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괜찮았던, 메신저와 메일을 멀리한 일주일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진한 지침이 찾아왔던 그때, 도저히 안되겠다 싶은 생각에 일주일의 휴가를 요청했었더랬다. 그리고 그 휴가에서 돌아온게 벌써 2주 전.
이전까지는 하루 휴가를 쓰던, 반차를 쓰던, 팀원들에게 항상 했던 말이 있다.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요. 조금 늦더라도 확인하고 답변 드릴께요"
그리고 모든 문의에 답변했고, 필요한 디렉션을 주고 타 부서와 급한 업무도 처리했다. 애초에 휴가 냈던 이유인 개인 용무와 일이 뒤섞여 이도 저도 아닌 시간이 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번 휴가에는 메신저의 알람을 아예 꺼버렸다. 메일도 읽지 않았다. 팀원들 근태 승인할 것이 있어서 시스템에 한번 접속하긴 했었으나 그 외에는 일체의 연결을 차단했다.
초반에 불안감이 든 것도 사실이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자 점점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나를 지침의 정점으로 몰아넣었던 참 맘이 안 가던 프로젝트도 어차피 마무리 단계였기에, 오랫만에 쉼표다운 쉼표를 찍을 수 있는 적절한 시기였던 것도 도움이 되었다.
처음으로 별 계획을 세우지 않았던 휴가였다. 시간이 날 때마다 내가 주로 하는 것들 (미뤄놨던 집안일 처리, 각종 집안 정리, 아이들과 어딜 가거나 체험하는 등의 일정, 정기 검진 등 병원 방문) 도 이번엔 모두 제외해 버렸다. 한번 계획을 하게 되면, 시간표대로 또 꽉꽉 채우는 습성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혼자서 바람쐬고 오는 일정이 있었으나, 숙소와 차편만 잡아놓고 여행지에서 뭘 할 계획도 아예 배재해 버렸다.
대신 이런 것들을 했다. 첫째 유치원 등원시킬때 보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배웅해 주기, 하원 할 때 마중 나가기, 하원 하자마자 놀이터에서 놀고 싶어하는 첫째를 마음껏 놀게 하고 그 모습을 지켜봐주기, 첫째 유치원 친구들 엄마들과 두런두런 얘기하기. 첫째와 둘째 간식 먹이기. 집에서 함께 놀이하기.
그리고, 혼자만의 여행에서는 이런 것들을 했다.
숙소 부근 카페에서 하염 없이 앉아 책 보기. 바닷길 산책하기. 암 생각 없이 파도 보기. 방에서 영화 보기. 음악 틀어놓고 바깥을 내다보며 차 한잔을 천천히 마시기. 동네 슈퍼에서 버섯 한봉지 사서 볶은 다음 대충 저녁 때우기..
낯선 경험이었지만, 모처럼 가슴이 답답하지 않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도망치듯이 성급하게 쉼표를 찍었는데, 생각보다 잘 찍은 쉼표였다. 마음이 평화로웠고, 무엇보다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물음은 있다. 이 일주일이 지쳐있는 나를 나아지게 할 수 있을까 ? 라는 물음.
복귀해서 일상을 맞은 2주차, 그 물음에 자신있게 예스라고 하진 못하겠다. 하지만, 잠시 그 속에서 벗어나 나를 지치게 하던 그 환경과 일부러 단절시켰던 그 시간은 분명히 가치가 있던 것 같다. 띄어쓰기 없이 숨가쁘게 이어지던 문장에 '쉼표'를 한번 찍은 느낌이랄까. 그 뒤에 바쁘게 다시 문장이 이어지긴 하겠지만, 아예 없던 것보단 낫지 않겠나. 어쨌든 난 그 덕택에 적어도 두달치의 동력은 얻은 느낌이다. 내가 이리 단순하다.
다음번 쉼표도, 이렇게 제대로 찍어봐야겠다. 생각보다..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