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를 분석하는 업무를 하기 전에, 내가 가지고 있었던 데이터의 활용 이란 인공지능을 사용하거나 아니면 엄청 멋진 무언가를 하여 신기한 인사이트를 찾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물론 어느 정도 맞는 말 이기는 하지만, 지금 와서 느끼기에 이것은 굉장한 착각이었다. 지금에 와서 "빅 데이터" 같은 마케팅 단어들과 함께 새로이 각광받게 되었지만, 데이터를 분석한다는 것은 어느 시대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데이터를 분석하는 업무를 하다 보면, 많은 업무가 아래의 카테고리에 속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1. 풀려는 문제가 무엇인지 정의한다
2. 어떻게 풀 수 있을지 고민한다
3. 알맞은 데이터가 있는지 검증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1번과 2번이다. 풀려는 문제의 데이터 존재 유무는 내가 어쩔 수 없지만, 무엇이 정말로 가치 있는 문제이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작은 단위로 나누고, 이 문제들을 어떻게 잘 풀어야 하는지는 오로지 데이터를 분석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데이터가 아니라,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렬하고 상상할 수 있는 공간과, 그 생각들을 써내려 가며 정리할 수 있는 도구이다. 즉, 우리에게는 새하얀 종이와 검은 연필이 필요하다
데이터 분석은 단순히 분석만 하면 될까?
사실 위에서 말한 "문제를 상상하고 고민하는 것"에 오로지 집중을 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질 수 있는 경우가 별로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분석을 잘하기 위해서 평소에 해야 하는 업무들이 굉장히 많기 때문이다. 분석을 하기 위한 유저 행동 기록도 QA(quanlity assurance) 해야 하고, 유저 행동을 상시적으로 트랙킹 할 수 있는 모니터링 대시보드도 만들어야 하고, 분석을 시작하기 위한 서비스 유저 페르소나도 만들고, 분석하기 전에 어떤 유의해야 할 부분들이 있는지 기록도 해야 하고, 분석에 필요한 시스템 또한 구상을 해야 한다. 문제는 데이터 분석 관련 직군들이 없거나 한 두 명 밖이 없기 때문에, 많은 경우 누군가 이 업무들을 전부다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필수적이고 다양한,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귀찮은 업무들을 빠르게 처리해 나아가면서, 자신의 커리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들을 하려면, 이런 업무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업무 매뉴얼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기획자가 새로운 유저 행동 기록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새로운 유저 행동 기록을 어떤 형식으로 만들어야 하는지 나와 있는 문서가 있을 때랑 없을 때란 소요되는 시간과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곱절로 차이가 난다. 또한, 명시적이고 기록으로 남는 데이터 관련 업무 프로세스가 있을 때, 데이터 분석가 또한 구구절절 매번 모든 것을 설명할 필요도 없어지고, 또한 업무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스템 및 매뉴얼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이것이 가장 어려우면서 요번 글의 핵심이다
보통의 경우, 매뉴얼 없이 1달 정도 일을 해보면, "회사는 이런 이런 게 문제야!"라는 마음이 들면서, 동시에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 나아가야 할지 안개 낀 듯이 모호하다. 이러한 모호한 문제들이 어떤 부분에서 생기고, 또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보려면 일단 아래와 같은 것이 필요하다
종이
연필
그리고 시간
위의 두 가지가 준비되어 있다면, 종이 위에 그동안 업무를 해오던 방식을 그림 형태, 혹은 짤막한 글로 써보자. 그러면, 얼추 어떤 일들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게 된다. 많은 경우, 이렇게 머릿속에 모호하게 있던 것들을 글이나 그림 형태로 적어 내려갈 때, 전혀 생각지 못했던 많은 것을 거시적 관점에서 볼 수 있다.
글이나 그림으로 기존 업무 방식을 대략적으로 정리하였다면 각 업무 단계에서 어떤 예상치 못했던 추가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어떤 문제들이 이전에 발생했는지 옆에다 짤막하게 써 보도록 하자. 그러면 대부분의 경우, 해당 프로세스 단계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들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언제 어떤 것을 어떤 방향으로 진행해야 하는지 명식적인 문서와 업무 방식이 있다면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프로세스의 흐름과, 각 단계에서의 문제를 적다 보면, 어떤 부분에서 매뉴얼, 즉 업무 시스템이 필요한지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것을 기반으로 해당 단계를 책임지는 사람이 알아야 할 사항들, 그리고 그다음 단계의 사람에게 알려 주어야 하는 결정 사항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전해주어야 하는지를 문서로 적으면, 그것이 바로 매뉴얼이 된다.
이렇게 정리한 업무 프로세스는, 데이터를 분석하는 사람이 정말로 중요한 업무에 시간과 자원, 그리고 상상력을 투자할 수 있도록 돕는다
결국, 데이터를 분석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데이터를 분석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당연히 데이터이다. 데이터가 없다면 우리는 그 무엇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이터가 존재한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결국 문제를 찾고, 또 푸는 사람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문제를 상상하고 실행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공간이 필요하다면, 책상 위에 새하얀 종이와 검은 연필을 가지고 무언가 적어 내려 가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