본래 장강에 떠있던 작은 섬이었다고 한다. 청 광서 말년쯤 섬의 좌우가 육지와 연결되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본래 산이 아니었어서 그런지 높이가 해발 43.7m밖에 되지 않는 곳이다. 그러니 등산에 취미가 없어도 가벼운 마음으로 가도 된다. 입장료는 50위안이었다.


이곳 진샨은 꽤 유명한 전설의 배경이다. <백사전(白蛇传)>이라고 하는, 중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전설 속에 등장하는 산이 바로 이곳이다. 전설에 따르면 송나라 때 백소정이라는 천년 묵은 뱀 요괴가 살았는데, 서생 허선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줬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이 되어 그와 부부의 연을 맺고 약방을 하며 살았다고 한다. 결혼 후 금산사의 승려인 법해가 그녀의 정체를 알아보고, 혹여 나쁜 요괴일까 저어되어 허선에게 그녀가 뱀 요괴임을 알려주게 된다.


반신반의하던 허선이 법해가 알려준 방법대로 백소정에게 옹황주를 마시게 하였는데, 그녀가 갑자기 본래 형태인 뱀으로 돌아가 허선은 놀라 목숨을 잃는다. 백소정은 허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하늘에서 선초를 훔쳐와 그를 살린다. 백소정이 여전히 허선 옆에 있는 것을 보고 법해는 허선을 금산사에 데려와 감금하여 백소정을 유인하고, 그들은 이곳에서 싸움을 벌인다. 후에 백소정은 하늘의 규율을 어긴 죄로 뇌봉탑에 갇히는데, 이 뇌봉탑은 항저우에 있고, 이야기 속 금산사가 바로 이 진샨에 있는 사찰이다. 그러니 진샨은 백사가 허선을 구하러 왔던 곳인 셈이다.


<백사전>은 요괴와 인간의 사랑 이야기로, 판본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인 스토리는 비슷하고, 여러 번 드라마로 만들어질 정도로 유명하다. 법해라는 인물은 그 의도가 선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결과적으로 사랑하는 두 남녀를 떼어놓은 장본인이 되어 악역으로 인식되곤 하는 것 같다. 이런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곳이니 진샨을 찾는 중국인이 많은 것도 이해가 간다. 실제 진샨의 정문을 들어서면 <백사전>을 주제로 꾸며놓은 곳도 있고, ‘전설에 따르면’ 항저우로 통한다는 동굴도 있다.



진샨은 아래 사진과 같은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높지 않은 산 하나와 그 산을 기대고 있는 사찰 하나. 이 사찰의 이름은 금산사인데, 강희제가 이곳을 유람할 때 강천(江天)이라는 이름을 하사해 강천선사(江天禅寺)라는 이름이 있기도 하다. 동진 때 만들어진 사찰로 약 16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곳은 중국 선종불교의 4대 사찰 중 하나다. 이 사찰이 진샨을 뒤덮고 있는 형태라 '금산사가 산을 싸고 있다(金山寺裹山)'고 형용하기도 한다. 금산사의 문은 서쪽을 향하고 있는데, 서방 극락세계로 가겠다는 뜻이라고 한다.



동진 건축 양식일 화려한 문을 지나면, 강희제가 다녀갔다고 하사한 비석과 대웅전, 그리고 사찰 안 각종 건물들이 나온다. 처마 끝이 곡선을 그리며 하늘로 치솟아 있는 형태가 화려하면서도 독특하다. 천천히 계단을 올라 사찰의 위쪽으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뒤를 돌아봤을 때 보이는 아래 풍경이 넓어지고 멋있어진다.



거의 끄트머리까지 올라오면 탑이 하나 나온다. 이름은 자수탑(慈寿塔). 북송 때는 쌍탑이었다는 이 탑은 화재로 탑이 모두 불타버린 후 명나라 때 하나만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청나라 때 또 전란에 불타 없어졌는데, 광서제 때 주지 스님이 수도에 요청해 겨우 모금을 받아 지금의 탑을 재건했다고. 우여곡절이 많다. 탑이 있고 없고가 사찰과 진샨의 면모 자체를 다르게 만드는 터라 후세 사람인 나로서는 당시의 주지 스님의 판단이 현명했다고 생각된다.



꼭대기로 올라와 아래를 조망하면 이렇게 장강(长江)의 모습이 보인다. 멀리 쩐쟝의 풍경도 보이는 것 같다. 안개가 낀 날씨라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다 보고 아래로 내려와 사찰을 올려다보면 이런 모습이다. 위에서 본 모습도 멋지지만 아래에서 올려다본 사찰도 웅장하고 멋지다. 본래 사찰 양쪽에 탑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특별한 장소는 문종각(文宗阁)이 있다. 청 건륭 때 만들었다는 황실의 서고인데, 이곳에 사고전서 한 부가 보관되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아쉽게도 태평천국의 난 때 태평군에 의해 불타버렸고, 지금 보는 건물은 다시 만든 건물이라고. 이렇게 보면 전란의 피해를 겪지 않은 건물이 어디 있을까 싶기도. 자, 이제 백사전의 전설을 뒤로하고 다음 장소로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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