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밭, 슬픈 밭 #1-기쁜밭 편

가기만 해도 즐거운 노루뫼

밭에 가는 일은 신나는 일이다. 어제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썬룸에서 씨앗을 챙기다가 나무궤짝 한귀퉁이에서 싹 난 아주 조그마한 감자 몇개를 또 발견했다. 엄지 손톱만한 감자에서도 싹이 나다니, 씨앗의 에너지에 매번 놀란다. 이렇게 조그마한 아기감자를 언제 가져다 던져둔것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데. 정말 신기한것은 이렇게 꼬마 감자들도 싹을 낸다는 것이다. 완두콩보다 조금 더 큰 감자알이 죽지않고 여태 살아있는것이 대단하다. 

요즘 여러감정이 있어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요 작은 감자들도 꿈을 가지고 열심히 싹을 올렸다는것에 감동받았다. 올해는 꼭 흙으로 돌아가 새로이 꽃을 피우겠다는 목표를 가진건 아닐까? 이 기특하고 조그만 녀석들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키친타올로 둘둘 말아서 가방에 넣고  씨앗봉투들도 죄다 챙겨서 밭으로 갔다.  

씩씩한 삼층거리 파

노루뫼밭은 역시 생명력이 넘친다. 지난 가을 심은 양파와 마늘잎이 여기저기 신이나서 올라와있고, 드디어 딸기도 초록색 잎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파들이 통통하게 자랐다. 양 팔을 벌려 환영!! 이라고 외치고 있는것처럼 예쁘게 자라고 있다. 지난해 가을 을밀에게 얻은 코끼리마늘 몇알도 싹이 났다. 코끼리 마늘은 일반 마늘보다 잎이 크고 통통해서 어쩌면 작은 튤립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난해 가을까지 멋지게 자랐던 아욱은 한겨울 추위를 못버티고 줄기가 말라죽었다. 흔들어보니 그래도 아직 뿌리는 튼튼한것 같아서 줄기만 잘라두고 뿌리에서 새 순이 나길 기대해본다. 뿌리가 두껍고 튼튼하면 줄기가 더 두껍고 튼실한 아욱이 자랄것이다. 아욱 주변으로 역시 지난해 옮겨심은 파들이 씩씩하게 자라고 있다. 파는 해와 바람만 있으면 좀 추워도 끄덕없이 자라는것 같다. 건강한 땅의 에너지를 받아 초록 잎을 키우고, 햇살과 바람으로 더 씩씩하게 자라나는가보다. 

이제 부추들도 자라기 시작한다. 부추 주변에 부추와 비슷하게 생긴 잡초들이 많이 자랐다. 이녀석들을 어서 정리하지 않으면 부추보다 더 커질지도 모른다. 

확실히 노지완두는 더 짱짱하게 크는것 같다

밭을 바라보고 있는것만으로도 너무나 기쁜일이긴 한데, 실제로 밭에 오면 머리가 멍해진다. 집에서는 이것도 해야지, 저것도 해야지 하고 여러가지를 생각했는데 막상 밭에 오면 허수아비가 된것처럼 가만히 서있거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다가 쪼그리고 앉아 잡초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렇게 멍하게 있다가 열심히 일하는 주변 농부들을 보고는 엇! 정신차리자! 하고 잡초를 제거한다. 밭 여기저기에 냉이가 한가득이다. 아쉬운건 냉이들이 다 캐서 먹기도 전에 꽃이 다 피어버렸다는 점이다. 꽃이 핀 냉이는 먹을수가 없다고 한다. 꽃이 피면 뿌리가 아주 질겨진다는데, 미리 와서 좀 캐먹을걸 또 시간을 흘려보내고는 후회를 한다. 냉이의 뿌리에서 나는 묘한 냄새가 좋다. 괜히 꽃핀 냉이가 아쉬워서 한뿌리를 뽑아서는 큼큼 냄새를 맡아본다.  냉이 뿌리에서 나는 봄냄새, 흙냄새 같기도 하고 약냄새 같기도 한 이 다정한 냄새가 좋다. 냄새의 끝에서 내가 좋아하는 된장국의 기억이 피어오른다. 삼삼하게 끓인 냉이된장국에 흰 쌀밥 한숟가락을 상상하면서 밭에 덮어두었던 낙엽도 치우고 잡초도 캔다. 이제 몇년 밭일을 했다고 잡초자르는건 선수가 되었다. 호미 끝을 흙속에 넣어서 뿌리가 걸리면 흙과 함께 들어올린다. 아직은 뿌리가 연약한 상태라 한번에 쑤욱 들어올려져서 다행이다. 잘 캐지지 않는녀석은 호미로 생장점을 끊어낸다. 흙속의 뿌리는 땅으로 다시 돌아갈것이다. 잘 자란 시금치를 조금 잘랐다. 꽃피지 않은 꼬마냉이도 몇뿌리 캤다. 냉이가 왕창 들어간 된장국은 못먹겠지만, 시금지가 조금, 냉이가 조금 들어있는 슴슴한 된장국은 끓여먹을 수 있을것 같다. 을밀이 야생 달래와 쪽파를 캐서 나눠주었다. 매번 나눠주기만 하는 이웃밭의 친구, 올해 나는 뭘로 이 고마움을 갚을 수 있을까?

쪽파, 이제 캐서 좀 포기를 나누어 다시 심어야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