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너는 초등교사라고?
나에게 요즘 가장 좋아하는 개그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피식 대학 정재형식 Nevertheless 화법이다. 끊임없이 반전되고 종잡을 수 없는 그의 구애... 그의 화법을 차용하여 나의 인생을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1. 나는 6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다. 꽤나 열심히.
2. 근데! 예원학교에 떨어지고 나서는 음악을 그만두고 전형적인 한국식 대입 준비, 수능공부를 했다.
3.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창의적인 어떤 것'였다. 그러나! 나도 '그 어떤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4. 20살에 어느 대학교 연극영화과 연출, 그리고 어느 교대에 합격했다.
5. However! 부모님의 권유로 교대에 들어갔고 초등교사가 되었다.
6. Nevertheless! 나는 여전히 내가 창의적인 어떤 것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휴직하고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하러 영국으로 갔다.
뭘 많이 하긴 했는데 무엇도 제대로 알지는 못한 신기한 인생이다. 돌아보니 나의 20대는 인정 욕구와 욕망 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느라 바빴다. 무슨 대기업에서 하는 공모전에도 나가보고, 꽤 난도가 있는 배낭여행도 갔다. 교대생들은 대부분 휴학을 하지 않는다는데, 일 년 간 휴학도 했다. 무엇을 찾아서 이곳저곳 들락거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디든 두드리고 싶었다.
휴학하는 일 년 동안 참 바쁘게 살았다. 아침에는 디자인학원에서 포토샵을 배우고, 저녁에는 학원가에서 수학강사를 뛰었다. 강남에서 안양평촌까지 부지런히 도 뛰어다닌 듯... 그러다 다음카카오 포털에 올라가는(당시에는 그냥 '다음'이었지만,) 일러스트를 그리게 됐는데, '의사, 판사, 소설가'가 글을 연재하면 그에 맞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다. 작은 제의로 시작한 이 일을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몇 년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그리는 것을 워낙 좋아했고, 그 시절 내 그림이 포털사이트에 올라간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함이 있었다. 그래서 꽤 열심히 했다. 기억나는 에피소드 하나는 장강명 소설가와 함께했을 때인데, 여느 날과 같이 포털에 올라간 글과 그림을 읽어 내려가던 차에 댓글에서 일러스트에 대한 언급을 발견한 것이다.
저 하트, 내가 눌렀다. 저 댓글 하나로 그날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몰래 우리 가족이 쓴 댓글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말이 어쩌면 내가 일러스트를 공부하고 싶게 한 원동력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아주 오랫동안 '창의적인 어떤 것'을 하고 싶었던 아이는 매일같이 낙서를 하고, 자꾸만 무언가를 그려냈다. 그 아이는 그림과 크게 상관없는 직업을 가졌지만, 여전히 선생님이 되어서도 무언가를 계속 그리고 있었다. 아이들의 수업을 기획하고, 마음속으로 아이들의 미래를 그려보고, 그리고 말 그대로 매주 두 시간씩 미술을 가르치기도 하니까. 내가 살고 있는 현실 속, 어린이의 세계에서 내가 제대로 그려낼 수 있는 것이 분명 무엇인가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미술학원에 다녀본 적도 없고, 물감을 쓰는 방법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마음속 깊숙이 '나는 뭐라도 된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꿈틀거렸다.
2020년 1월, 코로나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던 그 시절, 나는 대학원을 영국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주변인들에게 통보하기 시작했다. "나! 유학 준비해 보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