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고 오는 길에 글을 썼습니다>, 김중혁
지난 추석, 9월 중순에 한 손님과 대화를 나누다 이 책을 추천했다. 특별히 까다롭게 책을 고르는 편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한참을 책을 고르다가 세 번째 바퀴를 돌 때 찾으시는 책이 있을지 말을 건넸다.
"요즘 글 쓰는 중이라서요. 혹시 글 쓰는데 좋은 책 같은 건 없을까요?"
비슷한 시기에 입고된 천쉐의 <오직 쓰기 위하여>를 냉큼 찾았지만 하필이면 없던 차였다. 곰곰이 고민하다 집어든 책은 김중혁 작가의 <영화 보고 오는 길에 글을 썼습니다>, 영화 에세이이다. 당시 손님이 어떤 수준의 글을 쓰는지, 어떤 장르의 글을 쓰는지, 어떤 종류의 도움을 받고 싶은지 디테일하기 알 수는 없었으나 생각의 전환점을 발견했으면 하는 마음에 추천했던 책으로 기억한다.
<영화 보고 오는 길에 글을 썼습니다>에 등장하는 영화는 77개. 가끔 입고된 영화 에세이의 목차를 보면 '이런 영화가 있었나?' 싶을 정도의 굉장히 생소한 작품들이 눈에 띄는 반면, 이 책에 등장하는 영화들은 영화에 조금 흥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보지는 못했어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영화들이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골고루 잡은 영화들로 우선 내적 친밀감이 높아진다. 그리고 각 에세이의 시작에는 김중혁 작가가 낙서하듯 뻗어낸 그만의 메모들이 수록되어 있다. 글쓰기 전, 영화를 보고 나온 그의 마음 한편의 무언가를 건드린 것들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걸작보다 글을 쓰게 만드는 범작을 나는 더 좋아한다.'
김중혁 작가가 소개하는 영화 에세이를 쓰는 과정은 이렇다. 우선 영화를 본다. 그리고 메모를 한다. 이렇게 아무렇게나 적어둔 메모를 컴퓨터를 옮기며 첫 글을 완성하고, 아직은 메모로 존재하는 불완전한 글에 살을 붙인다. 이렇게 하면 그럴듯한 영화 메모가 완성된다. 꽤 단순해 보이는 이 과정으로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단순하다. 그가 쓰고 싶은 글은 영화에 관한 것이 아닌 영화로 인해 시작되는 이야기, 그의 마음속의 무언가를 건드린 바로 그 순간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노라면 영화는 물론, 그가 얼마나 글쓰기를 좋아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정성스럽게 써내려 가는지 알 수 있다.
책에 실린 글을 읽고 영화가 보고 싶어지면 좋겠다. 이미 본 영화라면 다시 보게 되면 좋겠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나도 글을 써볼까?’라는 마음이 들면 더 좋겠다. 자신만의 첫 문장을 떠올리고, 자신만의 결론에 도달하는 여행을 떠나면 좋겠다. 이 여행은 중독적이어서 앞으로 영화를 보고 나면 곧장 글이 쓰고 싶어질 것이다. 영화를 보고 오는 길에 저마다 다른 여행을 떠나게 되는 글의 여행자들이 되면 좋겠다.
-'나는 영화를 통해 새로운 곳으로 나아간다'
어쩌면 손님에게 필요했던 건 훌륭한 레퍼런스나 가이드가 아닌 무심하게 툭 등을 쳐줄 누군가의 응원이 아니었을까? 분명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에서 일렁이던 어떤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글쓰기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것도, 남다른 어휘력을 가진 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책을 좋아하고 추천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분명히 이 책을 보았을 때 '나도 이렇게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만한 좋은 영화를 알고 있지.'라는 생각을 했고, 곰곰이 되짚어보니 그와 비슷한 맥락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책을 추천하고 고르는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실천에 옮긴 일은 바로 메모장을 켜서 '공항서점'이라고 제멋대로 이름을 정하고 서점의 스케치를 그려나간 것.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우선은 한 글자를 써 내려가는 것부터가 시작이며, 시작은 반이다. 우선은, 제목을 입력해 보자. 결국 수백 번은 고쳐나갈 제목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