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회사에 조금 적응했다고 말할 수 있어
작년 개발자 취준생에서 기획자로 넘어오게 되었다. 출근 첫날, 적응의 기간을 줄 거라 기대했지만 중소기업답게 첫 출근 당일에 현재 기획하고 있는 앱에 대한 파악하라는 업무가 주어졌다. 첫 출근 날부터 이래야 하나 싶었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빠르게 일에 익숙해지는 것이 빠른 적응을 위한 길이었다. 괜히 일없이 시간 때우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일을 지시받은 것이 금요일로 첫 출근이었고 월요일에 사수와 질의응답 시간을 잡게 되었는데 이 말을 즉슨 신성한 주말에 회사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음속으로 힘겹게 '그래, 오히려 좋아'를 외쳤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SI/SM으로 다른 회사에서 의뢰를 받아 웹앱 서비스를 기획/개발하고 운영까지 하는 회사다. 앱 프로모션까지 기획하니 꽤 넓은 범위를 커버하고 있는 샘이었다. 여기 오기 전 회사 포트폴리오에는 이것저것 다 적혀있어서 바쁘긴 하겠지만 이것저것 다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과 한편으로는 좀 전문성이 떨어져 보였고 일이 너무 많지는 않을까 싶었다. 그렇지만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큰 클라이언트와 여럿 긴 시간 동행을 하고 면접에서도 이야기가 잘되어서 회사를 믿어보기로 했다.
내가 맡은 브랜드는 기존에 서비스 중인 앱이 있지만 리뉴얼을 의뢰 했다. 내가 투입되었을 때는 이미 디자인 작업을 마치고 개발도 60% 정도 진행된 상태였다. 기획은 따로 문서 작업 대신 피그마 안에서 해결하였다. 실상 요즘 IA, Flow Chart, 기능 정의서, 와이어 프레임 등의 문서가 피그마 안으로 들어간 듯했다. 개발 공부할 때 개별 프로젝트하고 테오의 스프린트에서 써보았는데 이 경험들을 한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1달을 사수에게 멍청한 질문들과 몇몇 미기획 포인트를 찌르는 질문들을 하며 앱에 대한 파악을 마쳤다. 다행스럽게도, 사수는 서비스 기획자로서 신입인 나의 이야기도 신경 써서 들어주었다.
2~3주 간은 사실 일 보다는 이 공간에 익숙해지는 일이 급선무였다. 내 눈앞에는 개발자 부서가 있는데 저기가 원래 내 자리였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 생각도 한 시였고 이제는 그 생각까지는 들지는 않지만 개발 공부 해놓은 것이 아깝기도 하고 더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맹목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내가 배운 개발 지식이 기획에서 전혀 안 쓰이는 것은 아니었다. 개발 지식 혹은 개발자들의 마인드셋은 흔히 회사에서 말하는 커뮤니케이션에서 은연중에 많이 쓰이게 된다. 개발자들하고 많은 개발 용어를 섞어 쓰거나 깊이 있는 개발 지식에 대해 담론을 나누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개발자들이 왜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지 나 스스로 편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일한 기간이 짧지만, 이 차이가 생각 이상으로 크다고 느끼고 있다. 만약 내가 개발을 몰랐다면 적응이 어려웠을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를 들자면 개발 지식은 하나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기획자가 개발의 언어를 몰라도 우리는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몸짓 발짓을 섞어 바디랭귀지를 통해서 우리는 외국인하고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매번 이렇게 의사소통 한다면 불편함이 크고 미스커뮤니케이션이 많이 일어날 것이다. 만약 기획자가 개발의 언어를 혹은 개발자의 마인드셋을 안다는 것은 하나의 외국어 그리고 그 나라의 관습을 아는 것이기에 훨씬 수월하게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개발자와의 신뢰 자산도 역시 쉽게 쌓을 수 있다. 나의 수준은 기획자로서 개발 지식은 필요 이상 쌓은 것 같고 개발자가 되기엔 부족한 지식이라 애매한 포지션이다.
그리고 기획자는 3인 4각을 해야 하는데 나머지 한 명이 디자인 팀이다. 보통 기획은 디자인이랑 더 친하고 개발이 안 친하다는 편견이 있는데 난 오히려 디자인팀하고 뭔가 이야기하기 어려웠다. 개발은 대략 뭐 이렇게 저렇게 하면 큰 공수 안 들이는 일이라 뭐 말해도 되겠다는 계산이 되고 보다 개발자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이 가능한데 디자인은 감각의 영역이기도 하고 뭔가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를 근거를 들어가며 이야기하는데 정말 일처럼 느껴졌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디자인하는 사람들은 본인의 스타일이 있고 곤조?가 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는 부분도 있었다. 아직까지는 큰 일없이 지나가지만 채 2달이 안되었음에도 조금 언짢은 마음이 생기고 있다.
내가 먼저 사수에게 가장 궁금했던 것은 일의 프로세스였다. 이 부분은 회사마다 비슷비슷할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우리 회사의 경우 사수와 내가 기획 방향을 정하고 디자인팀과 협의를 거쳐 실제 뷰 화면이 나오면 개발에게 전달하는 식이다. 이게 전형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굳이 디자인팀을 거칠 필요가 없는 것은 바로 개발이랑 이야기하여 수정하기도 한다. 반대로 개발에서 개발을 하다가 혹은 디자이너가 시안을 만들다가 의견을 전달하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일을 익히고 앱 기획 이 외에 와이어 프레임 문서 2개를 받아 작업하고 있다. 하나는 앱이고 다른 하나는 관리자 페이지이다. 지금은 PPT로 작업하지만 추후 피그마로 옮겨가자고 최근 결정되어 나는 요즘 피그마를 주말에 따로 공부하고 있다. 사실 피그마를 잘 익혀두면 훨씬 편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PPT가 훨씬 다채로운 기능을 제공하고 있지만 협업과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생각하면 피그마로 옮겨가는 것도 좋은 안이라고 생각된다. 피그마를 지금의 개발 수준처럼 필요 이상으로 익혀서 간단한 디자인 작업은 내 손을 처리해보고 싶고 와이어 프레임을 짤 때 보다 세밀한 표현을 나타내는 것이 현재의 나의 목표이다. 최근에 유튜브 콘텐츠에서는 피그마로 반응형 작업과 애니메이션 연출이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기에 더욱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장비를 이야기하고 싶은데 회사에서 맥을 줘서 쓰는데 초반에 너무 불편했고 지금도 불편한 상태다. 하지만, 조금 몇몇 부분에 적응했는데 집은 윈도우라 이제는 집 컴퓨터도 불편해졌다. 특히 캡락키로 한영을 바꾸는 것은 가끔 화가 난다. 그냥 윈도우만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