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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L May 24. 2018

보이스피싱 전화를 기다렸던 어느 노의사의 사인

독자분들은 하루에 전화를 몇 통이나 받으시나요?

보통의 사람은 하루에 친구한테, 직장에서, 가족한테, 때로는 

스팸 전화부터 보이스피싱까지 전화를 받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팸 전화는 시간 낭비라 생각하여

그를 차단하는 어플까지 시중에 나와 있다. 


하지만 그런 스팸, 보이스피싱 전화마저도 

기다릴 만큼 무료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상상이 가나?



몇 해 전에 같은 아파트에 90살이 넘은 영감님이 이사 오셨다.

퇴근 무렵에 아파트 로비에 자주 혼자 나와 계시곤 했고 

같은 아파트 주민이라 들어가면서 인사를 드리곤 했는데

몇 달 후 낯이 익었는지 퇴근하는데 말을 걸어왔다.


“뭐 하시는 분이요?”
“내과 의사입니다.”

“아 그랬군요. 나도 내과 의사였는데.... 충청도에 10년 전까지는 환자를 봤소.”


그 노의사 영감님은 같은 의사라고 반가워하시면서 퇴근 때마다 붙잡고

 30분 넘게 안 놔주고 말을 걸기 일쑤였다. 


 이 노의사 영감님은 92세의 고령이었다.

10년 전에 부인과 사별하시고 그간 시골에 혼자 사시다가

몇 달 전부터 건강이 나빠져서 장가 안 간 성형외과의사 아들과

함께 살러 이 아파트로 오신 것이다. 그리고 결혼한 딸이 하나 더 있으시단다.   


퇴근할 때마다 말을 걸던 이 영감님은  평생 후회 없이 사셨고

요즘은 늙어서 사는 게 재미없으시다고 하셨다. 

로비에 나와 이웃에게 말 거는 게 유일한 낙인 듯 보였다.


몇 달 동안은 해방 직후의 옛날 얘기도 들려주시고 해서

얘기하는 게 그리 싫지는 않아, 퇴근하다가 잡혀서 자주 같이 말 상대가 되어 드리곤 했다.  


그래도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청력 저하로 크게 말해야 알아듣는 영감님과 

계속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것도 점차 큰 곤욕이 되어갔다. 

퇴근 후에 피곤한 날은 영감님이 로비에 앉아 계신 모습이 보이면 피하려고 

종종 지하 주차장으로 돌아 귀가하기도 했다. 


하루는 최신식 스마트폰을 가지고 계시기에 신기한 마음에 쳐다보니

멋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전화기는 시계 보려고 가지고 다니는 거야.”라고 하신다. 


“아니, 친구분들한테 전화 안 와요?” 하고 물으니

 “친구들 다 죽고 없어.” 

친구도 모두 죽거나 치매로 요양원에 들어가 있어 전화하실 일이 없단다.

그럼 가족들이나 손주들한테는 전화 안 와요?라고 물으니 

손주 놈들은 용돈 달라고 몇 달에 한 번 전화 올 때도 있어.”하신다.



한 달에 한두 번 전화받을 때가 있는데 대부 업체나 여론조사란다. 

 보이스피싱 전화도 올 수 있다고 조심하시라고 유튜브에서

 조선족 보이스피싱 “고객님! 당황하셨지요?”를 찾아 보여 드렸더니 너무 재미있어하신다. 

유튜브를 보면 재미난 게 많다고 하니 당뇨망막증으로 시력이 나빠져 핸드폰 화면은 

큰 활자로 시계밖에 못 보신단다. 그래도 보이스피싱 전화 한번 받아보면 재미있겠다고 크게 웃으신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의사 영감님이 안 보여서 이웃에게 물어보니 

요양병원에 입원하시고 성형외과 의사였던 아들도 이사를 갔다고 들었다. 

그리고 더 나중에 경비아저씨께 영감님이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셨다는 소문을 들은 날,  

내가 귀찮아하지 않고 좀 더 말벗이 되어 드렸더라면... 하는 마음 한구석에 후회가 밀려왔다.


노의사 영감님은 훗날 나의 모습이었으리라.  

나도 귀도 잘 안 들리고 눈도 잘 안 보이는 처지에 놓인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이 영감님은 왜 돌아가셨을까?  사인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친구도 없고, 대화할 사람도 없고, 사는 게 재미가 없고, 심심해서 살기도 싫다고 하셨던

 이 노의사 영감님의 사인은? 사망진단서에는 원사 인과 선행사인에  당뇨 등 노화 관련 병명과 

우울증을 고민 없이 간단히 적겠지만 이런 병을 가지고도 더 오래 사시는 분도 많다. 


WHO 정의에 의하면 건강은 신체적, 정신적 건강뿐만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건강도 포함된다. 

사회적으로 왕성하게, 그리고 바쁘게만 살아왔던 노의사는 하루하루 일없이 친구 없이

말동무 없이 보내는 것이 곤혹스러울 정도로 너무나도 심심했을 것이다


언론에서는 고독사라는 새로운 병명을 만들어냈는데 더 정확하게 논하자면 

직접사인으로 쓸 병명을 새로 하나 만들어야겠다. 

너무 심심해서 돌아가신 “심심사“라고.  



@unsplash,David Sinclair






#애경내과 #신도림역내과 #구로동 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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