쩐쟝(镇江) 지역연구 1일차 (2)
진샨 구경을 마치고 다음 목적지인 씨진두(西津渡)로 향했다.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 도보로 충분히 이동이 가능할 것 같아서 진샨에서 창쟝루(长江路)를 따라 쭉 걸어서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강이 있어서 그런가, 거리의 낚시꾼들을 마주쳤다. 이렇게 대놓고 낚싯대를 갖고 와서 낚시를 해도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한강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는 걸 생각하면 또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뜬금없지만 아저씨들이 마치 포켓몬 게임에 나오는 NPC 같았다. 야돈 잡는 데 있는 낚시꾼들...
창쟝루를 따라 직진하면 씨진두(西津渡)의 표식이 나오고, 유럽의 건축 양식으로 꾸며놓은 건물들과 길이 등장한다. 흡사 상하이의 신톈디나 조계지의 느낌이 나는데, 틀린 생각은 아니다. 쩐쟝은 2차 아편전쟁 후 <톈진조약>에 의해 개항된 5개 항구 중 하나이며, 그중에서 이곳 씨진두 일대는 영국 조계지였던 곳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보이는 건물들이 당시의 건물이냐 하면 그건 미지수. 이 점에서 이곳은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지보다는 오히려 신톈디에 가까운 것 같다.
그렇다면 씨진두는 그냥 조계지라서 유명한 것인가? 그건 아니다. 개항된 조계지로서의 치욕스러운 역사 이전에 이곳은 '渡'라는 글자에서 알 수 있듯 꽤 유명한 나루터였다. 윈타이샨(云台山)의 절벽과 잔도에 기대어 형성된 이곳은 장강을 통해 내륙으로 들어가는 나루터로, 예부터 널리 이용되던 항구였다. 본래 쏸샨두(蒜山渡), 진링두(金陵渡) 등으로 불리다가 송나라 때부터 지금의 이름인 씨진두로 불리기 시작했다.
수많은 문인들이 물길 여행을 할 때 이곳을 지나갔으며, 특히 원나라 때 마르코 폴로가 이곳을 통해 중국으로 들어왔다고 전해진다. 강북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항구였기에 전략적 요충지였다고. 나루터에 조성된 옛 거리는 약 1km 정도의 길이이며, 육조시대부터 시작되어 당송원명청을 거쳐 지금의 규모에 이르렀다. 현재 볼 수 있는 건물들은 대부분 명청대 건물이다.
씨진두의 메인 거리는 대략 이런 느낌으로 되어 있는데, 사진에서 산 위에 보이는 것이 윈타이거(云台阁)다. 거리 아래쪽에는 상점가와 식당가가 있고, 길을 따라 쭉 위로 올라가면 예부터 남아 있는 유적지들을 볼 수 있다. 그중 하나가 윈타이거. 윈타이샨에 있는 누각이란 뜻이다.
여기는 영국 영사관 유적이다. 앞서 말한 대로 쩐쟝은 2차 아편전쟁 후 개항된 항구 중 하나였고, 이곳 일대는 영국 조계지로 정해졌다. 자연스럽게 영국 영사관이 이곳에 세워졌는데, 문제는 지금 이 건물은 영국 돈으로 지은 게 아니다. 1889년 영국인이 중국 상인들을 구타한 것에 분노한 중국인들이 영사관을 부쉈는데, 청이 그에 대해 배상을 했고 1890년에 그 돈으로 다시 지은 건물이라 사실상 청나라가 지어준 영사관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 영사관 옆길을 따라 걸어가면 구생회(救生会)라는 게 있고, 조금 더 들어가면 원나라 때 만들어졌다는 소관석탑(昭关石塔)이 있다. 구생회라는 것은 지금으로 치면 수상안전 구조대 같은 개념인데, 이곳이 큰 나루터였던 터라 강희제 때 만들어졌다. 국가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라기 보단 자조 조직 같은 개념이다. 소관 석탑은 길목에 자리하고 있는데, 둥글둥글하니 귀엽게 생겼다. 영사관 옆길은 고즈넉하고 분위기가 좋아 웨딩촬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낮의 씨진두 거리는 대충 이런 느낌이다. 사람이 많지도 않고, 여유로운 느낌. 가운데 사진 고양이가 배 깔고 누워있는 것이 여유를 즐기는 듯하다. 거리 곳곳에는 쩐쟝의 명물이라는 꿔까이몐(锅盖面)과 식초(醋)를 파는 상점이 보인다.
한참 걸어 다니느라 목도 마르고 쉬고 싶기도 해서 한 카페에 들어갔다. 번쯔카페(本致咖啡). 인테리어가 예쁜 편이었다. 커피 맛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사진으로 보니 더티 커피를 마신건가..? 나쁘지 않았는데 지금 찾아보니 씨진두 점은 없어졌다. 쩐쟝 다른 곳으로 이전한 듯하다. 여기도 임대료가 비싸진 걸까?
씨진두에 오면 야경을 봐야 한다는 말에 기다려봤건만, 한여름이라 해가 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지. 출출한 배도 좀 채워 보자. 평점이 좋았던 식당 Miu Cafe로 들어갔다. IPA에 피자, 파스타까지 시켜 먹었는데 맛이 괜찮았다. 중국에서 먹는 이탈리안 치고 나쁘지 않았는데, 이 글을 쓰며 찾아보니 여기도 없어졌다. 아무래도 다시 씨진두에 가면 못 알아볼 것 같다.
밥을 먹고 나오니 드디어 해가 좀 져간다. 사람들도 점점 늘어난다. 낮엔 몰랐는데, 건물 지붕과 처마에 조명이 있었네. 해가 지자마자 조명이 켜져서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해 지는 시간에 슬슬 다시 위쪽으로 올라가 본다. 낮에 봐둔 명당자리에 벌써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어찌저찌 비집고 들어가 사진을 좀 찍어 봤다. 해가 아직 좀 덜 진 것 같아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하지만 복병은 인파가 아니라 모기였다. 사진 찍는 장소가 수풀인 데다 더운 날씨, 땀 냄새 나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그야말로 모기의 천국! 사진 찍는 사이에 몇 방 물린 것 같다. 항복, 항복! 내려간다, 내려가.
내려오는 길에 해가 완전히 저물어 조명이 더 빛을 발한다. 건물 너머 달이 보여 같이 사진을 찍어 봤다.
작은 도시라고 생각했던 쩐쟝에도, 핫플레이스는 있었다. 다만 이 풍경을 보면서 떠오르는 중국 다른 도시들이 많았을 뿐. 다녀온 뒤 쓴 일기에 '제 2, 제 3의 신톈디'라고 적어놨는데, 아마 닝보에서 그랬던 것처럼 여기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아서였겠지? 그래도 닝보 라오와이탄보단 여기가 더 좋았다. 한국의 낙산공원, 베이징의 경산공원을 좋아하는데, 그곳들처럼 위에서 쓰윽 내려다볼 수 있는 풍경이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나저나 가봤던 식당, 카페가 다 없어졌으니 지금의 씨진두는 완전 다른 모습일 것 같네. 그땐 핫플레이스였어도 지금은 아닐지도 모른다. 이렇게 쩐쟝에서의 첫날이 지나간다.
[쩐쟝 1일차 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