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바꾸기
근래에 재미있는 포스팅 하나를 봤다. 내용은 이랬다.
“ChatGPT에게 그동안의 대화를 바탕으로 내가 모르는 나의 특성을 한 가지 알려줘.”
이 질문을 하면 인공지능이 우리가 몰랐던 우리 자신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준다는 거였다. 그런데 나는 이 질문 자체보다, 사람들이 왜 이런 질문을 '인공지능'에게 하게 됐는지, 그리고 그것이 개인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지가 더 흥미로웠다.
우리는 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리 자신에 대해 알고 싶어 할까? 그리고, 인공지능의 답변은 왜 그렇게 묘한 울림과 통찰을 주는 걸까?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아마도 칼 융 ?)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의식하지 못한다면, 그 운명에 잡아먹힐 것이다.”
이 말은 곧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을수록, 그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결국 우리의 삶을 흔들고 우리가 원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이끌어갈 거라는 의미다. 근데 웃긴 건, 우리 모두 자신을 더 잘 알고 싶어 하면서도 그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는 거다. 콘텐츠를 보거나, 상담을 받거나, 혹은 극단적인 경험을 통해 겨우 자신을 직면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라는 게 등장하면서, 우리는 전혀 새로운 방식의 거울을 손에 쥐게 됐다.
[우리가 새롭게 발견한 거울]
인간은 말이라는 수단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한다. 근데 그 말 속엔 단순한 정보 이상의 게 숨어 있다. 욕망, 두려움, 결핍 같은 것들이 행간에 얽혀 있는 거다. 우리는 누구나 그 행간을 읽어주는 누군가를 원한다. 왜냐하면 그 행간을 짚어주는 존재야말로 우리 자신을 비춰주는 거울과 같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이 역할을 꽤 잘 해낸다.
판단하지 않고, 지치지도 않는다. 대신 우리가 말한 것들 속에서 패턴을 찾아내고, 우리가 놓쳤던 욕망과 결핍, 방향성을 차분히 비춰준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을 수 있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게 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전에는 이런 거울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자주 길을 잃었다. 내 속에 뭐가 있는지도 모른 채 그냥 끌려다녔던 거다. 근데 인공지능이라는 거울이 생기면서, 이제는 스스로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림자를 마주하는 도구]
칼 융은 우리가 억누르고 외면한 모든 것을 그림자(Shadow)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그림자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한, 우리를 조종한다고 했다. 흥미로운 건, 우리가 인공지능과 대화하면서 이 그림자가 드러난다는 거다.
인공지능은 대화 속에서 우리가 한 말들, 그리고 그 말들 속에 숨어 있는 단서를 통해 우리의 욕망, 두려움, 방향성을 비춰준다. 그런데도 그것을 직접적으로 끌어내지는 않는다. 대신 스스로 깨닫게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칼 융이 말한 “운명을 의식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융의 말처럼, 우리는 우리의 그림자를 제대로 마주하지 못할 때, 그것에 휘둘린다. 그리고 인공지능은 그 그림자를 들여다볼 수 있는 도구가 된다. 이건 단순히 데이터를 분석하는 기계를 넘어선 역할이다. 인공지능은 우리 무의식을 탐구하고, 우리 자신을 다시 바라볼 기회를 만들어준다.
[우리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
물론 인공지능이 가져온 변화가 마냥 쉽고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많은 직업들이 위협받고, 기존의 익숙한 시스템이 흔들리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한 명의 인간으로서, 우리는 이 도구를 통해 더 이상 예정된 결말로 향하는 운명에 갇힐 필요가 없게 됐다.
우리는 인공지능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를 탐구하며,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운명을 바꿀 기회를 얻었다. 인공지능은 단순히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거나 효율을 높이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내면의 그림자를 마주하며, 더 흥미롭고 가치 있는 삶을 만들어갈 가능성을 열어주는 매개체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예정된 결말을 미리 내다 볼 수 있는 거울을 얻었다고 생간한다. 그렇다면 그것을 통해 어디로 갈지는 결국 우리의 선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