쩐쟝(镇江) 지역연구 2일차 (1)
모기에게 뜯기고 야경을 쟁취한 첫날이 지나고, 둘째날 아침이 밝았다. 오늘의 첫 일정은 동오(东吴)와 관련이 있는 베이꾸샨(北固山). '북으로는 장강에 임하고, 산세가 험하다(北临长江,形势险固)'라는 의미로 북고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이곳은 쩐쟝에 있는 세 곳의 산 중 가장 험준하다고 하는 산이다. 그래봤자 해발 55m 정도밖에 안 되지만.
입구에서 표를 사려는데, 매표소에 적힌 "표준어로 말해주세요(请讲普通话)"라는 표지가 눈에 띈다. 지금까지 다녀본 곳에서 한 번도 이런 표지를 마주친 적이 없는데. 방언이 심한 광동이나 후난 같은 곳도 아니고 쟝쑤성에서 이런 표지를 마주칠 줄은. 내가 배운 중국어는 표준어라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
입장권에는 양무제가 이곳을 '천하제일강산(天下第一江山)'이라 칭했다 하여 그 문구가 적혀 있는데, 그 옆에 조그맣게 시구 같은 것이 보인다. '어디서 신주를 볼 수 있는가, 눈에 가득한 풍광은 북고루다(何处望神州,满眼风光北固楼)'라고 하는 남송 문인 신기질(辛弃疾)의 작품이다. 이곳 베이꾸샨에 있는 북고루에서 지은 작품이라 표에도 적어둔 듯하다. 입장권은 30 위안이었다.
입구를 통해 들어가면 유비와 손권의 시검석(试剑石) 전설을 뜻하는 석상과 실제 시검석을 볼 수 있다. 유비와 손권이 혼인 동맹을 맺고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각자 자신의 천하 재패의 열망을 담아 검으로 돌을 쳤는데 갈라져서 둘 다 속으로 몹시 기뻐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실제로는 그냥 지형적인 이유로 만들어진 돌이라고 하는데, 전설은 전설일 뿐이니. 일단 이 시검석 석상에서부터 이곳의 동오 향기가 진하게 느껴진다.
동오의 성벽을 따라 나있는 동오고도(东吴古道)를 쭉 걸어서 가면, 철탑이 하나 나온다. 중국에 현존하는 6개 철탑 중 하나라는데, 당나라 때 한 관리가 당 목종의 명복을 빌며 만든 탑이라고 한다. 철탑이라는 게 부식되기가 워낙 쉬운 재료로 만들어진 터라, 지금 볼 수 있는 탑은 원본은 당연히(?) 아니고, 1, 2층은 송대에, 3, 4층은 명나라 때 복원된 작품이라고 한다. 그렇다 해도 꽤 오래 보존된 듯하다.
철탑을 지나 돌로 된 장랑을 걸으면, 석각이 하나 나온다. 앞서 언급한 '천하제일강산' 문구가 적혀있다. 남북조 시대에 양무제가 이곳에서 풍경을 보고 기분이 좋아 이 글씨를 썼다는데, 이 글씨는 현재 없고(!), 남송에 이르러 이곳의 관리이자 유명한 서예가였던 오거(吴据)가 그 글씨를 다시 써서 붙였다 한다. 그런데 그가 돌에 쓰진 않았고(!), 청나라 때 한 관리가 그의 글씨를 그대로 돌에다 새겼다고. 결국 지금 보이는 건 청나라 때 만들어진 석각인 셈이다.
양무제가 바로 이곳 북고루(北固楼)에서 풍경을 보고 '천하제일강산'이라 했다 하여 나도 한 번 올라가서 그 풍경을 보고 호연지기를 느껴보고자 하였으나, 닝보 때부터 나를 괴롭힌 강남의 흐린 날씨 덕분에 안개 자욱한 장강의 풍경만 보고 내려와야 했다. 그래도 파노라마로 찍어보니 나쁘지 않네. 날씨가 좋고 공기도 좋으면 정말 호연지기 느껴질 것 같다.
다시 또 돌계단을 쭉 오르면, 산의 거의 꼭대기쯤 감로사(甘露寺)가 있다. 동오 때 만들어진 절이다. 손권 여동생이 여기서 유비와 결혼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규모가 꽤 큰 절이어서 당시 승려만 500명이 넘었고, 청나라 때도 강희제, 건륭제가 여기에 행궁을 뒀다고 한다. 진샨의 경우 '절이 산을 싸고 있다(金山寺裹山)'라고 표현한다는데, 이곳 베이꾸샨의 경우 '절이 산을 누른다(以寺镇山)'고 표현한다고 할 만큼 산의 높은 곳에 절이 웅장하게 서있는 형태다. 절 근처에 손 씨 부인이 유비의 죽음을 알고 절망하여 장강에 뛰어들었다는 제강정(祭江亭)이 있는데, 사진으로는 안 남긴 것 같다. 유비와 손권의 혼인 동맹 이야기와 관련된 장소다.
꼭대기에서 내려오는 길에 뜬금없이 중산 기념림을 만났다. 베이꾸샨에서 삼국시대 유물이 아닌 것을 맞닥뜨린 건 처음이라 신기해서 찾아보니, 쩐쟝이 중화민국 시절 쟝쑤성의 성도였단다. 1930년, 그러니까 중화민국 시절, 당시 쟝쑤성 조림운동위원회(造林运动委员会)가 손중산 서거 5주년을 기념하는 뜻에서 성도인 쩐쟝에 나무 심기를 하고 여기에 기념림을 조성하고 탑도 만들었다고. 당시 만든 탑은 전란에 불타고 (또 전란이냐!) 1985년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만들어졌다고 한다. 중화민국 때 성도였다니, 보아하니 손권만 쩐쟝을 아낀 것은 아닌 모양이다.
조금 더 내려오면 동오의 책사 노숙(鲁肃)과 장수 태사자(太史慈)의 묘가 나온다. 노숙의 묘는 중국에 세 군데나 있는데 (岳阳,武汉,镇江), 쩐쟝의 묘는 본래 의관묘이고, 전란에 없어져서 근대에 들어 다시 만든 것이라고 한다. 태사자의 묘의 경우 산사태로 매몰되었다가 1985년에 다시 만들어졌다고. 노숙과 태사자가 나오니 왜 삼국지 팬들이 이곳에 많이 방문하는지 알만도 하다.
베이꾸샨, 그리고 쩐쟝은 천하를 재패하고 싶었던 손권의 꿈이 담긴 곳이다. 쩐쟝은 옛날에 경구(京口)라 불렸는데, 적벽대전 바로 전에 전투 지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손권이 쑤저우에서 쩐쟝으로 수도를 옮긴 바 있고, 바로 이곳에서 여동생을 유비와 정략결혼시켜 혼인 동맹을 맺기도 했으니 말이다. 비록 그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베이꾸샨에 있는 동안 그의 흔적을 엿보며 이것저것 공부해 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자, 이제 삼산의 마지막 산을 보러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