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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리즈 ciriz Sep 01. 2023

나는 딩크를 내려놓았습니다.

딩크였던 나의 새로운 시작

다들 어릴 적 먼 미래에 대해서 친구들과 이야기해보지 않는가?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등학교 학창 시절 우리끼리의 수다는 힘든 수험생활의 활력소였다.

서로 미래에는 어떤 남자친구를 만나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결혼은 했을지, 아이는 얼마나 낳을 것 같은지 등의 이야기 말이다.


친구들은 내게 그랬다. 

“얘는 뭔가 커리어우먼이 되어있지 않을까?”

“아마 결혼은 가장 늦게 할 거 같아” 

“결혼을 안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맞아 나도 그럴 것 같아

라고 나는 자신 있게 대답하곤 했다. 
그러나 우리가 예상하던 모습과는 삶이 다르게 흘러갔다. 나는 그들 중 가장 빠른 나이에 결혼을 했다. 


방년 27세

27세. 나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일을 시작했고 빠른 생일인 덕분에 사회생활을 이른 나이에 시작했기에 나름 사회물에 익숙해진 직장인이었다. 당시 몸담고 있던 회사는 뷰티커머스였는데 2-30대 여성만 몇 백 명 대여서 결혼이 많은 계절 봄, 가을이면 사내 결혼 알림 메일을 매주 받고 어떤 날은 하루에도 여러 메일을 받을 정도였다. 나랑 비슷한 나이의 직원들도 결혼 소식을 자주 알려왔다.


어리기에 무모했던 걸까?

남자친구는 20대 중반부터 줄곧 함께였고, 어차피 이 사람이랑 계속 사귈 거면 결혼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언가 갖추어진 나이는 전혀 아니었지만 '자취하던 연장선상으로 살면 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인지 결혼을 결심하는데 거침이 없었다.


결혼을 결심하고 준비하던 시기에 이런저런 관한 대화를 하다 팀장 S선배가 말했다.

“예전 M에서 같이 일하던 여자 선배들이 다 직장을 그만두고 지금은 아기 키우는 사람이 많아요. 그중 한 분이 그러더라고요. 임원까지 올라갈 정도 아니면 육아에 전념하는 지금의 삶이 좋다고요.”


“그래요..?”라는 말 이후로 나는 그 말에 대답을 잇지 못했다.

‘아니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그 외국계 IT 회사 선배들이 지금은 직장을 그만두고 그렇게 말했다고..? 왜?? 임원정도까지 올라갈 것 아니면 어때? 젊은 시절 공부하고 갈고닦은 커리어가 아까울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로라하는 해외 대학 출신들에 엄청난 스펙을 자랑하는 그녀들이 왜 아이를 키우는 삶이 더 행복하다고 하는 건지 그 선배의 말이 내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아 떠나지 않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동생들과는 다르게 그 누구보다 내가 더 중요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꼭 해내야겠다는 마음이 컸고, 특히 나의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일이라는 것은 자아실현 그 이상의 무언가였고 나의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기에 남편도 그 누구도 내가 일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생각이 컸다. 

하지만 그랬던 여자 직장인이 엄마 직장인이 되고 나서의 현실은 녹록지 않은 듯 보였다. 그간 다녀본 직장들에서는 주위를 둘러보면 시니어 이상의 워킹맘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었고, 비단 내가 몸담은 스타트업 씬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아이의 유무로 내가 일할 수 있는 자리 하나를 지켜내기가 어려운 실정이라면 과연 아이를 갖는 것이 맞을까?'라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끊이질 않았다. 



우리의 결혼반지 (c) ciriz

DINK(Double Income, No Kids)  

결혼은 하되 아이를 두지 않는 맞벌이 부부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이 단어를 배우던 때만 해도 생소한 단어였고 주위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았었는데, 어언 십여 년의 시간이 흐른 후 나는 딩크가 되어있었다. 

우리는 어쩌다 교과서 속의 딩크가 되었을까? 남들은 궁금해했다.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아이가 없는 우리에 대해 의도적인 딩크인지 어딘가 사정이 있어서 그러는 것은 아닐까라는 시선도 없진 않았다. 


정확히 우리는 딩크를 선택을 했다기보다 딩크를 내려놓는 선택을 하지 못했다.  

딩크를 내려놓으려면 부부 둘 뿐인 상황에서 추가적인 결단이 필요했다. 

1) 아이 없는 홑벌이 부부 - 한 명의 벌이를 내려놓기
2) 아이 있는 홑벌이 부부 - 2세를 준비하고, 한 명의 벌이를 내려놓기
3) 아이 있는 맞벌이 부부 - 2세를 준비하기

1번은 상황에 따라 한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라 하더라도, 2,3번에는 가정의 구성원이 추가되고 많은 환경이 바뀌기 시작하기에 큰 결단이 필요했다. 2,3번의 아이를 낳는 선택은 내가 이어온 그리고 포기하고 싶지 않은 커리어를 놓아야 할 것만 같았다. S선배가 말했던 선배들처럼 ‘아이를 낳는다=곧장 직장을 그만두고 커리어를 잃는다’로 직결될 것만 같은 불안함은 떨칠 수가 없었다. 


임신, 출산, 육아

또 다른 말로는 임출육. 

"아이 있는 삶은 어때?"라고 아이가 있는 자들에게 물어보면 다들 "이건 말로 듣기보다 직접 낳아봐야 알 수 있어"라는 사람이 많았다. 아니 이건 무슨 맛보기 모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겪어보려면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리는 것 아닌가! 겪어봐야만 알 수 있는 거라는데 아무리 요새 정보가 많아졌다지만 그 세계를 글로만 배워서는 정확히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가 3명이나 되는 우리 부모님은 내게 눈에 넣고 보기에도 아까운 딸이라고 하는 분들이었다. '아이를 좋아하지도 않던 나라는 사람이 우리 부모님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부모역할을 할 수는 있을까?'라는 의문은 더해져만 갔다. 


의문이 풀리지 않는 동안 사계절은 여러 번 바뀌었고 직장도 거주지도 바뀌었다.


새로운 직장에서의 내 직속 매니저는 사내 유일 워킹맘이었다. 없는 시간을 쪼개 마켓컬리로 음식을 주문해서 아이 끼니를 챙기고 등원을 시키고 회사에서는 업무를 훌륭하게 수행했다. 옆에서 지켜보는 내 눈에 그녀는 가정, 직장 그 어느 곳에서도 뛰어난 대단한 슈퍼우먼 그 이상이었다. 어떻게 그런 생활을 할 수 있는지 물어봤을 때, 그 생활을 해낼 수 있는 이유는 부부의 유연한 업무환경 덕택에 남편과 합을 맞추며 등하원과 육아를 나눠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와 같은 회사를 다니는 나도 어쩌면 가능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아주 조금씩 들었다.


그리고 결혼한 지 여러 해가 지나면서 처음 결혼해서 살던 신혼집을 떠나 한참을 고민하다 서울을 떠나 경기도로 이사를 하게 됐다. 서울도 연고가 없긴 마찬가지었지만 경기도라는 완전히 새로운 곳에 정착하여 남편과 둘이 혈혈단신 아닌 혈혈복신(?)으로 살아가야 했다.


경기도로 이사를 하고 나니 달라진 것은 많았다. 그중에서도 달라진 것은 거리의 풍경이었다.

서울에 살던 시절은 지하철 역에 내리면 어둑한 골목길과 여러 가게들을 지나며 두리번거리고 집으로 가기 바빴다. 이사 온 이후로는 퇴근 후 지하철 출구로 나오는 순간, 아이 혹은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인 거리를 걸었다. 그 순간만큼은 나 혼자만 강아지도 아이도 없는 사람이었다. 다들 직장은 어디로 다니는 건지 그 누구보다 여유로운 저녁시간이었다. 하하 호호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을 지나쳐 홀로 집으로 향하는 건 나와 함께 서울에서 지하철에 몸을 싣고 내려온 이름 모를 퇴근 동지(?)들 뿐이다.(아마 그 지하철 동지들도 집에 아이나 강아지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은 든다)

바삐 출근하는 아침이면 아파트 1층에는 가정 어린이집의 꼬마들이 친구들과 선생님 손을 잡고 재잘거리며 활기차게 산책을 하는 모습을 매일 목격했다. 눈 오는 날이면 그 누구보다 설레는 표정으로 쌓인 눈을 이곳저곳에서 만지느라 등원은 뒷전인 아이의 모습도 종종 보았다.

(c) unsplash

서울에 있을 때만 해도 아이나 자연을 보려면 특정 장소에 가야 볼 수 있었는데 거주지가 바뀌고 나니 집 거실에서 초록색 나무들이 손에 닿았고, 집 근처에서 아이가 보이지 않는 곳을 찾는 게 더 어려웠다. 나의 주된 시간을 보내는 회색도시 강남 테헤란로와는 상반된 분위기에 어색하기도 했다. 


직장도 거주지도 달라지면서 아이와 함께하는 가깝고 먼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나의 마음에도 조금씩 틈이 생기는 것 같았다. 직장에서는 가정과 직장에서 모두 잘 해내는 것 같은 워킹맘 매니저를 보며 워킹맘의 롤모델이 옆에 있으니 든든했고, 집에서는 동네의 여러 어린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의 조그만 틈사이로 아이와 함께하는 나의 삶이 불가능하지만은 않겠다는 마음이 스멀스멀 스며들었다.


지금까지 그토록 딩크를 내려놓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불안함을 하나씩 나에게 물어보고 대답해 보기로 했다. 

-과연 내가 커리어에 대해 고민하지 않던 시기가 있었던가? 아니오
-고민과 역경 없이 평생 인생을 살 수 있는가? 아니오
-완벽한 인간, 완벽한 부모라는 것이 있는가? 아니오.. (인 것 같다.)


딩크를 내려놓지 못하는 건 나를 희생해서 내가 지금보다 주체적이지 못하고 나를 다 포기하고 소멸될 것만 같은 막연한 두려움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있으나 없으나 커리어에 대한 고민은 계속될 것이고, 나이를 먹어도 고민이 없는 삶은 없다. 그리고 완벽한 인간도 완벽한 부모도 없을 것이다 라는 결론을 냈다. 

지금이나 그때나 쉽게 답을 내리기는 어려울 테지만, 다만 그 고민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태도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성숙해지지 않을까 기대를 해볼 순 있을 것 같았다. 아무렴 지금보다는 나아지지 않을까?라는 어쩌면 막연한 희망회로 속에 우리는 아이와 함께하는 삶을 모험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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