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egit Apr 10. 2022

기쁜 밭, 슬픈 밭 #2-슬픈밭 편

이것은 밭이 아니여....

노루뫼 일을 마치고 올해 새로 얻은 밭으로 갔다. 보통 3월부터는 농사를 슬슬 시작해야 하는데, 새 밭은 농사 시작이 아주 늦어 버렸다. 지난해 밭을 보고 내년부터 일찍 농사를 하고 싶다고 말을 했는데, 땅에 돌이 너무 많아서 관리가 필요했다. 땅주인은 늦가을엔 내년에 돌을 고르고 마사를 섞어준다고 했다 하더니 봄부터는 마사 이야기는 없고 돌을 골라냈다는 밭에 돌이 한가득이었다. 거기에 땅이 녹지 않아 로터리를 칠 수 없다고, 땅이 녹고 난 후엔 일주일에 한번씩 계속 비가 오는 바람에 4월이 거의 다 되어서야 로터리를 쳤다.  로터리 일정도 늦었고 여러가지로 걱정은 되었지만 이미 지난주말에 30포 축분 퇴비를 뿌렸으니, 로터리가 얼마나 잘 쳐졌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로터리 직전에 퇴비를 하는게 좋다고 해서 20킬로짜리 30포를 친구도움을 받아 농협에서 실어오고, 그걸 차에서 내려서 흙에 섞는 일은 나약한 몸뚱이를 가진 나에겐 쉽지 않았다. 친구가 차에서 퇴비자루를 바닥으로 던져주면 그걸 일단 밭 여기저기에 끌어다 두고, 자루 한쪽을 부욱 찢어서 밭으로 질질 끌고 다니며 퇴비를 나름 골고루 뿌렸다. 퇴비를 뿌리고 난 다음날엔 로터리 작업이 있다고 했다. 농사를 너무 모르니까, 이렇게 해서 로터리만 치면 농사를 할 수 있는 땅이 된다고 생각했다. 


너무 힘들었어. 퇴비 뿌리기


큰 밭을 하기로 한건 올 한해 농사가 아니라 앞으로 몇년 쭈욱 농사를 지을 계획으로 얻은땅이라 이리저리 밭 계획도 그려보고 너무 넓은 밭을 어떻게하면 더 잘 쓸 수 있을지 고민을 했더랬다. 심을것도 많고 해볼일도 많아서 시간과 공을 많이 들여 가드닝 지도를 그렸다. 올해는 을밀님한테 얻은 토마토 모종이 엄청 여러가지라 모종도 내고 있고 완두 모종도 가져다 심어야 한다. 꽃씨도 여러가지 얻어두었다. 그래서 새 밭 가는길이 좀 설레었던건 사실이다.



이렇게 밭 계획을 세웠건만

그런데 밭에 도착하고 나서는 내 계획이 산산조각나는 기분이 들었다. 

로터리를 쳐두었지만 아직도 돌이 너무 많고 흙인지 돌인지 모를 덩어리들로 가득차있다. 일단 괭이를 들고 밭으로 들어갔는데, 이럴수가… 괭이질이 되지 않는다. 점토같은 흙이 마르면서 단단하게 뭉쳐서 돌처럼 변해있다. 괭이로 두드려보면 깡-깡- 소리가 나는데 자세히 보면 돌이 아니라 점토다. 그리고 사이사이 커다란 돌도 너무 많다. 

을밀은 왕겨를 가져다 붓고 나뭇잎으로 흙을 덮고 했지만, 내 생각으론 그렇게 해서 될것 같지가 않았다. 이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흙 상태가 아니다. 마치 내가 러시아로 이주한 고려인, 까레이스키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돌덩이같은 진흙덩어리 땅을 개간해서 작물을 심어야 한다니… 이건 정말 아니다. 옆밭 언니에게 전화를 했는데 전화통화가 안되어서 더 우울해졌다.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갑자기 온몸의 힘이 다 빠져나간 느낌이 들었다. 밭 임대료는 냈고, 퇴비도 30포나 사다 부었는데 내 돈과 내 시간과 이곳에서 이걸 개간할 생각에 힘은 빠지고 화는 나면서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뭘 더 하고싶지도 않고 화만 났다. 뭘 너무 모르는 내가 싫어지기까지 한다. 그냥 아닌것 같을때 안한다고 할걸, 제대로 거절하지 못하고 여기까지 온것같아서 나도 미워진다. 사실 밭 주변의 범나무와 밭의 00나무가 이뻐서 흙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것도 사실이다. 설마, 농사지었던 분인데 흙이 나쁠라구? 하는 나의 안일한 생각이 이런 일을 만들었다. 


괭이로 두드리면 깡깡- 돌소리가 난다. 이건 밭이 아니야 

집으로 돌아와 밥을 먹고 일을 하는데 옆밭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서로 밭의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니는 땅 주인에게 로터리를 몇번 더 쳐달라고 이야기 하겠다고 했다. 5월에나 농사를 지을테니 그때까지 열심히 로터리를 치라고 하라고 말이다. 

세상에, 5월부터 농사라니… 갑자기 기분이 안좋아진다. 사실 한달 남은일인데도 기분은 영 그렇다. 즐거운 봄 농사를 못즐긴다니 말도 안된다.나도 땅주인아저씨한테 내일 문자를 해야겠다. 우리밭도 로터리를 치고 또 쳐달라고 해야지. 어쨌건 농사를 하려고 빌린땅이니 그냥 놀릴수는 없다. 그냥 포기할까? 생각했다가 그래도 로터리를 몇번 더 치면 이 땅을 쓸 수 있을까 고민한다. 왠 욕심이 이리 많은가? 나는  스스로 불러운 재앙에 괴로워하면서 그걸 놓지도 못하는 사람인건가?

무엇이 맞는것일까? 오늘도 나는 미래를 모르고 고민하고 걱정하고 욕심을 부리는구나.

매거진의 이전글 기쁜 밭, 슬픈 밭 #1-기쁜밭 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