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재 Mar 25. 2024

확장되고 얽히는 영화의 이름들

VIDEOFORMES Turbulences Vidéo #122

Turbulences Vidéo #122 에 글을 기고했습니다. 작년 안전한 신체의 확장Expansion of Entangled Bodies를 주제로 진행된 2023 네마프에 영화 두 편의 글을 썼는데요. 이들과 관련해 영화의 신체와 얽힌 몸체를 두고 느꼈던 바를 짧게 리뷰했습니다. 영어와 프랑스어로 비디오폼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본 사이트에 한국어판을 첨부합니다. 

I participated in Turbulences Vidéo #122. Here's a short review of 2023 Nemaf with my last two reviews and what I felt about the expanded and entangled cinematic bodies. You can find it on the Videformes website in English and French.


https://videoformes.com/magazine/ 

https://www.calameo.com/read/0000112773b715fabf61f (read online)


확장되고 얽히는 영화의 이름들 Expansion and Entangled bodies of the cinema


영화를 떠났지만 다시 영화와 만나는 것들. 대안영화, 확장영화, 비디오 아트 등 무수히 많은 이름들이 영화 주변부에 자리한다. 지난 여름에 열린 제23회 서울국제대안영화&미디어페스티벌(이하 네마프)은 “얽힌 몸의 확장”이라는 주제와 함께 다양한 작품을 영화관으로 불러냈다. 네마프가 지속적으로 개최되어온 23년이라는 시간은 숨겨진 작품을 발굴하여 관객에게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이는 단순히 외곽의 이름을 수용하는 것을 넘어서 그들을 위한 장을 확고히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자신을 일컫는 이름이 ‘영화’가 아닐지언정, 이러한 작업을 극장에서 만날 때 여러 뉴미디어 작품들은 블랙박스 안에서 집단 관람되는 일련의 영화적 형식을 갖추어 경험된다. 낯선 이름에 익숙한 건축적 성질이 덧대어지는 것이다. 극장에 붙박은 몸으로 스크린에 주목하는 여 분의 시간. 확장되고 얽히는 이름과 신체들 아래 어떤 새로운 상상력이 관객을 향하는가? 


한국 부문에 소개된 김익현의 <빛 속으로>와 다발 킴의 <헤르마프로디토스 돌기신화-드리밍클럽>(이하 드리밍 클럽) 두 작품은 이러한 건축적 형식 아래 상영되었다. 이들이 영상매체에 접근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지만, 관객에게 영화의 자장 안에서 작품의 가독성에 주의를 기울이기를 요청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빛 속으로>는 100년 전 기술 부족으로 기록되지 못했던 등대의 빛에 관한 기록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이어내며 그 사이에서 지금 여기와 그때의 이곳, 우연히 발견한 오래된 필름 사진 속 여행자의 시간, 이들 모두를 탐색하는 감독과 동료들의 시간을 다룬다. 각 시간대에 존재하는 이들의 시선은 스틸 이미지, 무빙 이미지, 캠코더, 파운드 푸티지 등 다양한 형식의 이미지로 혼합되어 있으며, 영화는 이렇게 여러 밀도로 응축된 시간성을 포함한 이미지를 자유롭게 활용하면서도 다시 한번 이들을 직진하는 하나의 기록으로 묶어낸다. 결국 하나의 선형적인 타임라인을 구성하는 것으로 만들어지지만, 자신을 ‘사진 프로젝션’으로 분류하는 영화 <빛 속으로>는 자신이 포함하는 이미지들이 영화적 질서를 이루기 이전에 우연적인 사건의 차원에서 나열되고 있음을 자처한다. 디제시스적으로 재구성된 것으로서의 영화가 말하는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전에 이미지 자체가 구축하는 의미의 세계, 각각의 형식이 각자의 언어로 말하는 자체적인 감각을 붙잡는 것이다. ‘프로젝션되는 사진’으로의 <빛 속으로>. 이미지들은 일시적으로 (혹은 임시적으로) 프로젝션되고, 이어지고, 다음 이미지를 보여준다. 몽타주 장치는 일시적 이미지의 배열로 환원되며, 그와 함께 <빛 속으로>는 영화 이전과 이후의 시간성을 포착한다. 


김익현의 영화가 다양한 미디어를 경유하여 영화 밖으로 빠져나온 시간을 프레임 안에 붙잡아둔다면, <드리밍 클럽>은 영화영상의 어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도 영화를 향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매체를 작가의 작업세계의 물리적 지반으로 이끌어낸다. 다발 킴은 자신이 구축해온 작업세계의 생태적인 요소들을 영상 안에 밀도 있게 보여준다. 의상의 과장된 조형적 요소가 인물들에게 신화적인 속성을 부여하며, 이들은 쇼트와 씬, 시퀀스 단위로 몽타주되어 프레임 위로 등장하는 인물들 각각이 다시 한번 하나의 세계 아래 함께 위치되도록 한다. 슬로우모션, 리와인드 등의 영상 이펙트는 서로에게 개입하는 인물의 움직임을 강조하는 동시에 영상의 리듬을 형성하는 중요한 특징이기도 하다. 헌데, <드리밍 클럽>의 긴장감은 작업에 차용한 요소들이 불러오는 서스펜스가 아니라 <드리밍 클럽>의 목적이 영화-되기를 향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나온다. 작품이 가진 형식과 효과는 영상의 구성적 틀을 위한 것 혹은 장식의 효과 자체를 목적으로 하며, 내러티브적으로 인물 간 관계 형성이나 퍼포먼스의 성질을 보조하지 않는다. 작가의 분류에 따라 <드리밍 클럽>을 ‘실험+퍼포먼스’라고 여길 때, 영상의 효과와 그 세계가 함께하는 방식이 더 명확하게 느껴진다. 다발 킴이 이전에 설치, 조각, 퍼포먼스 등으로 선보였던 작업 세계는 피사체로서의 역할을 수용하면서도 여전히 작가의 작업세계의 물리적 지반에 발을 붙이고 있는 것이다. 


형식의 역사와 지속적으로 출현하는 새로운 이름들. 영화 밖으로 빠져나오면서 동시에 들어오는 것들. 확장영화는 영화장치나 매체의 표준과 개념에 저항하는 측면에서 시작되었지만, 지금의 우리에게는 이 '대안적 어법'도 이미 체화된 것으로 지나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오늘의 시점에서 확장영화, 대안영화, 뉴미디어 아트 등의 다양한 이름들은 어떤 조건을 전제하며 대안을 품는가? 이들을 다시 한번 영화관에서 만나는 시간은 동굴 안의 시간에서 풀려난 이야기들이 어떤 확장성을 만들어내었는지를 느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시작과 끝, 정지 없는 상영, 의자에 고정된 몸과 함께 이들의 시간성은 새로운 영화적 경험으로 체득될 것이다. 회귀하는 영화적 시작을 건축하기. 이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한다.

작가의 이전글 플랫폼 팜파 비평 모음집 1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