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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주 Apr 26. 2019

탄생의 순간

첫 번째 편지

Der Vogel kämpft sich aus dem Ei. Das Ei ist die Welt. Wer geboren werden will, muss eine Welt zerstören.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싸운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의 세계를 부숴야 한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낡은 세계를 부수고 새로운 세계를 정립하는 과정에 있다. 탄생의 순간은 우리가 자주 묘사하는 것처럼 경이롭거나 감탄해 마지않는 기쁨이 아니라 세계를 창조하는 자의 고통과 더불어 공들여 쌓아 올린 세계가 산산이 조각나버린 데 따른 혼란과 불안을 초래한다 ‘나’와 ‘나의 세계’를 완전히 새롭게 정립하는 과정은 그래서 자기파괴적일 수밖에 없다.


내가 겪는 우울함이 이와 같은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꽤 무거운 심정으로, 그러나 담대하게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게 된다. 치유되기를 기대하기보다는 상처를 더 깊고 섬세하게 느끼면서 오히려 운명에 순응할 용기를 갖는달까. 고통을 회피하지 않는 것 자체가 어쩌면 역설적으로 가장 격렬한 저항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부서져야만 하고 그 부서짐에 몸부림쳐야 한다. 돌이켜보면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과정에는 대체로 시련이 있었고 성취의 기쁨보단 좌절과 절망에 사로잡히는 때가 더 많았다. 어른이 되기까지 나는, 우리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던가. 비록 나 자신이 미덥지 않더라도 지금까지의 성장은 꽤 오랜 진통 끝에 얻어낸 결과다. 이 결과를 자랑스러워할 것인지 부끄러워할 것인지는 자기 판단의 몫이지만, 아픔을 통해 성장해왔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인용구: Hermann Hesse, «Demian -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 

커버 이미지: Hermann Hesse, «Demian», Penguin Modern Class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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