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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남자 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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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병준 Apr 18. 2017

혼밥하는 남자

#추어탕

혼밥이란 단어가 이렇게 흔한 단어가 될 것이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혼자 밥 먹는 것을 보면 불쌍하다고 생각했고 가끔은 이상하게 쳐다보기도 했다.     


2011년, 그러니까 6년 전에 서울로 갓 상경해서 대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그러나 요즘은 학교 주변은 혼자 밥 먹는 사람으로 넘쳐난다. 학교 근처에 있는 맥도날드만 봐도 매우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왜 그렇게 되었는지 또는 어떻게 분석해야 하는지 같은 것들은 쓰진 않겠다. 그런 것들은 이미 뉴스만 찾아봐도 엄청 많이 나와 있다. 그냥 난 얼마 전 혼자 추어탕을 먹으러 갔을 뿐이었다. 



내가 사는 집 근처에는 굉장히 맛있는 추어탕을 파는 곳이 있다. 벌써 이곳의 단골이 되었는지도 2년 정도 된 것 같다. 친구나 가족과 온 일도 제법 있지만 그래도 혼자 가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오늘도 혼자 밥을 먹으러 갔다. 익숙해서인지 주인분이 알아보았다. 낯선 경험이었다. 혼자 밥을 먹으러 갔는데 누군가가 반겨주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으니까.     


우리 가게에 자주 오는 손님은 많은데, 그중에서 가장 젊은 사람인 것 같네요. 호호.

주인분이 웃으면서 이야기해주었는데, 생각해보니 정말 갈 때마다 주변을 보면 내가 가장 젊은 편이긴 했다. 하긴 추어탕을 먹으러 오는 20대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었다. 게다가 혼자 자주 가다 보니 더 눈에 띄었을 것이었다. 자주 오는 손님이 되었던 이유는 우선 이곳의 추어탕이 맛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어느 식당이든지 혼자 식당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몇 명이 왔냐고 물어본다. 혼자 왔으니 당연히 ‘혼자 왔겠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혼자라고 대답한다. 자주 가는 식당 같으면 상관없지만 처음 가는 식당이면 그때부터 알 수 없는 신경전이 시작된다. 난 눈빛으로 ‘혼자여도 먹을 수 있나요?’라고 조심스레 물어본다. 그러면 그 아르바이트생(또는 주인장)은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한다.     


A: ‘그냥 아무 데나 앉으시면 돼요.’ 거나 ‘저기 2인석에 앉으시면 돼요.’    

 

이게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그래도 허락의 의미이긴 하니까. 가끔 퉁명스럽게 얘기할 때도 있긴 하다. 그럴 땐 그냥 먹을 음식 생각하면 속 편하다. 괜히 그런 것에 의미 부여해봤자 밥맛만 상한다.     


B: ‘평상시엔 되는데, 죄송하지만 지금은 손님이 많아서 안 될 것 같네요.’     


이건 매우 나쁜 편. 평상시엔 되는데 지금은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안 될 것이다. 유사한 것으로는 ‘점심은 되는데 저녁은 안 돼요.’ 같은 것도 있다. 그래도 어떻게든 배려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해보려고 노력한다.

  

C: ‘한 명은 안 돼요.’     


정말 가끔 듣는 이야기지만 정말 있긴 있다. 특히 제주도에서 엄청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분명 밖에는 식사 가능이라고 쓰여 있는데, 가능하지가 않다. 혼자 먹는 밥은 식사도 아닌 건지. 2인부터 가능한 곳들이 정말 많았다. 딱 저 얘기를 들으면 잠시 배고픈 것을 잊어버리곤 했다. 배고플 때 밥맛을 잃고 싶다면 저 말을 들으면 가장 간편할지도.     



자주 가는 이 추어탕 집은 눈치 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주인에겐 그냥 온 손님 중 한 명일 뿐이었다. 맘 편히 식사할 수 있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오늘도 역시 정확한 시간에 추어탕을 주었고 반찬도 혼자 왔다고 차별해서 주거나 하지 않았다. 그냥 적당히 퍼먹을 만큼 정량을 담아 주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면서도 이 당연한 일에도 난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혼자 먹어도 눈치 주는 사람이 없다. 주변에선 그냥 ‘정말 추어탕을 좋아하나 보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오히려 난 편한 일이다. 굳이 커플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까. 식당도 제법 큰 편이어서 자리 걱정하며 먹지 않아도 됐다. 혼자 먹을 때는 좁은 곳을 갈 것 같지만, 전혀 몰라서 하는 소리다.      


얼마 전 늦은 시간에 돈부리를 파는 작은 식당에 간 적이 있다. 자리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6명이 먹을 것 같은 식탁에 앉게 되었다. 앉으면서도 굉장히 눈치가 보였는데 손님은 자꾸 들어왔고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주인장의 시선은 두말할 것도 없다. 결국, 속에 얹힐 듯이 대충 먹고 계산을 했다. 가장 기분 나쁜 사실은 음식이 맛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맛이라도 있었으면 다행이었을 텐데…….



여러 생각을 하며 추어탕을 다 먹고 나니 또 한 끼를 해결했구나 하는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혼밥하는 남자, 여자 다 같겠지 싶다. 혼자 밥먹는 일이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같이 먹는다고 꼭 즐거운 일도 아니긴 하지 않나. 그냥 밥을 먹는 일이고 한 끼를 해결하는 일이다. 식사를 하다 우연히 혼밥 하는 남자를 본다면 부디 의미를 부여하지 말기를. 


그냥 배가 고파 한 끼를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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