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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git Mar 30. 2022

새벽에 깨버린날

요즘 이런저런 사회뉴스가 심상치가 않다. 가능하면 그런것들에 신경쓰고 살지 말라는 조언을 계속 듣고는 있지만, 나는 오지랖이 넓고 귀가 얇고 겁이 많은 사람이라 작은 뉴스에도 바닷속의 가늘고 길다란 한줄기 해초처럼 휘둘린다. 잠들기전에 뉴스를 몇개 보고 누웠는데 새벽에 알 수 없는 공포감에 눈이 번쩍 떠졌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그랬다. 심장이 벌렁벌렁 뛰고 눈은 말똥말똥한데 몸은 너무 피곤하다. 누군가 다른사람이 들으면 야, 너 그거 갱년기 초기증상이야! 할 수도 있겠지만 매일 그러는게 아니라서 “나 아직 갱년기 아.니.야!” 라고 마음속으로 외쳐본다.

책을 읽어도 가슴의 두근거림이 멈추지를 않고, 불안한 마음이 자꾸만 커진다. 불안한 마음은 첨엔 작은 귤만 했다가 점점 더 큰 불안의 포장지로 겹겹이 쌓여져 머릿속까지 징징 울리게 만든다. 스탠드를 켜고 책을 읽어보지만 책의 좋은 말들이 전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무래도 이렇게 누워있다간 쓸데없이 불안한 상상을 하고 그걸 더 키우면서 새벽을 맞이할 것 같아서 이불을 걷고 침대 밖으로 나온다.  

작업방으로 내려와서 넷플릭스를 켰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찾아 틀어놓고 캔버스 앞에 앉았다. 너무 조용하면 밤에 그림그리기가 조금 무섭달까, 작은 소리와 음악이 들리는것이 작업이 더 잘되는것 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랫층에서 잠자던 고양이들이 토각토각 발톱소리를 내며 계단을 올라온다. 뽀뽀가 잠이 덜깬 얼굴로 작업방에 들어와 카펫트 위에 털썩 눕는다. 그르릉그르릉 몇번 하더니 잠이 드는것 같다.

만년필을 들고 앉아 그림을 바라본다. 사실 바라보는것 뿐, 깊은 생각을 하는건 아니다. 그냥 구도가 어떤지, 꼬리의 모양을 어떻게 하는게 좋을지를 몇달동안 고민하고있다. 고민해도 답은 없다. 이번 작업은 고양이가 캔버스의 한가운데에 커다란 산처럼, 산맥처럼 커다랗게 자리 잡고 앉아있는 형태로 그리고 있다. 나무 사이의 고양이를 제대로 표현하고 싶은 욕심과 함께 마음 한 편으로는 실수할까봐 혹은 완성된 형태가 맘에 안들까봐 두렵다. 이럴땐 아무생각없이 작업을 해야한다. 어짜피 고민을 해봤자 내가 작업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으니까.

 사각사각 극극- 만년필을 그을때마다 작은 진동과 함께 기분 좋은 소리가 난다. 계속해서 고양이 등과 엉덩이로 이어지는 털을 채운다. 아무리 그리고 아무리 채워도 모자란 작업, 이렇게 형태를 만들기 위해 밑바탕을 만드는 시간이 참 힘들다. 왜 이리 오래 걸릴까. 나는 왜 이리 손이 느려졌을까? 이것이 나이 들고 있다는 증거일까?


열심히 채운다. 언제 완성할 수 있을까?

몸은 나이가 들고 체력은 소멸되어가는데 욕심은 그에 반비례해서 자꾸 늘어난다. 그래서 불안감도 더 더 커진다. 더 할 수 있을것 같은데 안되는 마음, 예전엔 더 가까에서 보면 잘 보였는데 이제는 다르다. 세밀한 부분을 작업하려고 그림을 더 자세히 보려고 하면  몸을 앞으로 뒤로 움직이면서 촛점을 잡아야한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촛점을 정확히 잡는데까지 시간이 걸린다. 전엔 내 눈이 자동 촛점모드가 장착된 줄 알았는데 내 몸이 수동 모드로 변해가고 있다니…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소피가 한순간 늙어버리는 장면이 오버랩된다. 

이렇게까지 생각하면 너무 우울해지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건 이미 촛점이 맞춰져있는 공간안에서 최대한 적게 이동하며 선을 긋고 또 긋는것 뿐이다. 계속 선을 그으면서 ‘그래, 어짜피 시간 싸움이야. 노력을 더 해야지. 할수있어.’하고 생각한다. 한편으론 내가 실력이 모자라 내 마음이 원하는 만큼 그려내지 못할까봐, 지쳐버려서 끈기있게 작업하지 못할까봐 걱정이 들기도 한다. 내 그림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진다. 마음속에서 자꾸만 생기는 더 더 더 잘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압박감은 확실히 크다. 나는 사랑받지 않아도 되지만 내 그림은 사랑받으면 좋겠다. 내 고양이들과 내 나무들과 그 공간이 사랑받게 하고 싶다. 좋은 에너지를 그림안에 가득 넣고 싶다. 



걱정과 욕심은 내안에, 

사랑과 기쁨은 그림안에. 




열심히 그려도 아직도 많이 남은 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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