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문화 매거진 63호 - 젊은 공예가 열전
조아라 작가
93년생 조아라 작가의 장신구는 물 속을 부유하는 심해 생물을 닮았다. 투명하고 은은하게 빛을 반사하는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어딘지 모르게 마음도 차분해진다. 작가가 작품의 주재료로 사용하는 것은 모노필라멘트다. 모노필라멘트를 검색해 보면 나일론과 카본처럼 단가닥으로 된 섬유 구조를 통칭하는 용어라는 설명과 함께 방충망이나 낚싯줄이 등장한다.
대학원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하던 당시, 작가는 일상에서는 익숙하면서도 작품 재료로 사용하기에는 낯선 이 재료를 접했다. 이전에 가늘고 기다란 재료에 흥미를 느껴 실을 사용해 작품을 만들어보기도 했지만, 모노필라멘트만의 매력은 투명하기에 불분명하고 모호한 느낌을 준다는 데 있었다. 탄성 때문에 유연하게 구부러지면서도 구겨지거나 부러지지 않아서 정교하고 섬세한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아스라이〉 시리즈(2021)부터 〈흐름〉 시리즈(2023), 〈나아가다〉 시리즈(2023), 〈선회〉 시리즈(2023)는 모두 모노필라멘트를 짜임 기법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움직임을 반복하는 이 과정은 노동집약적이지만 섬세한 수공예적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
올해 KCDF 윈도우갤러리 공모에 선정된 작가는 《부유》전(KCDF 윈도우갤러리, 2024.7.31.-8.25.)을 준비 중이다. 기존 장신구 시리즈와 함께 오브제를 신작으로 선보이고자 한다. 작가는 고요한 흐름에 몸을 맡긴 채 깊은 바닷속을 부유하는 심해 생물의 움직임처럼, 이번 전시를 통해 윈도우갤러리 앞을 오가는 이들이 불안과 피로를 내려놓고 마음 속 고요를 경험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조아라 작가 프로필
국민대학교 대학원에서 금속공예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재택활동》(KCDF 갤러리, 2021.10.27.-11.1.)을 시작으로 여러 전시에 참가했다. 올해 초 프랑스 현대 장신구 비영리 단체 갤러리 알리아주(Gallery Alliage)가 주최하는 공모에 선정되어 독일 뮌헨 주얼리 위크 기간 동안 《(Un)Avowable Secrets》(Werkstatt-galerie, 2024.2.28.-3.2.)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인스타그램 @jo__obb
황다영 작가
95년생 황다영 작가는 2020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 ‘영 디자이너’로 참가하면서 국내 활동을 시작했다. 프랑스 랭스 고등미술디자인학교(ESAD de Reims)에서 오브제&공간 디자인을 전공하고 2019년 귀국한 그가 본격적으로 작업을 선보인 자리였다. 한번 보면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개성이 뚜렷하게 묻어나는 그의 대표작은 형형색색의 산호초나 해조류를 닮은 〈Under the Sea〉(2020~) 시리즈다. 인테리어 마감재로 사용하는 콩돌 자갈을 작품 표면을 덮는 재료로 사용하고 있다.
평소 감정과 감각의 상호작용에 관심이 많은 작가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 따라 각자 다른 감각을 경험하기도 하고, 또 반대로 느껴지는 감각에 따라서 감정이 바뀌는 것에 주목했다. 시각적으로 강렬한 자극을 선사하는 작품을 통해 평범한 일상 속에서 새로움, 놀람, 낯섦이라는 감정을 전달하고 싶었다. 보통 바닥이나 벽면 등 평면에 시공되는 콩돌 자갈을 레진으로 접착해 입체적 형태의 가구와 오브제를 만드는 이유다. 작가가 열어 젖힌 바닷속 상상의 세계는 많은 이들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이후 여러 전시에 작가로 초대되면서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Merry Craft 3 Days Store》(스페이스 B-E 갤러리, 2023.12.21.-12.23.)와 《애도: 공예적이거나 혹은 미술적이거나》(윤현 스테이지02, 2024.5.9.-5.31.)는 작가의 새로운 소재 실험을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전자의 경우,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관람객들이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작은 소품을 전시한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금속과 돌을 활용해 인센스 스틱 홀더와 모빌을 만들었다. 주제가 뚜렷했던 《애도》전에서는 물 속에 짓눌린 채 슬픔을 느끼는 생명체를 형상화한 〈Waterfall〉(2024)과 몸의 애도를 표현한 〈Sleep―옆으로 누워있는 사람〉(2024)을 신작으로 선보였는데 각각 패브릭과 한지를 재료로 활용했다.
이처럼 다양한 재료를 실험하는 작가의 태도는 나무, 세라믹, 유리 등 소재를 자유자재로 선택하도록 하는 랭스 고등미술디자인학교의 교육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도자공예학과, 금속공예학과 등 다루는 물성이 정해져 있는 다른 학교와 달리, 그곳에서는 다양한 재료를 접하며 기본기를 다질 수 있었다. 최근 종료된 3인전 《Wiggle Room》(넌컨템포, 2024.6.25.-6.30.)에서는 촉감과 컬러 실험을 한 신작을 선보였다. 말캉말캉한 실리콘을 재료로 사용한 조명과 스툴, 모빌 등에서 새로운 자극을 추구하는 작가 특유의 위트가 느껴진다.
황다영 작가 프로필
프랑스 랭스 고등미술디자인학교에서 오브제&공간 디자인을 전공했다. 2020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을 시작으로 다수의 전시에 참가했다. 스피커(Speeker) 전속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Under the Sea〉 시리즈(2020~)가 대표작이다.
인스타그램 @dayounghwang
박진국 작가
“좋아하는 것은 녹차와 말차, 그리고 말랑말랑한 촉감.” 97년생 도예가 박진국의 취향은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액체처럼 잠시 한 곳에 고여 있다가 금방 어딘가로 흘러서 사라질듯한 인상을 준다. 18학번으로 국민대학교 도자공예학과에 입학한 그는 팬데믹 기간 동안 휴학하고 영등포에 6평 크기 작업실을 얻었다. 원격 수업이 많아지면서 교내 가마실을 마음껏 사용하지 못한 탓에 자연스럽게 도자가 아닌 다른 재료로 만드는 작업에 관심이 생겼다. 폴리우레탄, 스티로폼, 유리섬유 등을 섞어서 독특한 형상의 가구를 제작하는 일은 그에게 일종의 놀이이자 실험이었다. 인스타그램에 가구 사진을 올리자마자 신기하게도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Open Museum Garden: 우리들의 정원》(소다미술관, 2021.5.1.~10.31.)에 스툴을 전시한 것을 계기로 그는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가 광목천을 재료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였다. 이불 공장을 운영하는 친구에게서 베개나 이불용으로 자르고 남은 광목천을 얻었다. 빳빳한 질감 때문에 접어서 원하는 대로 형태를 만들기 쉬운 것이 광목천의 매력이었다. 천 조각을 엮고, 빠르게 상온에서 굳는 성질을 가진 레진을 덧발랐다. 레진이 굳을 때 무게로 인해 천으로 잡아놓은 각이 자연스럽게 무너지면서 인위적이지 않은 독특한 형태가 만들어졌다. 그렇게 탄생한 〈컨테이너〉시리즈(2023)는 지난 2023 서울디자인페스티벌 ‘영 디자이너’ 전시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뭔가를 담는 용도의 컨테이너를 제작한 이유에 대해 작가는 평소 차를 즐겨 마시는 까닭에 찻잔을 올려둘 수 있는 잔 받침과 쟁반, 바구니 등 차와 관련된 물건을 만들고 싶었다고 답한다.
얼핏 보면 도자 접시 같기도 하지만 광목천에서 배어 나오는 특유의 따스한 느낌 때문에 더욱 정감이 간다. 작가는 자연스럽고 따뜻한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수차례 실험을 반복했다. 레진에 안료를 섞어 보기도 하고 옻칠을 칠해 보기도 했는데 결국 천을 천연 염색한 다음 레진으로 마감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간의 실험을 보여주기 위해 광목천에 염색한 천 조각을 실로 꿰맨 아카이브 북도 만들었다. 작가는 《수집》(웩사 서울, 2024.5.7.~5.28.) 전시를 마지막으로 외부 활동을 잠시 멈췄다. 오는 10월 졸업 전시에서 선보일 말차용 다완을 실험하느라 학교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는 중이다. 이번에는 소나무 재로 만든 전통 재유를 사용할 예정이라는 그의 작품이 더욱 궁금해진다.
박진국 작가 프로필
국민대학교 도자공예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 《Open Museum Garden: 우리들의 정원》을 시작으로 《Bed & Pieces》(로컬스티치 크리에이터 타운, 2021.8.25.-9.24.), 서치라이트페어(LES601 성수, 2023.11.17.-11.19.) 등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가구부터 차 도구, 생활 소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인스타그램 @jinddaguk
이종원 작가
94년생 이종원 작가의 가구 시리즈 〈원시적 구조들(식물의)〉(Primitive Structures―Botanical, 2023~)은 동굴 속에서 자라나는 광물, 혹은 나무 아래에서 솟아나는 버섯을 연상시킨다. 자투리 나무 조각을 압축한 공학 목재 패럴램(parallam)은 그가 ‘원시적 구조들’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소재로 공식 명칭은 PSL(Parallel Strand Lumber)이다. 철근이나 콘크리트만큼 높은 강도를 가지고 있어 주로 인테리어 및 건축용으로 많이 쓰인다.
홍익대학교 재학 시절, 작가는 학교 주변 상권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을 지켜봤다. 기존 상점이 철거될 때 나오는 수많은 폐기물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면서 작품 재료로서 이를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철거 현장에서 패럴램을 우연히 발견했다. 〈원시적 구조들〉 시리즈의 시작이었다. 그가 패럴램에 매력을 느낀 이유는 형태를 완벽하게 제어하고자 하는 완벽주의적 성향 때문이다. 작가는 “패럴램은 깎았을 때 변형이 없고 작가가 원하는 대로 형태를 제어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 내열성과 방수 기능이 있으며, 남은 자투리 재료를 재사용했을 때 이음새 부분이 눈에 띄지 않아 낭비하는 부분이 없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2021년 공예트렌드페어 신진공예가관(구 창작공방관)에서 처음으로 패럴램으로 만든 가구 모듈 〈단애〉(Escarpment, 2021)를 선보인 작가는 테이블과 스툴 기능을 가진 〈원시적 구조들〉 시리즈를 발전시켰다. 이 작품으로 2024년 로에베 재단 공예상의 최종 후보에 오르면서 지난 5월 다른 수상자들과 함께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팔레 드 도쿄 미술관(Palais de Tokyo)에서 전시할 기회를 얻었다. 전업 작가로 활동을 시작하고 불과 1여년 만에 찾아온 기회라 너무 일찍 큰 상을 받은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전시를 준비하다가 기계에 손을 크게 다치기도 했다. 하지만 파리에서 해외 여러 작가와 교류하면서 단순히 작품을 잘 만드는 것을 넘어 서사를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고 돌아왔다고 작가는 말한다.
소재만으로 친환경 작품이라고 홍보하는 그린워싱(Greenwashing) 행위로 비춰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작가는 〈원시적 구조들〉 시리즈를 전개하면서 본인의 삶도 변화했다고 덧붙인다. 환경을 위한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생활 폐기물의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는 등 의식적으로 친환경을 실천하게 된 것이다. 작가는 오는 9월 프리즈 아트페어 기간에 맞춰 오브제 작업을 선보이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올해 하반기에는 일본 마루누마 예술의 숲 레지던스에 다녀올 예정이다. 작가로서 한층 더 성장한 그의 작품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이종원(원리) 작가 프로필
홍익대학교 목조형가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가구를 전공했다. 2023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Salone del Mobile)에서 젊은 디자이너의 등용문이라 일컬어지는 살로네 사텔리테(Salone Satellite) 어워드를 수상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전업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2024 로에베 재단 공예상 파이널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인스타그램 @weonrhee
*본 글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공예문화> 63호(2024년 여름호)에 실렸습니다. <공예문화>는 기존 <공예+디자인> 매거진의 새 이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