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더 멀어지나 봐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세요?
어른들을 모아놓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느냐 물으면 열 명 중 몇 명이나 손을 들까? 한두 명 정도일 것이라 본다. 아닐 수도 있지만, 내 경험상으로는 그렇다. 꽤 부정적인 수치를 예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어른들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느냐'는 물음을 '그림을 잘 그리느냐'의 질문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아, 나는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이구나를 깨닫는 시기는 미술 발달 단계에 따르면, 2학년부터이다. 생각보다 너무 빠르지 않은가? 9세 어린이들이 미술 세계로부터 서서히 멀어진다니. 2-3학년이 되면 어린이들은 사실적인 표현을 하고 싶어 하는데, (슬프지만) 당연히 자신이 원하는 만큼 사실적으로 그릴 수 없다. 아이들은 친구의 그림과 자신의 그림을 비교하기 시작하면서 스스로를 그림 못 그리는 사람으로 치부하기 시작한다.
6학년쯤 되면 어떨까? 미술 첫 시간부터 자기가 얼마나 그림을 못 그리는지를 겨루기 시작한다. "야 내가 더 못 그려.", "아니거든 내가 더 못 그리거든?" 보고 있다 보면 기가 찬다. 다 선생님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반면 조용하고 비교적 소심한 아이들은 잘 그리는 몇몇 아이를 둘러싸고 칭찬+푸념을 늘어놓는다. "우와... 진짜 잘 그린다... 우와... 우와..."
비교는 불행의 시작이라고 했던가. '예쁘게, 혹은 사실적으로 그릴 수 있는 어린이'가 아닌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미술 시간이 싫다. 그럼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수명에서 8년을 제외하고는 그리는 행위를 좋아하지 않으며 살아가는데, 왜 학교에서는 미술을 가르칠까. 혹시나 피카소가, 제2의 김환기가 될지도 모르는 1명을 위해 99명을 희생시킨다면 99명에게 얼마나 가혹한가.
선생님
(대충 어떻게 휘갈긴 후)
다 그렸으면 뭐해요?
초등학교 선생님 중에 이 말에 안 빡쳐본 사람, 없을 것이다. 애들 가르치느라 바빠죽겠는데, 미술시간마다 반드시 이런 아이들이 두세 명씩 나온다. 이 아이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대안은 두 가지 정도이다.
1. 더 자세히 그려보세요(만드세요).^^
2. 한 장 더 그려보세요(만드세요).^^
1번이든 2번이든 더 공을 들인다고 해서 나아질 리 없는 경우가 99%이다. 혹은 또 하나의 (안) 예쁜 쓰레기가 생성되겠지. 두 번째 작품은 반드시 첫 번째보다 구리다. 가혹하지만 그렇다. 학생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 안 그래도 미술 하기 싫어 죽겠는데, 선생님 체면을 봐서 겨우 하나 끝내놨더니 더해보라 하면 짜증이 나, 안나? 그러니까 보란 듯이, 더욱, 정성스럽게, 작품을 망쳐오는 것이다.
지금 와서 되돌아보니 아이들이 미술시간마다 '다 그렸으면 뭐해요?'라는 말이 나왔던 이유는 내가 수업 준비가 덜된 탓이었다. 아이들이 그렸으면 하는 예시 작품 하나, 그리고 소재를 준비해 놓고 시작하는 보통의 미술 수업. "자 얘들아 물감은, 붓은, 마카는 이렇게 쓰면 돼.", "이러이러한 단계로 이 그림을 그리면 돼(이걸 만들면 돼).", "유튜브 영상 보이지? 이거대로 따라 그리면 돼." 교사입장에서는 꽤 디테일하게 설명한 것 같다. 그러나 아이들은 한숨을 쉬며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라고 한다. 이렇게 말이라도 해주면 도와줄 수라도 있지. 어떤 아이에게는 어려움을 표현하는 것조차 어렵다. 그래서 가만히 있다가 텅 비어있는 도화지를 책상 속에 구겨 넣는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가르치란 말인가. 바빠죽겠는데. 초등교사는 (고학년 기준) 10개 과목의 수업을 연구하고 준비한다. 미술 정도는 좀 쉽게 가면 안돼? 숨통 트일 구석도 좀 있어야지. 그러나 나는 아이들이 수업을 재미없어하는 것이 얼굴에 드러나는 순간 굉장히 스트레스받는 편이라, 별거 아닌 미술수업일지라도 좀 더 공을 들여 준비하고 싶다. 아이들이 무기력하게 대충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꼬물꼬물 뭐라도 해내는 꼴을 보고 싶다. 그래서 야금야금 이것저것 시도해 본 미술 수업들을 지금부터 브런치에 정리해보려 한다. 성공한 수업부터 망친 수업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