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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git Mar 23. 2022

농사, 진짜 시작되는구나

감자를 심었습니다.

감자를 심으러 노루뫼밭에 갔다. 남쪽마을에선 이미 2월 말부터 감자심기를 했다지만 나는 북쪽에 살고있으니 지금이 딱 적절하다.  작년에 먹고 남겨두었다가 싹이 터버린 감자들이나 가져다 심어야지 하고 몇알을 챙겨두었는데, 썬룸을 청소하다가 거미줄과 고양이 털이 잔뜩 묻은 항아리속에서  토종 자주감자 몇알을 또 발견했다. 

이녀석들, 에너지도 좋다. 무르지도 않고 튼튼하게 싹을 내고 있었네. 종이가방에 싹난 감자들을 넣고 이것 저것 씨앗을 챙겨 밭으로 갔다. 공기는 차가워도 볕은 좋다. 간만에 진짜 밭일을 하러 밭에 오니 약간 어색한 느낌이 든다. 얼어서 말라비틀어진 식물들 사이로 새 순이 돋고 있다. 지빠귀녀석들이 내 밭에서 뭔가를 쪼아먹고 있다가 푸드덕 날아간다. 철 이르게 돌아다니는 네발나비도 한마리 만났다. 어째서 벌써 나비가 날아다닐까? 

지난번에 완두콩을 심으러 밭에 왔을때는 땅이 얼어있어 호미가 흙속으로 깊이 들어가지 않았는데 이제는 땅이 다 녹아서 호미가 푹푹 잘도 들어간다. 감자는 얼마나 깊이 넣어야 하는거였지? 간만에 밭에 오니 아무것도 모르겠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20센티쯤 땅을 파고 감자를 30센티 간격으로 배치했다. 자료들을 찾아보면 감자에 싹이 여러개 올라오니  조각내서 각각 심으라고 했지만 내 감자들은 신기하게도 싹이 하나씩만 나있다. 싹 난곳이 한군데라서 자르지 않아도 되니 편하고, 또 감자를 그만큼 수확하지 못할테니 아쉽기도 하다. 싹 난 감자들을 간격에 맞춰 넣고, 물러져버린 감자들도 땅속에서 양분이 되라고 같이 묻어주었다.  손을 포크레인 모양으로 만들어서 신나게 흙을 덮다가 아차! 했다. 감자가 조로롱 누워있는 사진을 찍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히 감자를 넣기 시작했을때는 올해는 작물마다 인증샷 꼭 찍을거야! 다짐을 했는데 호미로 땅을 푹푹 파다가 뭘 했어야 하는지 잊은거다. “으이구 이바보야~” 셀프 잔소리를 하면서 흙묻은 장갑을 벗고 휴대폰을 꺼낸다. 얼른 아직 흙을 덮지 않은 감자만 사진을 찍는다. 감자는 총 세줄, 갯수로는 13개쯤 된다. 이정도면, 이녀석들이 잘 자라준다면 여름에 적당히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결국 이렇게 사진을 남겼다. 아무래도 저기 있는 작은 가위를 밭에 놓고 온것 같다.

흙을 덮어주고 감자 고랑 사이사이에 자주색 콩을 뿌린다. 나는 콩을 가져오지도 않았는데, 을밀님이 감자를 심는 나에게 콩을 나누어 주었다. 매번 꼼꼼하게 해오는 밭친구와 대충 와서 바람과 햇볕을 즐기다 집에가는 나는 참 대비가 된다. 여튼 덕분에 작은 공간에서 두개의 작물이 자라게 되었다. 

내 밭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무엇이 얼마나 자라고 있는지 확인했다. 마늘도 양파도 적당히 잘 자라고 있는것 같지만, 틀밭 끄트머리에 심었던 마늘들은 바람과 날씨의 변화를 못이기고 다 튀어나와버렸다. 더 깊이 심었어야 했는데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틀밭은 튼튼하게 잘 자라고 있고 또 다른 쪽은 영 소식이 없다. 뭔가 땅의 기운이 안맞았던건지 아니면 모종이 나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심은것의 70퍼센트 정도는 싹이 튼것 같아서 만족스럽다. 마늘 양파를 직접 농사짓는건 처음인데 이정도면 칭찬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씨익 웃음이 나온다.

춤추는 듯한 양파싹

 

을밀님은 씨감자를 따로 사서 아직도 감자를 심고있는데 나만 늘렁거리기가 뭐해서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내 밭에도 냉이가 지천이라는걸 깨달았다. 사실 냉이일수도 있고 냉이가 아닐수도 있지만 냉이이기를 바라면서 호미를 넣어 한뿌리를 쓰윽 뽑았다. 모양으로는 알수 없으니 냉이뿌리를 코에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아본다. 음 이건 냉이 냄새야! 아까 감자를 담아온 종이가방에 냉이를 넣는다. 그리고 비슷하게 생긴 다른 풀도 똑같이 캐서 킁킁 냄새를 맡는다. 이상한 짓을 하고 있으니 저 멀리서 을밀님이 “뭐해요?”라고 물어본다. “아.. 저 냉이 캐고 있어요. 냉이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어서… 흐흐” 라고 멋쩍게 웃었다. 흙에서 캔 풀을 이리저리 훑어보고 그 풀뿌리 냄새를 맡고 있는 사람이라니, 좀 이상하고 지저분해보였을것 같다. “여기 지칭개도 잘 찾아봐요. 물에 좀 오래 담궜다가 먹으면 적당히 씁쓸하고 맛있어요” 라고 했지만 나는 지칭개는 찾지 못했다. 냉이를 가방 한가득 캐서 가방에 담았다. 종이가방속의 수확물들은 냉이가 확실하다. 내 코로 모두 확인했으니 말이다. 



역시 냉이도 흙을 털기위해 물에 넣고 나서야 앗차! 사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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