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과 포르투에서 6일 정도를 머물다가 여정을 시작했다. 두 도시 중엔 포르투가 더 좋았다. 도시가 좀 더 아담하고 주요 관광지가 몰려있는데다 리스본에 비해 관광지같은 느낌이 덜 났다. 아, 그리고 낚시하는 사람이 포르투에 가면 아주 좋아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강에 물고기가 엄청 많았거든. (낚시가 가능한지는 차치하고)
두 도시의 여행기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따로 적기로 하고, 여기선 순례길 위주로.
사실 여정을 시작할 때 몸상태가 꽤 좋지 않았다. 서울에서 순례길에 대비해 약 2주간 매일 3시간 정도를 걸었는데, 그때 벌써 족저근막염과 아킬레스건염이 생겨 걷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포르투갈에 가자마자 여정을 시작하는 것도 아니고 6일 정도 관광하는 시간이 있으니 괜찮을 거라고 혼자 생각하고는 무작정 출발했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관광을 제자리에서 하는 게 아니지 않나. 관광하는 동안 서울에서 걸었던 것보다 매일 훨씬 더 많이 걸었고, 발 상태는 점점 더 안 좋아졌고, 출발 전날은 한 걸음을 내딛기도 불편할 정도의 상태가 되었다. 그 상태로 출발일이 왔는데.
걸을 때마다 아프지만 뭐 별 수 있나? 그냥 가는 거지. 지난 번에 걸었을 땐 더 안 좋은 상황에서 걸었잖아. 그렇게 생각하며 여정을 시작했다. 내가 그전에 비해 11살이나 더 나이를 먹었다는 걸 까먹은 거다. 오늘의 목표는 vila do conde. 29km의 여정이다. 중간에 포기하지 말자고 숙소도 미리 예약을 해버렸다. 나에겐 전진 뿐이다!!
...는 개뿔, 10km도 채 못가서 발에 탈이 났다. 지난 6일 간 관광하며 걸었을 땐 배낭도 없었는데 갑자기 무거운 배낭을 지고 걸으니 발이 못 버틴 거다. 결국 근처 약국에 가서 맨소래담을 구입하기로 했다. 짧은 영어로 아이 해브 패인 인 마이 풋. 두 유 해브 어 마사지 젤? 아이 원트 메디신 포 머슬 패인... 이런 얘기를 했더니 약사가 알아들었다는 듯이 약을 가져온다. 스페인어로 써있는 약인데 인터넷이 잘 안 터져 검색이 안 된다. 맞겠지 뭐. 진통제와 바르는 약을 사서는 길바닥에 앉아서 약을 바르고, 먹었다. 그렇게 10분 쉬고 다시 출발. (그날 밤에 숙소에서 검색해보고 안 사실이지만 약사가 준 바르는 약은 물집 약이었다. 그냥 진통제 먹고 계속 걸은 거다.)
고통은 익숙해진다. 무작정 걷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한 걸음 내딛는 건 할 수 있잖아. 그게 순례길이든, 인생이든.
진통제가 약발이 좋은 건지, 아님 발이 적응을 한 건지 계속 걷다보니 걸을만하다. 그때부터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포르투갈길은 프랑스길에 비해 화살표가 부족하구나. 프랑스길의 화살표가 혹시라도 순례자가 길을 잃을까봐 최대한 애를 쓴 느낌이라면, 포르투갈길의 화살표는 없거나, 있더라도 뜬금없는 곳에 있어 나와 숨바꼭질을 하는 느낌이다. 게다가 그늘도, 문을 연 커피숍이나 식당들도 찾아보기 힘들다. 쉬는 거야 길에서 쉬면 된다지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는 건 골치아픈 일이다. 아, 이래서 포르투갈길이 어렵다고 하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포르투갈길을 걸으며 또 인상적인 것은 개들. 이곳 사람들은 큰 개를 많이 키운다. 서면 거의 사람 키만할 거 같은 개들을 길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덕분에 순례길을 걷다가 주택가를 지나치면 어디서나 개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문제는 이 녀석들이 왈왈! 짖는 것이 아니라 컹컹! 짖는다는 거다. 무방비로 걷다가 사람만한 개가 달려들며 컹컹 하면 크게 놀라곤 한다. 좀 반겨줘라, 녀석들아.
오전 7시부터 걷기 시작했는데 어느덧 12시가 되었다. 밥을 먹고 싶은데 문을 연 식당은 패스츄리와 커피를 파는 카페밖에 없다. 왠지 점심을 제대로 먹고 싶어서 카페는 패스. 리스본과 포르투에서 익히 경험한 바, 이곳 식당들은 저녁 7 ~ 8시에나 문을 열기 때문에 점심이라도 제때 먹어둬야하기 때문이다.
주린 배를 안고 한참을 걷는데 멀리 버거킹 안내판이 보인다. 오마이갓! 이 순간은 미슐랭 쓰리스타고 뭐고 버거킹이 왕이다! 버거킹님이 날 구원하실 거야! 플리즈 세이브 미!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졌다. 나 좀 살려줘! 한참을 가는데, 뭐야 이거. 버거킹 가는 길이 철망으로 막혀 있다. 알고보니 버거킹은 고속도로 휴게소에 있는 거였고... 거길 들어가려면 고속도로에 들어가 역방향으로 걸어가야 했던 것이고... 결국 나는 버거킹 간판만 보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왜 버거킹이 있는데 먹지를 못하니, 왜! ㅠㅠ
결국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걸음을 이어간다. 배도 고프고, 앞뒤로 사람도 보이지 않고, 쉴 곳도 없다. 걷기 시작한 첫날인데 내가 이 짓을 왜 하고 있나 현타가 왔다. 그 와중에 목적지에 거의 다 와서 전날 예약해놓은 숙소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와... 이거 뭐지.
숙소에 문제가 생긴 사정은 이렇다. 부엔까미노 앱을 통해 빌라드콩두 (이렇게 읽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에 숙소를 검색했고, 그 앱에서 부킹닷컴으로 연결을 해주었는데 연결 과정에서 내가 찾은 곳보다 더 좋은 숙소가 있다며 추천이 떴다. 추천을 들어가보니 별점이 높기에 예약을 진행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추천 숙소는 빌라드콩두에 있는 게 아니라 여정과 아무 관계없는 곳에 있는 숙소였다. 환불도 변경도 안 되는 옵션. 아마 광고에 낚인 거겠지. 이 숙소는 나중에 별점이라도 나쁘게 주려고 들어가보니까 체크인을 안 했다며 별점도 취소당했다. 덕분에 부킹닷컴과 부엔까미노 앱에 신뢰가 사라졌고 숙소를 예약할 때 두번 세번 체크하는 계기가 됐다.
어쨌든 어렵게 도착한 빌라드콩두에서 새롭게 숙소를 찾았다. 부킹닷컴에선 예약할 수 없던 공립 알베르게를 발견했다. 1박에 10유로. 11년 만의 알베르게는 변한 게 없었다. 수많은 2층침대들, 샤워실, 취사실 등등.
지친몸을 이끌고 샤워를 하고 왔는데, 숙소에서 지독한 냄새가 났다. 첨엔 위생에 문제가 있나? 싶었는데 알고보니 내가 배정받은 방에 노숙자가 한 명 있었다. 가격이 10유로밖에 안 되는데 침대가 있고 취사도구가 있으니 노숙자가 꼬일만하다. 순례자 여권을 받아왔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노숙자도 이런 시설을 누릴 권리는 있을 것이다. 같이 하루를 머물게 된 나머지 사람들이 힘들어서 그렇지.
시간은 다섯시. 문 연 가게도 없고 해서 질 낮은 냉동 식품과 과일 몇개로 적당히 장을 봐와서 취사실에서 먹는데, 우리 숙자 형님이 만찬을 드시고 계시다. 아마 다른 순례자들이 남겨놓고 떠난 음식을 먹는 거 같았다. 다 좋은데 다만 냄새가...
꾹 참고 먹다가 치운 뒤 관리자를 찾아가고 말았다. 냄새가 심하니 방을 바꿔달라고.
그렇게 방을 바꿨는데 그 뒤로 방에 새로 순례자가 올 때마다 관리자가 나한테 묻는다. 이 사람은 냄새 안 나요? 괜찮겠어요?
아니 저 그렇게 예민한 사람 아닌데요...
그러더니 시간이 좀 지나, 다른 항의가 있었던 모양이다. 복도에서 관리자와 노숙자가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씻거나 나가라고. 물론 노숙자 아저씨는 씻는 걸 거부했다. 그 방에 있던 사람들이 한 두명씩 내 방으로 넘어온다. 거봐요. 나 예민한 사람 아니라니까.
같은 방을 쓰게 된 사람 중에 이스라엘에서 온 요니라는 친구가 있었다. 요즘 이스라엘이 전쟁 상황인 거 같은데 군대 안 가도 되냐고 물으니 이미 전역했단다. 전역 기념으로 가족들과 포르투갈 여행왔다가 걷게 됐다고. 그에게 고국에서의 안전을 빌어주었다.
하루를 걸어보고 난 느낌은, 역시 힘들다는 것, 하지만 할 수는 있다는 것. 그리고 이 길에서 무슨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해봐야겠다ㅡ 였다.
저녁을 먹은 뒤 가지고 온 e북을 읽으며 시간을 때우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순례가 끝나면 이탈리아 관광을 가야겠다. 그래서 원래 바르셀로나 아웃이었던 비행기티켓을 취소하고 이탈리아 아웃으로 티켓을 바꿨다. 원래 이렇게 즉흥적인 성격이 아닌데, 순례길을 걸으며 뭔가 마음 상태가 달라진 것 같다. 사실 첫날 너무 혹독하게 참교육을 당해서 덜 걷겠다고 마음 먹은 것도 있었다. 원래 산티아고까지 도착한 후 피스테라, 묵시아까지 며칠 더 걸을 생각으로 여정을 널널하게 잡았는데 그런 마음이 없어진 것이다.
예정에 없던 이탈리아에서 일주일 정도를 보내게 됐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