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술종합학교신문 377호 기고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 News
서울의 지형도 Topolography of Seoul 정기연재
1 중앙에서 외곽까지 - 남산 힐튼과 유진맨션
서울의 풍경이 계속해서 갱신된다. 2020년대 서울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도시의 기반을 조성하고, 이를 개선 및 확장하며 성장을 이룬 기간은 한 가족의 3세대를 채 지나지 않는다. 단기간 빠르게 성장한 만큼 쉴 새 없는 변화가 도시를 메우고 비우기를 반복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도시 기반 시설의 조성과 보수에 중점을 두었던 1960-70년대를 거쳐, 1980-90년대에는 서울 시내의 부도심 지역 개발과 교통시설 정비 등으로 도시의 성장을 주도했다. 이러한 토대를 다지는 과정을 거쳐 21세기에는 도시에서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과제에 집중했으며, 서울 위로 새로운 현재와 미래에 대한 상상을 새겨넣으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5-60년에 걸쳐 발전해온 대한민국의 도시계획 프로젝트는 서울 도시의 지도를 종횡으로 확장했다. 그러나 한국이 이룬 성취와 관계없이 도시의 풍경은 멈추지 않는다. 서울은 재개발의 새로운 국면에 있어 다시 한번 변화의 지점에 서 있다. 오랜 거리와 동네, 구역들은 쉴 새 없이 들려오는 재개발 소식으로 사라지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할 계획 아래 있다. 도시의 생명력은 끊임없이 유동하고 재생하는 움직임을 필요로 하지만, 이러한 연쇄적인 변화가 가치의 보존과 변용의 문제를 품은 반복의 지속으로서 만들어지는 역사인지, 새로움 그 자체에만 의의를 두는 변화의 연속일지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2021년, 남산 힐튼호텔의 매각이 최종적으로 확정됐다. 1983년에 완공된 이 호텔은 건축가 김종성의 디자인으로 한국 건축의 1세대를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로 손꼽힌다. 2017년도부터 서울의 작고 큰 동네에 발을 들이며 이 도시가 어떤 곳인지를 이해하려 노력해온 본인으로서는, 힐튼호텔 매각 소식은 서울을 향한 하나의 이정표가 사라 지는 듯한 허전한 마음이 드는 소식이었다. 눈앞의 공간을 충분히 이해하기도 전에 곳곳의 풍경이 사라져가고 있다. 매각과 이후 이에 따른 건물의 행보가 결정되기 전 논의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이 애석하다. 도시는 머무름과 떠남이 반복되는 역사의 자리라고 하지만, 이들의 풍경으로부터 지나간 시간을 읽어내고자 할 때, 실제로 되짚어볼 수 있는 풍경은 미미하게 발견된다. 이미 사라진 것들이 너무 많고, 남아있는 것들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힐튼호텔의 매각 발표 이후에는 호텔의 보존, 활용, 그리고 한국 건축사에 있어 차지하는 위상을 주제로 한 심포지움이 열리기도 했으며, 건축가 김종성과의 대담이 이루어지는 등 이 소식을 단지 ‘이미 결정된 일’로 만들지 않기 위한 움직임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목소리들이 공식적인 소식 이후에야 들려오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한국의 건축 유산에 대해 시민들과의 소통이 부재함을 알려주는 반증이다. 한 건물의 위상을 인식하고 그 미래를 논하는 대화는 한 건물에 관한 대화로 완결되어서는 안 된다. 늦게나마 떠오르는 대화들을 개별의 건물에서 그 주변의 지역, 이를 포괄하는 여러 측면에서의 맥락과 연결지어 확장해볼 수 있어야 한다. 그제서야 ‘노후한 건물’에 대한 대처가 그 건물이 자리해 온 도시와 시간과 상호작용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힐튼호텔의 건축적 위상은 다양한 측면에서 논의되어왔다. 건축가 김종성이 자신의 작업들 중에서도 힐튼호텔이 가장 높은 완성도를 갖춘 작품이라고 언급한 만큼, 이 호텔은 심미적인 면은 물론이며, 당시에는 찾아보기 힘든 자 재의 사용과 설계를 비롯해 여러 면모에 있어 놀라움을 안겨주었을 건축물이었다. 호텔의 전면은 세 면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산을 마주보고 양옆으로 팔을 벌려 감싸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 특히, 호텔 부지의 경사면은 주 출입구에서 로비 라운지까지 펼쳐지는 공간에 심도를 더해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 호텔의 안뜰 격인 아트리움 공간은 입구에서 객실로 이어지는 동안 호텔 방문객들이 가지게 되는 첫인상을 좌우하게 되는 동선을 포함하는데, 힐튼의 수직 아트리움이 대지의 경사를 활용하여 확장된 시야를 제공하며, 공간과 사람들이 마주하는 첫 만남의 웅장함, 환대의 감각을 자극해 고객들이 공간에 자연스럽게 흡수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한, 호텔의 구조는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로비 라운지의 계단과 높은 수직공간의 확보로 연결된다. 건물이 마주하는 산등성이의 곡면은 힐튼호텔과 내외부적으로 호흡을 맞추며 조화를 이룬다. 김종성은 목천읍 문화재단에서 출판한 구술집에서 힐튼호텔이 ‘남산을 껴안는다’고 표현했다. 이러한 표현은 호텔의 구조와 형태가 호텔과 남산을 둘러싼 우아한 곡률로 나타나고 있음을 담고 있다. 그는 힐튼호텔이 달성한 완성도와 고집은 이 프로젝트가 기업자본을 기반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측면에 있음을 언급한 바 있다. 힐튼호텔은 대한민국의 경제개발 시기 중요한 변곡점에서 세워진 대형호텔로, 1970년대 중반에는 관광업이 국가 전략 산업으로 육성되어 해외 브랜드의 대형 호텔이 한국으로 유입되는 흐름에 따라 건설되었다. 실제로 힐튼호텔은 대한민국의 경제개발 시기의 중요한 변곡점에서 세워진 대형호텔로, 1970년대 중반에는 국가 전략 산업으로 육성된 관광업의 흐름에 따라 해외 브랜드의 대형호텔이 세계적인 자본의 흐름을 따라 한국에 들어왔다. 힐튼호텔은 이 중에서도 민간 자본의 축적으로 변화하는 한국 경제의 핵심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은 동시에 한국의 건축사가 일본의 영향에서 벗어나 미국 유학파 건축가들의 구성으로 재편되는 흐름과도 연결되며 당시 서울의 역동적인 모습을 반영한다. 뿐만 아니라, 힐튼호텔의 우아함이 자리한 서울의 중앙부는 건물과 남산이 미적 조화를 이루는 과제를 넘어서 교통의 중심지로서 서울 전체 및 수도권을 아우르는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 장소다. 한 건물의 탄생과 소멸은 그 주변 지역과의 상생과 필연적으로 연결된다. 도시의 흐름은 자본의 힘과 함께 변화하며, 사회, 정치, 경제, 문화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힐튼호텔 또한 앞으로의 변화에 있어 더욱더 큰 도시적 맥락을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시야를 조금 더 넓게 잡아보자. 서울의 중앙에서 외곽으로, 경계를 둘러본다. 건축과 그 주변의 상생관계가 서울역 상권의 흥망성쇠를 넘어 서울이라는 도시의 이야기로 확장된다면, 우리가 힐튼호텔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의 문제는 앞으로 한국이 상상하는 서울의 지형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힐튼호텔이 아닌, 그 주변의 풍경이 거쳐온 맥락을 짚어볼 필요도 있다. 6-70년대의 도시개발 계획은 서 울의 도심재개발을 위한 두 가지 수단으로 크게 나뉘었다. 도시의 입체화 그리고 고층화가 그것이다. 이 중 서울시 는 입체화를 앞서 추진하며 서울의 도시개발이 재개한 60년대 이래로 관광업의 부상과 함께 서울의 교통망을 정리 하는 사업이 대거 실행되었다. 육교와 지하도, 고가도로를 통해 도시의 확장을 꾀하는 시도가 생겨났으며, 도시설 계적 관점에서도 서울과 지역의 연결을 고려하여 지형을 설계하고자 했다. 그에 따라 서울 외곽에서 경계선을 연결 하는 고가도로, 내부를 횡단하는 순환도로가 구축되었다. 1970년 홍은동에 세워진 유진상가는 도로 개발이 한창이 던 1970년대의 흐름과 타협을 거치며 생명을 유지해온 건물이다. 그러나 지금의 유진상가는 10년가랑의 시간 동안 철거와 재개발 논의의 미궁에 빠져있는 노후한 건물로 재건축 논의 앞에서 건물이 담고 있는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적 가치가 뒤로 희미해져가는 아쉬움과 함께하고 있다. 한국 상가아파트의 초기 건물 중 하나인 유진상가는, 종로 세운상가와 낙원상가에 이어 나타난 주상복합 아파트 건물이다. 이는 홍제천을 끼고 홍은동과 홍제동의 경계 에 위치하며 지상부터 3층까지를 상가의 용도로, 그 위의 4-5층이 A동 B동 두 갈래로 나뉘어 주거의 용도로 구분 되어있다. 두 개의 동 사이에는 작은 놀이터와 폭이 16m에 달하는 넓은 중정이 있고, 33평에서 크게는 68평에 달하는 집을 찾을 수 있을만큼 당시의 상류층이 거주하던 고급 ‘맨션’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시간이 흐르며 유진상가 의 모습도, 용도도 많이 달라졌다. 한 차례 위기를 맞이한 뒤 반절의 생명력만으로 유지되어온 건물은 이제 오래된 옛 상가건물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도시 조경의 방해물 취급을 받으며 서대문구 지자체의 재건축 대상으로 끊임없이 언급되고 있다. 유진상가는 서울의 도시개발 계획이 실행되는 과정 중에 큰 타격을 입었다. 앞서 ‘타협을 거치며 생명을 유지’했다고 이야기했지만, 사실상 이는 서울시의 일방적인 무심함에 의한 피해에 가깝다. 홍제동에서 서울 중앙을 향하는 내부 순환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유진상가의 한 쪽 주거동을 허문 것이다. 1992년 내부 순환로 공사가 시작되면서 서울시는 B동 주민들에게 보상을 해주는 대가로 유진상가의 3-5층을 허물었고, 건물의 7m 바로 위에 고가도로가 건설되었다. 이후 안전과 소음의 문제와 관련해 유진상가에 입주하고자 하는 점포, 입주민들의 수는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건물을 공공시설로 전환하여 활성화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지금 유진상가의 상황을 보면 충분히 성공적이지 않았던 듯 보인다. 한편, 유진상가의 건축이 착공에 들어간 1969년에 ‘서울 요새화’ 계획이 선포되었다. 당시는 국내외적으로 박정희 정권에 대한 저항, 북한의 기습 및 침투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며 군사적·정치적 긴장이 팽배한 시기였다. 박정희 정권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방위 계획을 마련하고 군사력을 증진하는 등의 전략을 취했는데, 이때 안보를 위한 방편 중 하나로써 유진상가를 군사 시설물로 설계했다. 북한의 침투에 대비 하는 것이 안보의 중요한 이슈로 떠오른 시기에 유진상가는 북한군에 대해 수도권의 마지막 방어선이 될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만약 북한군의 남하가 계속되어 서울을 향한 마지막 산등성이인 구파발을 넘어 들어온다면, 유진상가는 아군의 군사 기지로 활용되는 동시에 북한군이 서울의 중앙으로 들어가기 전 이들을 막을 방어벽으로 기능할 수 있어야 했다. 이러한 이유로 유진상가는 전차가 들어올 수 있는 간격과 높이에 맞추어 필로티 기둥이 세워진 지상층을 설계했다. 유사시에는 기둥을 폭파해 건물 자체가 장벽으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군사적 기지로서의 활용 방식이 고려된 지점이다. 총격 대비를 위해 콘크리트 비율을 높게 잡아 만든 건물의 벽은 오늘날에도 한국 건축물들 중 손에 꼽는 견고함을 가지고 있다.
서울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방어선으로 자리잡았던 유진상가는 더는 서울을 지탱하기 위한 건물로 요청되지 않는 다. 서울의 발전을 향하기 위해 밀려나야 할 철거의 우선순위 대상이 되었다. 유진상가가 자신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마주하게 된 두 번째 위기를 고가도로와 유진상가의 충돌에 의한 것이라고 말할 수만은 없다. 지난 하나의 정책, 하나의 변화가 건축물의 일생에 있어 영향을 주었을 수는 있겠지만, 오직 한 가지의 이유가 결정적인 결과를 만들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과거가 현재에 자리를 내어주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한 흐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 나아가 한국이 추진하는 (재)개발 계획에서 과거와 현재가 조응하는 면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무언가 부수고, 치우고, 사라지게 만들며 계속해서 과거와 끊긴 계보만을 생성해내는 서울의 개발 경향은 유진상가가 입은 과거의 상처와 관련된다. 아파트 위에 들어선 내부 순환로는 유진상가가 주상복합 아파트로서의 쓸모를 다하지 못하게 하는 데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으며 현재에도 유진상가와 고가도로의 교차된 구조는 건물의 변화를 촉구하는데 여러 제약이 되는 요인이다. 유진상가의 한 쪽 면을 허물고 도로를 지나게 할 계획을 세울 당시, 이 건물이 포함하는 남북관계의 역사적 맥락을 고려했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앞을 향해 달려나가는 힘에는 종종 주변을 향한 무심함이 딸려 온다. 10년 가량의 시간차를 가지고 있는 유진상가와 힐튼호텔은 두 건축물 모두 건축물의 가치를 외면하고 자본의 역학관계에 더욱 주목하는 도심지 개발 전략에 의해 철거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유진상가는 사라지지 않았다. 홍제천의 복원, 서대문구 지역의 활성화, 북한산 자락을 따라 재개발이 예정되어있는 다른 지역과의 상호작용 … … 여러 요소들과 함께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인접 지역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유진상가를 두고 이루어지는 논의 또한 힐튼호텔과 마찬가지로 한 건물과 지역으로 완결될 대화여서는 안 될 것이 다. 매각 발표와 이후 제기된 여러 논의에도 불구하고 이들 건물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두 건물이 땅 위로 서서 지나온 시간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다. 힐튼호텔과 유진상가를 통해 드러나는 한국 건축사의 흐름, 경제적 변화, 남과 북 사이 안보의 기억, 도시공간과 정치의 역학관계 등 다양한 측면이 건축과 관련되어 이야기 될 수 있을 것이다. 부서지고 솟아오르는, 새롭게 태어나는 건축물의 풍경을 경유하여 서울 도시 안팍으로 운용되었던 힘 그리고 모든 풍경이 재편되기 전에 아직 남아있는 몇 가지의 것들을 살핀다. 이야기를 수면 위로 올린 이후에 다시 한번 재편의 방향성을 설정해도 늦지 않다. 혹은 더 늦어야만 한다. 자본의 힘이 건축의 속도를 정하게 두는 것이 아니라, 둘은 함께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http://news.karts.ac.kr/?p=11389
1고 2024.03.11
1.5고 2024.03.26
From the centre to the suburbs - Namsan Hilton and Yujin Mansion
The landscape of Seoul is constantly being revised. It takes less than three generations of a single family to have built, improved, expanded, and grown the city to where it is today in the 2020s. With this rapid growth in such a short period of time, constant change has filled and emptied the city. Following the 1960s and 70s, when the city focused on the creation and repair of urban infrastructure after the Korean War, the 1980s and 90s saw the city's growth driven by the development of inner-city areas and the improvement of transport facilities. In the 21st century, after the foundation has been laid, the focus has shifted to the task of improving the quality of life in the city while carving a new imagination of the present and future over Seoul. Over the past five to six decades, South Korea's urban planning projects have expanded Seoul's urban map lengthwise and widthwise. But regardless of its achievements, the city's landscape never stops changing. In a new phase of redevelopment, Seoul is once again at a point of change. Old streets, neighbourhoods, and districts are disappearing under a constant stream of redevelopment news and are being planned to be replaced by new ones. While the city's vitality requires constant flux and regenerative movement, it is important to consider whether this chains of change is a history of repetition, which involves the preservation and transformation of values, or just a continuous change that is new for its own sake.
In 2021, the sale of the Namsan Hilton Hotel has been officially confirmed. This is one of the most iconic buildings of the first generation of Korean architecture, designed by architect Kim Jong-sung and completed in 1983. As someone who has been exploring Seoul's small and large neighbourhoods since 2017, trying to understand what this city is all about, the announcement of the Hilton Hotel's sale comes with a hollow blow, like the loss of a milestone for Seoul. Everywhere you look, the landscape is disappearing before you can fully understand the space in front of you. It is a shame that there was no opportunity for discussion before the sale and subsequent fate of the building was decided. While the city is a site of histories of arrivals and departures, there are few things we can actually look back on when trying to read the past from their landscapes. There is too much that has already been lost and not enough discussion of what remains. Since the announcement of the Hilton's sale, there have been symposiums on the hotel's preservation, use, and place in Korean architectural history, as well as a dialogue with architect Kim Jong-sung, in an attempt to avoid making the news a "foregone conclusion." Since the announcement of the Hilton's sale, there have been symposiums on the hotel's preservation, use, and place in Korean architectural history, as well as a dialogue with architect Kim Jong-sung, in an attempt to avoid making the news a "foregone conclusion." However, the fact that these voices have only begun to be heard after the official news reveals a lack of communication with citizens about Korea's architectural heritage. A discussion about the status of a building and its future should not be complete just by addressing one building. We need to be able to extend these belatedly emerging discourses from the individual architecture to the neighbourhoods around it and the multifaceted context that encompasses it. Only then will the response to 'old buildings' be one that interacts with the city and time in which it has been situated.
The Architectural status of the Hilton Hotel has been discussed in many ways. Given that architect Kim Jong-sung described the Hilton as the most finished of his works, the hotel must have been a surprise in many ways, not only aesthetically, but also in its design and use of materials that were rare at the time. The three facades of the hotel face the Namsan Mountain and are shaped like an open-armed embrace on either side. In particular, the slope of the site adds depth to the space that extends from the main entrance to the lobby lounge. The hotel's courtyard-like atrium space encompasses the first impression guests have of the hotel as they move from the entrance to their rooms. This vertical atrium takes advantage of the slope of the site to provide expanded views and stimulate a sense of hospitality, the magnitude of the space and people's first encounter with each other, helping guests to integrate into the space. The hotel's structure is also connected by the flowing staircase in the lobby lounge and a high vertical space. This creates a harmonious relationship between the curvature of the hillside facing the building and the Hilton Hotel, both internally and externally. “The Hilton Hotel hugs Namsan Mountain”. According to Kim Jong-sung in an oral history published by the Mokcheon0eup Cultural Foundation, the phrase implies that the hotel’s structure and form that they are embodied in the graceful curves that surround the hotel and Namsan Mountain. He noted that the maturity and persistence that the Hilton Hotel achieved was in part due to the fact that the project was funded by corporate capital. The Hilton Hotel was built at a critical juncture in South Korea's economic development, as tourism was promoted as a national strategic industry in the mid-1970s and large hotels with international brands were brought into the country. The Hilton Hotel was built at an important inflection point in South Korea's economic development, as tourism was promoted as a national strategic industry in the mid-1970s, leading to the influx of large internationally branded hotels into the country and the movement of global capital. The Hilton is located at a key point in the Korean economy's transformation by the accumulation of private corporate capital. These contexts also coincide with a shift in Korean architectural history away from Japanese influence and towards the composition of US-based architects, reflecting the dynamic of Seoul at the time. Beyond the challenge of creating an athletic integration between the hotel and Namsan Mountain, the central part of Seoul, where the elegance of the Hilton Hotel is located, is also a transport hub that will serve as a focal point for the entire city and the capital region. The rise and fall of a building is inevitably linked to the coexistence of its neighbourhood. The flow of the city changes with the power of capital, and is inextricably linked to social, political, economic, and cultural issues. The Hilton Hotel must also consider the larger urban context in its forthcoming change.
Let's take a wider view. From the centre to the periphery of Seoul, exploring its boundaries. If we can extend the relationship between architecture and its surrounds beyond the rise and fall of Seoul Station's commercial district to the story of Seoul as a city, then the question of what meaning we attach to the Hilton Hotel can be seen as a reflection of how Korea envisions the city's shape in the future. We need to look beyond the Hilton Hotel to the context of the landscape around it. Plans for urban development in the sixties and seventies were largely divided into two means of redeveloping Seoul's city centre as an solidification and high-rise development. Of the two, the Seoul government pushed ahead with the solidification of the city, and a number of projects to organise Seoul's transport network have been implemented since the 60s, when Seoul resumed urban development, along with the rise of tourism. The city expanded through overpasses, underpasses, and elevated roads, and from an urban design perspective, the terrain was designed taking into account the connections between Seoul and the region. As a result, overpasses were built on the outskirts of Seoul to connect the city's borders and beltways to traverse the interior. Established in 1970 in Hongeun-dong, Yujin Sangga has kept itself alive through sompromise with the tides of the 1970s, when road development was in full swing. However, the Yujin Sangga is now an aging building that has been mired in demolition and redevelopment discussions for more than a decade, with the historical value of the building's modern and contemporary Korean history fading into the background in the face of reconstruction discussions. As one of the earliest commercial apartment buildings in Korea, Yujinsangga is a mixed-use apartment building that appeared after Jongno Sewoon Sangga and Nakwon Sangga. It is located on the border of Honggeun-dong and Hongje-dong, across the Hongje River. Its ground floor to the third floor is used for shops, and the fourth and fifth floors above are divided into two wings, A and B, for residential use. Between the two buildings is a small playground and a spacious 16-metre wide garden, and you can find houses ranging in size from 109㎡ to 225㎡, which were the conditions of luxury 'mansions' inhabited by the upper class of the time.
Over the years, Yujin Sangga has changed in appearance and use. After having faced one crisis after another, the building has been maintained with only half a life, and it is now nothing more than an old commercial building. Rather, it is treated as an eyesore in the urban landscape and is constantly mentioned as a target for reconstruction by the local government of Seodaemun-gu. Yujin Sangga suffered a major blow during the implementation of Seoul's urban development plan. It was said earlier that it was 'kept alive through compromise', but this was more of the damage caused by the Seoul government's unilateral indifference. In the process of building the inner ring road from Hongjedong to the centre of Seoul, the residential buildings on one side of Yujin Sangga were demolished. When construction of the inner ring road began in 1992, the Seoul government demolished the third to fifth floors of Yujin Sangga in exchange for compensation to the residents of B-side of the building, and an overpass was constructed just 7 metres above the building. Since then, in relation to safety and noise issues, the number of stores and residents willing to move into Yujin Sangga has decreased dramatically. There were also attempts to revitalise the building by converting it into a public facility, but given the current situation of Yujin Sangga, it seems that it was not successful enough. Meanwhile, in 1969, when construction of Yujin Sangga began, the 'Seoul Fortification' plan from the government was declared. At the time, military and political tensions were rising with resistance to Park Chung-hee's regime internally and externally, as well as a series of North Korean raids and infiltrations. Yujin Sangga was one of the strategies adopted by Park's regime in response to this, such as preparing a defence plan and increasing military power, which was designed as a military facility. Preparing for North Korean infiltration became an important security issue, and Yujin Sangga was positioned to be the last line of defence in the Seoul metropolitan area against North Korean forces. If the North Korean army continued to march south and crossed Kupabal, the last ridge towards Seoul, Yujin Sangga would be able to serve as a military base for allied forces and as a barrier to stop them before they entered the centre of Seoul. For this reason, Yujin Sangga was designed with pilotti columns on the ground level, spaced at intervals and heights that would allow tanks to enter. This was also a consideration for the military use of the building, as the columns could be blown up in the event of an emergency, allowing the building itself to act as a barrier. The high concrete proportions of the building's walls, which were made in order to withstand gunfire, make it one of the most robust Korean buildings even today.
Standing as the last line of defence to protect Seoul, Yujin Sangga is no longer called upon to stand up for the city. It has become a priority target for demolition to be pushed aside in favour of Seoul's development. One past change may have had an impact on the lifespan of the building, but one reason cannot be said to have been decisive. Letting the past give way to the present is also part of the flow of nature. But in the case of (re)development plans for Seoul, or even Korea as a whole, it's hard to see how the past and present can be reconciled. Seoul's development tendency to destroy, remove, and erase things, creating a lineage that is continually disconnected from the past, relates to the wounds of Yujin Sangga's past. The internal ring road built above the apartments has had a lasting impact on blocking Yujin Sangga's usability as a residential complex, and even today, the intersection of Yujin Sangga and the overpass is a constraint on the building's transformation. When the plan was made to demolish one side of Yujin Sangga and let the road pass through, would it have been different if consideration had been given to the historical context of North-South relations that the building is part of? The drive to move forward often goes with disregard for our surroundings. Over a decade apart in age, Yujin Sangga and the Hilton Hotel are both vulnerable to demolition by an urban development strategy that ignores the value of architecture and pays more attention to the dynamics of capital.
And yet, they have remained here. They stand with all of these factors and hold many promises such as the restoration of the restoration of the Hongje River, the revitalisation of the Seodaemun-gu area, the interaction with other areas slated for redevelopment along the foot of Bukhan-Mountain … … It's not just about the surrounding areas. The discussion over Yujin Sangga, like the Hilton Hotel, should not be a dialogue that will end with the building and the area. Since the buildings have yet remained, despite the announcement of their sale and the discussions that have followed, we still have a chance to look back and reflect on the time they have stood on the ground. There are many aspects that could be addressed through architecture, such as the flow of Korean architectural history, economic changes, memories of security between the North and the South, and the dynamics of urban space and politics that are revealed through the Hilton Hotel and Yujin Sangga. Crumbling and rising, the shifting forces that flow through the city of Seoul's reborn architectural landscape. See a glimpse of the few things that are still remaining before the whole landscape is reassembled. It is never too late, or we should be late even more, to reorientate the narrative after it has been brought to the surface. Instead of letting the capital set the pace of Architecture, the two should go hand in h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