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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경 May 11. 2022

히토 슈타이얼-데이터의 바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4월 29일부터 9월 18일까지 열리는 전시

지난 4월 29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히토 슈타이얼-데이터의 바다>전이 열렸다. 독일의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영화감독, 비평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의 아시아 최초 대규모 개인전이다. 크지슈토프 보디츠코(2017), 제니 홀저(2019), 아이 웨이웨이(2021) 등 걸출한 아티스트의 작품세계를 Retrospective 형식으로 소개해온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선택한 작가이기에 더욱 기대를 모은다. 빅테이터와 알고리즘, 소셜 미디어로 점철된 오늘날의 데이터 사회에 대한 문제 의식을 드러내는 이번 전시의 주요 작품을 소개한다.


포스터 디자인: 박휘윤


중세시대 흑사병이 유행하던 시절, 인생의 덧없음을 자각하고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유럽인들이 묘지에서 춤을 췄다는 데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죽음의 무도’는 하나의 예술 양식으로 발전하며 음악, 문학, 회화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히토 슈타이얼-데이터의 바다>전에서 압도적인 5채널 영상으로 구현된 <소셜심>에는 코로나 시대에 경찰복을 입고 죽음의 무도를 즐기는 아바타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팬데믹 초기, 자가 격리 기간이 길어지자 독일과 미국에서 통제에 반발한 시위를 진압하는 경찰을 상징한다. 작가는 경찰의 폭력적인 신체 움직임을 팬데믹의 공포에서 벗어나려는 공포에서 발현된 것으로 해석하고 이들이 죽음의 무도에 하나둘 ‘감염’되는 시뮬레이션을 데이터로 구현했다. 시위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자와 부상자, 실종자의 숫자, 최루탄 가스의 양에 관한 데이터가 오르내릴 때마다 거기에 맞춰 경찰의 안무 시뮬레이션 영상이 만들어지는 것. 이를 통해 인간이 데이터를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데이터가 인간의 행동을 결정짓는 역설적 현상을 풍자한다.


히토 슈타이얼 '소셜심' 사진 ©Mikayla Seo


작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데이터 노동 착취에 대한 문제도 수면 위로 드러낸다. 게임과 애니메이션 제작을 위해 모션캡쳐 수트를 입은 노동자들이 춤을 추면 이 수트에 달린 센서가 동작을 감지해 컴퓨터로 캡처하고 데이터화하는 장면을 담은 <태양의 공장>이 그것. 영상 스튜디오 노동자들에게 강요된 춤이 데이터 기반의 가상 세계를 위한 일종의 노동 착취로 환원되는 현상을 비판적으로 전달한다. “이것은 게임이 아니다. 이것은 현실이다”라고 반복하는 대사는 초현실적인 영상 이미지와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히토 슈타이얼 '태양의 공장' 사진 ©Mikayla Seo

한편 울산시립미술관의 대표 소장품인 <이것이 미래다>는 미래 정원 속 디지털 식물의 영상을 재생하는데 여기에 인공지능과 예측 알고리즘, 미래 예견 프로그램을 동원했다. 즉 비디오의 다음 프레임을 미리 계산해 미래를 예측하도록 프로그래밍을 해둔 덕분에 식물이 계속해서 자라는 모습이 화면 속에서 시뮬레이션되는 것. 이를 통해 작가는 교통 상황, 신용 등급, 반란, 자살율, 수명 등 인공지능으로 미래를 예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정작 현재를 소홀히 하는 인간의 욕망을 마주보며 ‘과연 우리의 현재는 괜찮은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히토 슈타이얼 '이것이 미래다' 사진 ©Mikayla Seo


4채널 비디오 설치물 <야생적 충동>은 비트코인이나 NFT가 새롭게 등장하며 자본주의 시장이 재편되는 오늘날을 빗대어 제작한 커미션 작품이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매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가 1936년 언급한 용어에서 작품명을 따왔는데 이는 인간의 탐욕과 두려움으로 시장이 통제 불능 상태가 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단채널 내러티브 비디오에서는 ‘크립토 콜로세움’이라는 동물 전투 메타버스 제작자들에 맞서 싸우는 스페인 양치기들의 투쟁이 그려진다. 이들이 맞설 수 있는 힘은 다른 종들과의 사회적이고 생물학적인 상호 교류에서 나오는데 전시장 곳곳에 매달린 식물은 그런 의미에서 상징적이다. 각 식물마다 특수 센서가 달려 있어 컨디션이 실시간으로 측정되고 이 결과값이 인터랙티브 시뮬레이션 기술을 적용한 나머지 3채널 영상에 구현되는데 수분이 부족해지면 영상의 컬러가 붉게 변화하는 식으로 나타난다.


히토 슈타이얼 '야생적 충동' 사진 ©Mikayla Seo


그 외에도 도처에 널려 있는 감시 카메라를 피해 픽셀 안으로 숨는 다섯 가지 방법을 알려주는 <안 보여주기: 빌어먹게 유익하고 교육적인 .MOV 파일>에서 날카로운 통찰과 유머를 보여주는가 하면, ‘미술관은 전쟁터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면세 미술>, <경호원들>을 통해 보안과 통제, 감시 제도 한가운데 있는 동시대 미술관의 역할에 대한 논의를 급진적으로 전개한다. 데이터로 구성된 디지털 사회의 어두운 이면과 부조리를 들쳐내며 시대를 통찰하는 히토 슈타이얼의 이번 전시는 현대 미술이 가진 힘, 즉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시각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왼쪽부터: 히토 슈타이얼 '면세 미술', '안 보여주기: 빌어먹게 유익하고 교육적인 .MOV 파일' / 사진 ©Mikayla Seo


언론 공개회 때 히토 슈타이얼 / 사진 ©Mikayla Seo


https://www.mmca.go.kr/exhibitions/exhibitionsDetail.do?exhFlag=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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