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회사일지

물류 DA의 연말 회고1 : 물류를 움직이는 사람들

by 여름비

이커머스 회사에서 물류 데이터 분석가로 일한 지 1년이 되었다. 나는 물류를 전공하지 않았다. 실제로 운영해본 적도 없다. 회계사가 재무제표를 뒤적이며 회사를 파악하듯, 나는 데이터를 지표 삼아 물류 시스템을 관찰하는 사람일 뿐이다.


이런 거리감을 가지고 1년간 본 것들을 적어본다.


월요일 아침

월요일 아침이면 물류팀은 분주하다. 품절 상품을 체크한다. 발주를 넣는다. 입고 스케줄이 엉크러지면 리드타임을 조정하느라 전화기에 불이 난다. 이런 일과를 끊임없이 처리하면서도 새로운 물류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이 하루하루 위로 수천 개의 물품이 매일 흘러들어오고 나간다.


프로모션이 시작되면 물량이 급증한다. 계절이 바뀌면 다루는 상품이 달라진다. 재무팀의 목표가 바뀌면 정책을 이리저리 수정한다. 이런 변화 속에서 물건들은 움직이다가 결국 고객에게 도착한다. 누구 한 명이라도 빠지면 쓰러질 듯한 시스템이 매일같이 작동한다. 경탄스럽다.


시스템 자체보다 더 놀라운 건 이를 설계하고 유지하는 사람들이다.


무거운 엑셀


물류 시스템을 관리하려면 끊임없이 상품을 추적하고, 분류하고, 이동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물류 운영자들은 상품 정보를 엑셀에 담는다. 연결하고 수정한다. 엑셀에는 한 명 한 명이 고민한 흔적이 수식이라는 형태로 남아 있다. 수식 하나에 정책 하나가 연결되어 있다. 손으로 적어 넣은 숫자 하나에 내일은 어떻게 될지에 대한 추측과 걱정이 담겨 있다.


그 숫자 하나가 실적이 된다. 또 책임이 된다. 자동화를 위해 기존 엑셀을 들여다보면 수많은 고민이 보인다. 그 고민이 깊고 다양할수록 엑셀도 무거워지고 복잡해진다.


품절


물류 운영자는 신이 아니다. 도박사에 가깝다. 내일 무엇이 얼마나 팔릴지 계산해서 배팅한다. 다만 포커와 달리 변수가 많다. 이 상품의 MOQ를 고려할 때 재고를 얼마나 준비해야 하나. 품절이 나면 고객들이 다시는 이 상품을 사지 않을까. 지금 입고 받을 캐파가 되나.


수많은 고민이 이 배팅에 손을 얹는다. 정책도, 실적도. 결국 어중간한 어딘가의 타협점에 도달한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조금 틀리더라도 실행하는 게 낫다. 그렇게 배팅한다.


하지만 타협점에 도달하면서 흘리고 간 것들이 있다. 그게 품절 손실 금액으로 다가올 때, 큰 벽처럼 느껴진다.


다시 월요일


월요일 아침, 지난주 품절 손실을 확인한다. 숫자가 크다. 다음 주에는 조금 다르게 배팅할 것이다. 완벽할 수는 없다. 다만 조금씩 개선한다. 1년이 지났다. 월요일은 여전히 분주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커머스 가상제고 도입 - 데이터로 분석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